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1956년 『문학예술』에 등단
시집 <농무>, <새재>, <달넘세>, <씻김굿>,
<가난한 사랑 노래>, <우리들의 북>, <길> 등
199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및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 의장
<감상> 이 시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를 붙여 쓴 시이다.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야 말로 가장 삶의 따뜻함과 진실함이 보이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싶다. 비록 가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은 따르겠지만, 결코 가난 때문에 인간의 진실과 아름다움이 변할 수 없다는 시인의 시 읽을수록 아름답기만 하다. -달구벌시낭송협회 오순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