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이 따뜻하다.
공원 한 귀퉁이에 허름한 중년처럼
앉아 있는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다가, 문득
객쩍은 생각을 해본다.
짚둥우리 속에서 막 꺼낸 달걀은
암탉의 항문으로 나온 게 안 믿어질 만큼
희고 따뜻하다, 매끈하다.
혓바닥 아래 고인 침처럼 상긋하게
피어난 옥잠화의 흰 살결.
벌의 항문을 거쳐서 피어난 꽃들,
그 향기도 대저 항문의 그것이니
쿰쿰한 엄마를 열고 나온
신생의 애물단지들아.
희고 아름다운, 향기롭고
따뜻한 것들의 떠나온 문은 하나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슬쩍 만져본다
◇강문숙=199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
시집 <잠그는 것들의 방향은?>
<탁자 위의 사막> <따뜻한 종이컵>
제20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감상> 추위에 얼었던 몸을 녹이는 데는 역시 종이컵에 담긴 달짝지근한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시인은 공원 자판기에서 커피한잔 뽑아 마시며 ‘따뜻한 종이컵’에서 어떻게 생명의 근원적 모성애를 발견할 수 있는지 역시 시인의 발상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암탉의 항문에서 나온 달걀’이나 ‘벌의 항문을 거쳐 핀 옥잠화’ 그리고 ‘쿰쿰한 엄마를 열고 나온 신생의 애물단지들’ 나는 여기서 무한한 엄마의 사랑과 생명의 경외심을 느낄 수 있어 이 시를 읽고 또 읽는다. -달구벌시낭송협회 오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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