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정재한의 붉은 시선
<서영옥이 만난 작가> 정재한의 붉은 시선
  • 승인 2017.11.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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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한
정재한





피카소의 드로잉 앞에 선 한 관람객이 조소(嘲笑)를 보낸다. “나도 할 수 있겠어, 저것도 그림이라고…” 관람객에겐 피카소의 현대미술이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보였던 것이다. 곁에 섰던 피카소가 그 관람객을 화실로 초대했다.

작업실에 당도한 객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엄청난 양의 습작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장난 같은 드로잉은 수많은 습작의 결과였던 것이다. 다작이 걸작의 토대인 것은 적어도 근대까지는 정석 같은 원칙이었다.

현대미술은 태도를 바꾸었다. 다작만이 걸작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태도이다. 묘사력만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하나의 작품이라도 당위성과 신념, 진정성에 주목한다. 스킬에 더한 철학에도 귀 기울인다. 작가가 주시하는 토픽(핵심)에도 관심을 갖는다. 거기에 의미를 두는 작가가 있다. 사진영상작가 정재한이 그렇다.

50대의 정재한은 작가라는 포지션이 버겁다는 속내부터 내비친다. 세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 경력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척박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전업 작가들에 대한 예우이자 젠 척하지 않는 겸손임을 모를 리 없다. 다만 자아실현의 도구가 작업일 수 있으니 감사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정재한의 느린 작업행보는 삶의 활력과 윤활유라 할 만한 예능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의 사진영상은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대학교 졸업 작품만 보더라도 그렇다. 당시 그는 제일교포3세의 교육문제에 주목했다. 재일교포 1세대의 사회보장문제에도 접근하였다. NHK 기자에게 메일로 자료를 수집하는 적극성을 보인 것도 상실감이 가중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후부터 미봉책인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작업에 몰입했다. 정치와 결부된 세상을 투사하는 작업에도 매진한다. 미리 전을 짜놓은 듯한 얕은 행정에도 주목한다. 사회적 발언으로 가득한 그의 내면은 세상을 향한 투명한 시선이 촘촘하다.

정재한의 다큐멘터리 사진영상작업은 2~3년에 걸쳐서 진행된다. ‘독도문제’, ‘세월호’가 그렇다. 첫 출발은 가벼운 관심이었다. 지속적으로 팽목항에 달려간 것은 들여다볼수록 노출되지 않은 가려진 진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이맘때부터 진도군 팽목항에서 시작된 비겁하고 가식적인 불꽃놀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우리는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는 비겁한 일본을 더 이상 욕할 자격이 없다.(정재한의 작업일기, 문화예술회관 개인전, 2015년)” 처음 접근 의도와는 다르게 작업이 진행된 계기였다. 그는 얼마 전 계란파동에도 주목했다. 무관심 속에 갇힌 닭은 인간이 가하는 학대의 대상이었다.

대구 경북지역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에도 다가갔다. 곳곳에 스민 다양한 아픔이 우리를 철들게 한다. 그는 다양한 사회적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규율과 강압 통제가 아닌 수평적 발언에 귀 기울일 때라고 한다. “가끔 학교에 대자보를 붙인다. 일종의 신문고인 셈이다.

예술만큼은 정신적 자유가 보장되는 지점이어야 하며 답답한 사회를 탈주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가려진 팩트가 담론이 되고 공론화되어 유연하게 바톤 터치 하는 사회를 꿈꾼다.” 삶의 현장에서 교수인 그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자 사회구성원 누군가는 올바른 다큐를 해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신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정재한이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기회가 적었던 이유는 더 있다. 그는 완성된 작품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단기간에 완결 지을 수 없는 작업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까지 대략 2~3년이 소요되는 까닭은 파편화된 사회적 팩트가 밑바탕이며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영상은 간접적인 사회참여라 할만하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돌아오는 대가는 피드백 되는 것이라고 한다. 교육자로서의 눈이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시각이기도 하다. 생각을 작품으로 전달하는 그의 용기에 귀 기울이게 되는 이유이다.

그의 화통한 웃음 뒤에 가려진 사회적 통증은 ‘팽목항(문화예술회관, 2015년)’에서 붉은 물결로 출렁였다. 투명한 정신력으로 단련된 그의 붉은 시선이 윤기나는 세상으로 다가가는 또 하나의 걸음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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