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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고

<서영옥이 만난 작가> 견석기-우리가 기억해야할 것들

기사전송 2017-10-24, 2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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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석기




견석기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다큐멘트(document)는 ‘문서’나 ‘기록’이란 뜻으로 ‘허구’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영화로부터 시작된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의 기록물인 셈이다. 이 분야의 사진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1903~1975)도 다큐멘터리는 순수한 기록이어야 한다고 한바 있다. 사실에 근거하며 허구적인 요소를 배제한다. 현상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다큐멘터리는 포토저널리즘에도 가깝다.사실전달이 주된 목적이기에 사실성, 시의성 내지 일회성이 강하다. 실험성은 제외된다. 그렇다고 현실 복사로 보긴 어렵다. 작가 견석기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큐멘터리라는 속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견석기는 자신의 사진을 완전한 다큐멘터리라고 단정 짓진 않는다.대신 ‘다큐멘터리 형식(Document Style)’이라고 한다. 다큐멘트(기록) 형식을 띠지만 온전히 기록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이러한 구분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예술성을 겸비할까라는 질문을 남긴다. 예술성에 대한 논의는 잠시 미루어두더라도 그가 시각이 아닌 화각(렌즈를 통해 보이는 범위)으로 포착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지, 굳이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유는 또렷하다. 단서는 그가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사진 한 장이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전쟁을 종식시키기도 한다. 낯선 사람과 친밀해지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견석기의 사진에 대한 믿음은 바로 사진 한 장의 위력에 있다. 그가 사진을 찍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이유이다.

견석기는 변모하고 사라져가는 인간의 풍경을 모사한다. 짧은 시간 속에 사라져가는 것들을 정지시킨 화면이 대부분이다. 꾸밈이나 포장을 덧대지 않은 화면에서 날 것 같은 생동감이 감돈다. 그 풍경들이 작가 견석기의 의식과 신념 또는 결의와 단단히 연결되어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과 결부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가 고정시킨 순간들은 주변의 삶을 이해한 작가 자신의 회상과 추억, 그리고 기억을 붙잡아 둔 것이나 다름없다. 작가는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들’ 이라고 이름 붙인다.

견석기의 사진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더 있다. 다큐멘터리가 내용을 작성한 주인공의 생각이나 감정이 배제된 순수한 기록이라 하더라도 견석기의 사진은 반드시 내용과 형식의 객관성과 사실성만을 의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의 눈으로 포착한 순간이 있는가 하면 피사체 스스로가 기억되어져야하는 것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견석기는 그의 진정성이 담긴 첫 작품을 ‘도비가트 사람들’로 꼽는다.

인도 뭄바이에는 도비가트(영국 식민지 시대 때 이주해 온 영국인들과 이슬람의 침입과 박해를 피해 와 정착한 페르시아인들의 빨래를 도맡으며 형성된 곳)가 있다. 견석기는 2013년 도비카트 사람들을 만난 후로 삶과 작업이 전환점을 맞았다고 회고한다. 2012년 4월부터 시작된 인도 체류 1년 6개월은 그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중 오롯이 도비가트 사람들을 촬영하기 위해 도비가트에 머문 6개월은 도비왈라(도비가트에서 빨랫일을 하는 사람)와 그들의 삶을 호흡한 시간이었다. 견석기는 도비가트 사람들에게 사진으로 봉사했고 그들은 작가의 순수한 마음을 귀하게 받아주었다. 사진은 어떤 상황이든 찍는 순간 고정태다. 희로애락 생로병사의 순간들을 정지시킴으로써 회상과 추억을 반추할 수 있게 한다.

카메라로 업을 꾸린지 5년, 견석기에게 사진은 직업이다. 전주국제사진비엔날레와 대구사진비엔날레, 중국대리사진축제에 번갈아가며 작품을 발표했다. 굵직한 전시에 초대되면서 작가로서의 발판을 굳혀가는 견석기의 여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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