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에 햇빛을 주지 않아야 콩에서 콩나물이 나온다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긴 기간 동안
밑 빠진 어둠으로 된 집, 짚을 깐 시루 안에서
비를 맞으며 콩이 생각했을 어둠에 대하여
보자기 아래 감추어진 콩의 얼굴에 대하여
수분을 함유한 고온다습의 이마가 일그러지면서
하나씩 금빛으로 터져 나오는 노오란 쇠갈고리 모양의
콩나물 새싹,
그 아름다운 금빛 첫 싹이 왜 물음표를 닮았는지에 대하여
금빛 물음표 같은 목을 갸웃 내밀고
금빛 물음표 같은 손목들을 위로위로 향하여
검은 보자기 천장을 조금 들어 올려보는
그 천지개벽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어두운 기간 동안
꼭 감은 내 눈 속에 꼭 감은 네 눈 속에
쑥쑥 한 시루의 음악의 보름달이 벅차게 빨리
검은 보자기 아래-우리는 그렇게 뜨거운 사이였다
◇김승희=시집 <태양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달걀 속의 생>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 <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
<감상> 햇볕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과는 달리 콩에 햇빛을 주지 않아야 콩에서 콩나물이 나오는 것은 검은 보자기 아래―우리는 그렇게 뜨거운 사이였다 는 시인의 재미있는 표현에 생각해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란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이 콩나물만큼은 통하지 않을 만큼 돈독한 사이가 아니었을까 하고 재미있는 생각도 든다. 오늘저녁은 옛날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콩나물 반찬 기억하며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한 번 푸짐하게 차려 볼 생각이다.
-달구벌시낭송협회 오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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