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날을 세우는 이른 아침
방금 목욕을 마친 두 할머니가
힘겹게 목욕탕 문을 밀치며 나온다
두 분 중 연세가 조금 덜 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허리춤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아마 남편에게 하는 듯
보소 오소
단 두 마디, 참 간단한 통화다
잠시 뒤 도착한 할아버지가
가랑잎처럼 가벼운 할머니를
타고 온 오토바이 뒤에 앉히면서 한 마디 한다
어무이, 안 추운교? 목도리 꼭 하이소
그러더니 호주머니에서 노끈을 꺼내
할머니와 자신을 꽁꽁 묶는다
그 가녀린 노끈이 무슨 힘이 있겠냐마는
먼 옛날, 자신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탯줄 하나로 생명의 줄을 연결하였듯이
지금은 힘없는 노끈 하나에
늙은 어머니와 늙은 아들이 연결 된다
질긴 모자의 정이 소통되고 있는 아름다운 아침
◇최승헌=1980년 시문학 등단
시집 <고요는 휘어져 본적이 없다>
<이 거리는 자주 정전이 된다>
<감상> 힘없는 노끈 하나로 소통하는 늙은 어머니와 늙은 아들! 소통의 부재 속에 비판과 탓은 내 몫이고, 모순과 부조리는 네 몫인 비정한 현실 앞에 두 모자를 꽁꽁 묶는 가녀린 노끈은 우리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달구벌시낭송협회 조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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