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문정희=1969년 <월간문학> 등단
1976년 제 21회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산문집 <젊은 고뇌와 사랑> <청춘의 미학>
<사랑의 그물을 던지리라>
<감상>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을까? 수십 년을 살아도 모르는 것이 부부라고 한다. 긴 세월 웃는 날도 많았지만 순간순간 감정을 이기지 못해 하루가 멀다고 끊임없이 다툼을 하며 살았다. 그래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이기에 또 이해하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그 남자가 바로 내가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 남편인 것은 틀림없다. -달구벌시낭송협회 오순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