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순간에 이른 절벽의 꽃을 부러워한다
그 비장미를
나이 먹을수록 제 안부터 허무는 느티나무를 부러워한다
그 적멸의 비움을
한여름 퍼붓고 절필한 소나기를 부러워한다
그 초연함을
폐곡선 안에서 나는 새를 부러워한다.
그 끝없는 시도를
대패로 깍을수록 속 깊은 결 더 뚜렷해지는 나무를 부러워한다
그 향기 나는 편향을
소나무의 많은 옹이들을 부러워한다
그 상처 진액에서 나는 솔향을
평생을 밭에서 일한 가난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 가린 곳 없는 진면목을
모든 잎새와 풀 속에 깃든 연두를 부러워한다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색을
마침내 갈 곳 없어져 원점으로 돌아간 늪을 부러워한다
그 깊은 어둠을
허허벌판에 파다하게 핀 망초꽃을 부러워한다
그 생명의 아우성을
더러운 도랑에 꽃잎을 던지는 흰 목련을 부러워한다
그 거만한 자존을
흙 속에서 일제히 귀를 세우고 있는 씨앗들을 부러워한다
그 동지애를
가짜 종이돈을 진짜 돈처럼 꼭 쥐고 있는 티베트 할머니를 부러워한다
그 손때 묻은 간절함을
벼랑의 교만을 부러워한다
그 뒤돌아보지 않는 단호함을
◇류시화=198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등
<감상> 세상을 보는 순수함은 너무 아름답고 편하다. 그러나 어느 날, 세상은 이런 게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편안함은 쉬이 왔을지 모르나 마음의 고독함은 쉽게 떠나지 않더라.
-달구벌시낭송협회 김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