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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고

제주도, 여자들끼리 3박 4일

기사전송 2017-11-07, 21: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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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수필가)


‘참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억지로 행복한 척을 해봐도 어려운 문제는 쉬이 풀리지 않았다. 실제로 중년의 우리가 겪는 무기력함이나 슬픔은 감정의 일부분이라 말하겠지만 그러한 감정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던 적이 더 많았고 또한 감정에 대한 컨트롤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저 불필요한 걱정이 만성 우울증이 되듯 중년 여자의 삶은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아등바등 한 죄밖에 없다. 여자들끼리 나선 3박 4일의 제주도 여행은 그러한 의미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순간이었던가.

네 명의 여자들이 맞는 것이라곤 단지 나이 뿐이었다. 살아온 날도 생각도 그리고 모습까지 화장을 한 얼굴도 머리 스타일도 모두 달랐다. 남편들의 직업 역시 제각각이듯 여행을 나선 목적도 다 달랐던 것이다. 이렇듯 다른 4명의 여자들이 3박 4일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여행을 감행한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여자들이 결혼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생기게 되는 시어머니나 시누들처럼 남편들의 관계로 묶여진 친구였던 까닭에 친구 아내들의 사이란 자발적인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서로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을 감행하도록 부추긴 건 남편들이었다. 어릴 적, 한 동네 친구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자신들이 모은 곗돈을 풀어 큰 인심 쓰듯 아내들에게 그저 한 번 툭 던져본 미끼를 눈치도 없이 여자들이 덥석 물었던 셈이다. 아내들이 선뜻 가겠다고 나서자 남편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닌 기색이었다. 과연 전혀 다른 네 명의 여자들이 어울릴 수 있을지 없을지를 내기까지 해가며 금전적, 시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남편들은 모른 척, 아내들이 뭉칠 수 있도록 쇼 아닌 쇼를 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처음으로 집을 나와 바깥 잠을 자 본다는 미자씨. 남편이 하는 일을 도우며 늘 가장의 힘듦을 보고 사는 일이 가슴 아프다는 명희씨는 콧바람 한 번 쐬어보니 바깥바람이 가끔 궁금해진단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로 인해 한 푼이라도 더 벌어 학비를 보태야 한다는 순란이는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걸 알면서도 일하지 않은 것이 소원이라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나 역시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중년이후, 접었던 꿈을 뒤늦게야 펼친 이유로 인해 남편 등을 떠밀어 사지로 내 몬 것 같아 늘 안쓰럽고 미안했으니까.

렌트카를 이용해서 드라이브 중에도 누군가가 뽕짝을 듣고 싶다 하면 누군가는 클래식을 들어야 가슴이 트인다고 했다. 혼자 바다를 찍고 싶다며 말할 때 또 누군가는 단체로 인증 샷을 찍어 남편들에게 보내야 된다고 했다. 혹은 눈 뜨자말자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그랬다. 밥을 꼭 챙겨 먹어야 비로소 정신이 든다고. 때론 시어머니나 아이들, 주변의 얘기를 할 때, 혹 제대로 된 위로가 될까 염려하며 상대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했다. 그렇듯 여행은 어쩌면 서로서로간의 원활한 관계 맺기를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고 여행 내내 생각했다.

어떠한 관계든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관계 맺기를 위해 제주도까지 등을 떠밀어주었던 남편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꾸려간 가방보다 훨씬 커다란 마음의 선물을 안고 아름다운 섬을 떠나 다시 뭍으로 되돌아오며 생각했다. 4인 4색의 만남은 무지개처럼 각기 다른 색을 가졌으나합치면 아름다운 색이 된다는 걸 안다. 누군가의 아내로, 어머니로, 주부로서가 아닌 한 인격으로, 같은 여자로 만났던 길고 짧은 시간이 새로운 생의 리비도를 충만하게 해주리라는 것을. 세상의 남자들이여 당신들의 아내들에게 여행을 권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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