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와 ‘없다’ 사이로 양떼를 몰고
‘있다’ 와 ‘없다’ 사이로 양떼를 몰고
  • 승인 2017.09.0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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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산




창밖 벤치에 그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지난 가을 헤어진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이

앉아 있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뭐해?“ 톡을 보내던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내 슬픔이 앉아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꽃잎들이 지고……

그 사람이 바르던 스킨 냄새가 스며 들어와

풍경 속 그 사람과 생각 속 그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 생각하다가



산다는 건 뭐고, 사랑한다는 건 뭐며, 내가 죽어도 그 사람은

저기 앉아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내가 늦은 저녁을 준비하며 달그락달그락 그릇 씻는 소리를 듣다가

‘있다’와 ‘없다’ 사이로 아득하게 열리는 초원으로

우리 안에 가둔 생각들을 몰고 아주 먼 길을 떠납니다.

어 그 사람이 일어나 손을 흔드네요.

다 어두워진 시각에 흩어지는 생각들을 몰고 길을 떠나는 게

우스운가 봐요.

삘릴릴 삘릴리……, 오늘 저녁 서역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윤석산=197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나는 왜 비 속에 날뛰는 바다를 언제나 바라보고만  부르는 걸까> <다시 말의 오두막집 남쪽 언덕에서>
 <우주에는 우리가 지운 말들이 가득 떠돌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의한 통증>
 제15회 윤동주문학상 수상


<감상> 때로 우리는 슬픔에 대하여 생각한다. 더욱이 슬픔을 게워내어 상기하는 나의 행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환상과 현실사이 ‘있다’와 ‘없다’ 사이. 아내가 저녁을 차리는 사이 날은 어두워지고 시인은 지난 사랑에 대한 슬픔을 생각한다. 생각을 우리 안에 가둔 양이라 표현했다. 그 많은 생각을 몰고 아주 먼 길을 간단다. 환지통이란 팔다리를 절단한 데서 오는 통증, 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통증이란다.

-달구벌 시낭송협회 윤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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