자연과 함께 오감 회복하기 - <호주머니속의 귀뚜라미>
자연과 함께 오감 회복하기 - <호주머니속의 귀뚜라미>
  • 승인 2017.08.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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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귀뚜라미 한 마리가 어떻게 11층 우리집 베란다로 놀러왔는지 모를 일이다. 밤마다 베란다에서 울어대는 시끄러운 귀뚜라미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있다. 밀폐된 아파트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란 머릿속에 감상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그야말로 집에 보내 달라 울며 보채는 어린아이 울음소리와 같다. 실컷 울다가도 가까이 가는 기척만 느껴지면 울음을 뚝 그치는 때문에 도무지 어디 숨었는지 알 수가 없어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결국 베란다 물청소를 하다 발견했는데 기세 좋은 울음소리에 비해 아주 조그마했다. 요즘 귀뚜라미 소리가 높아졌다. 가을이 가까이 온 것이다.

팔월 말 어느 오후 해질녘쯤 주인공 제이는 목초지를 걷고 있었다. 언덕 비탈에선 톱니꼬리조팝나무, 기다란 꽃대 끝에 매달린 커다란 연분홍 꽃 송아리, 잿빛 거미, 노랑나비, 길가 히코리나무, 조그맣고 납작한 돌멩이, 뒷걸음치는 가재, 잿빛 거위 깃털, 잿빛 도마뱀도 만나고 여물어가는 옥수수 잎줄기가 바람결에 바스락거리는 소리, 날벌레랑 딱정벌레가 딱딱거리는 소리, 팔월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매미가 연주하는 드높은 소리, 어둑한 숲속에서 들려오는 올빼미 울음소리도 듣는다. 제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폴짝 뛰어오르는 귀뚜라미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집에 가져오면서 귀뚜라미와 친구가 된다.

레베카 커딜의 <호주머니 속의 귀뚜라미>는 한적한 시간이 흐르는 영국 시골의 8월 풍경과 이제 곧 일학년으로 학교에 가게 된 소년이 자연과 교감하는 이야기를 맘껏 보여주고 들려준다. 제이는 귀뚜라미를 처음엔 동그란 차망에 두다가 다음엔 조금 더 큰 철망으로 그 다음엔 철망에서 꺼내 방안에서 함께 놀게 된다. 귀뚜라미는 온 방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제이도 친구가 되어 따라 폴짝폴짝 뛰어논다. 귀뚜라미와 친구가 되어 뛰어노는 즐거움이란 어떤 것일지 상상해 보시라. 귀뚜라미 친구는 밤이 되면 나만을 위해 연주를 시작한다. 생각하기 나름이니 의미를 두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다.

잠시도 귀뚜라미와 떨어지기가 싫은 제이는 귀뚜라미를 호주머니 속에 넣어 학교에 가게 된다. 얌전히 가만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귀뚜라미는 어두운 호주머니 속에서 울기 시작한다. ‘귀뚤귀뚤’ 처음 만난 1학년 친구들과 선생님이 모두 제이를 쳐다본다. 급기야 선생님과 제이는 귀뚜라미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는데 “다른 귀뚜라미를 찾아 낼 수 있을 거야, 그렇지?”라며 밖에 내다 놓으라는 말에 제이는 “그렇지만 이 귀뚜라미가 아니잖아요.”라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제이가 데리고 온 친구 ‘귀뚜라미’를 앞으로 나와 친구들에게 소개하라고 한다. 곱지 않은 시선이던 반 친구들도 그제야 제이가 데리고 온 귀뚜라미에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한다. “귀뚜라미하고 지낸 지 얼마나 됐니?” “귀뚜라미는 뭘 먹니?” “어디서 잠을 자니?” “재주도 부릴 줄 아니?”

제이가 사는 곳엔 도서관도 영화관도 그 흔한 핸드폰도 없다. 자연 속에서 계절을 오감으로 탐색하며 즐기는 장면들에 감정이입이 되면 8월 말 시골의 자연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듯 읽는 사람도 즐겁다. 제이는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지만 오후마다 소떼를 데리러 목초지에 가는 일을 맡아 한다. 1학년 학교에 입학하지만 야단스럽게 따라오는 부모도 없다. 의젓하고 당당한 제이의 모습과 강압적이지 않은 어머니, 선생님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어른과 어린이 청소년들이 회복되고 돌아가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보여준다.

아이의 오감을 태어날 때처럼 그대로 유지할 수만 있어도 절대감각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음감이 뛰어난 아이, 시각이 뛰어난 아이, 미각이 뛰어나 아이 등, 천재성을 가지는 아이들은 훼손되지 않은 절대 감각의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오감의 힘이어서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호주머니 속의 귀뚜라미>는 게임에 핸드폰에 학습에 빠진 우리 자녀들이 왜 자연을 가까이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다가오는 가을 자연 속에서 오감을 되찾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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