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여행, 이야기가 마법 피리다 -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안전한 여행, 이야기가 마법 피리다 -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승인 2017.09.0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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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남자라면 붙이고 싶은 닉네임이 있다. 바로 ‘피리 부는 사나이’. 이를 패러디하여 ‘피리 부는 아줌마’, ‘피리 부는 여인’, ‘피리 부는 선생님’, 이렇게 바꿔 붙여 보지만 아무래도 어감이 성에 차지 않는다.

가수 송창식이 헐헐 웃는 얼굴로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부르던 ‘피리 부는 사나이’(1974년 발표)를 중학교 때부터 듣고 자랐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란 이름에 매료 된 것은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에 케이트 그린어웨이가 그린 그림책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만나고부터였다.

이 책은 수려한 문장과 운율, 19세기 영국 빅토리아풍의 예술과 목판 기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런 그림책이다.

독일 니더작센 주, 유유히 흐르는 베저강에 인접한 한적한 마을 하멜른. 이곳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하나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나타난 쥐 떼의 습격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주민들은 관리들에게 쥐 떼를 소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속수무책이다. 이때 빨강과 노랑이 반반인 짝짝이 옷을 입은 괴이한 얼굴의 사내가 나타난다. 기다란 모자 끝에는 피리가 달려 있었는데 피리로 쥐를 쫓아내줄 테니 천 냥을 달라고 요구했고, 시장과 마을사람들은 흔쾌히 수락하여 거래는 성립된다.

사내는 마술 피리로 쥐 떼를 불러내 베저강으로 몰고 가 전부 빠트림으로써 마을을 구했지만, 하멜른의 주민들은 천 냥을 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모자라 시장 한복판에서 망신을 준다. 화가 난 사나이는 마술 피리로 쥐 떼를 불러낸 것처럼 마을 아이들을 몰고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130여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실종이 되었다. 실제 이런 미스테리한 일이 우리 마을에 생겨났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끔찍한 일이다.

도대체 아이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것은 허구가 아니라 한꺼번에 아이들이 실종된 고문서가 발견되어 실제 있었던 일임이 증명 되었다. 흑사병이거나 전쟁포로로 혹은 광산의 노동자로 끌려갔을 거라는 여러 가지 추측만 낳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사라진 무시무시한 전설은 현재도 사람들을 하멜른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가 지금도 사람들에게 마법을 부리는 듯하다. 이야기의 마력이다. 피리 소리에 끌려 절벽 아래로 사라진 쥐들은 사실 ‘레밍’이라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의 툰드라 지역에 서식하는 ‘나그네쥐’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쥐들은 무리가 일정이상 불어나면 집단을 이루어 일직선으로 이동하여 호수나 바다에 빠져드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여러 면에서 화제 거리가 되고 있지만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나에게 ‘피리 부는 사나이’란 ‘사람의 마음 훔치는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가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재미나게 읽어 줄 때면 십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몸은 그곳에 있지만 모두 이야기 속으로 몽땅 옮겨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생각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도 이렇게 아이들을 데려갔을까?’. ‘마법의 피리라고 하는데 그 마법의 피리는 도대체 무엇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나에게 마법의 피리란 ‘이야기’다, ‘그림책’이다. 아이들을 몽땅 데리고 바다로 하늘로 사막으로 어디든 떠난다.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모험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가을이다. 그림책으로 아이와 함께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안전한 여행을 즐겨보시길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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