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심심한 밤
고요한 밤 심심한 밤
  • 승인 2016.11.2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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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시인


심심하다

밥상 위의 찌개가 심심하고

찌개 옆 간고등어가 심심하고

동치미국물에 떠 있는 얼굴이 심심하다

심심하지 않으려고 티브이를 켠다

드라마 속 남자의 거친 눈물이 백제를 고구려를 백제를 달려 나와

당장에라도 적장의 목을 베어버릴 듯 멈추어선다

드라마틱하다

그런데 심심하다

달달한 소설 달달한 영화 달달한 연애

달달한 게 필요하다

달달하다면 역병도 괜찮다 죽은 듯이 아파주겠다

눈발이라도 하늘에 역병처럼 번졌으면 좋겠다



심심하다

뻥튀기를 뜯어먹는다

뻥튀기 분질러지는 소리가 공기 속으로 수제비처럼

떨어진다

텔레비전엔 무궁화가 저 혼자 피었다 진다

다시 고요하다

손톱 깎는 소리로 고요를 밀쳐낸다

튕겨나간 새끼손톱이 하늘에 걸려있다

손가락에 침이라도 묻혀 오늘은 저 손톱을

밤 새워서라도 집어와야겠다

심심하지는 않겠다

◇김경희 =2010년 ‘사람의 문학’ 등단

<해설> 가정 지킴이의 일과가 매일 같은 반복이라서 자칫, 그처럼 재미없는 생활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로, 아내로 살아가며 부딪혀야 하는 주부들의 삶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 한 편의 시는 무기력한 삶의 탈출을 도운, 심심하지 않기 위한 간 맞추기의 성공이라서 좋다. -정광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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