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나무 그늘에 와서
그동안 기계병으로 빚진 것을
갚을 수 있을까 몰라.
이 시원한 바람을 버리고
길을 잘못 든 나그네 되어
장돌뱅이처럼 떠돌아 다녔었고,
이 넉넉한 정을 외면하고
어디를 헤매다 이제사 왔는가.
그런 건 다 괜찮단다.
왔으면 그만이란다.
용서도 허락도 소용없는
태평스런 거기로 가서,
몸에 묻은 때를 가시고
세상을 물리쳐보면
뜨거운 뙤약볕 속
내가 온 길이 보인다.
아, 죄가 보인다.
◇박재삼=1955년 서정주에 의해 <섭리><정적>이
추천되면서 등단
시집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천년의 바람>
<박재삼 시집>
1977년 한국시협상, 1982년 노산문학상,
1983년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감상> 당산나무 그늘, 시를 읽으며 집나간 탕자처럼 나그네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다 때 묻은 어떠한 나의 모습도 ‘괜찮다 괜찮다 왔으면 그만이란다’ 엄마의 품처럼 위로 받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자기의 자리를 찾으면 떠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삶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한 자리를 지키고 그늘을 드리우고 사는 게 나무다. 똑!똑! 해탈의 문을 살며시 두드려 지난날의 삶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용서도 허락도 없이 편안한 안식이 되는 그런 고향 나무 그늘이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어릴적 뛰어놀던 고향이 그리워진다. -달구벌시낭송협회 오순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