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에 뜬 초승달에/ 그리움이 둥지 틀다.
해도, 살아서는/ 갈 수 없어
소한 날 내린 첫눈에/ 생각의 끈을 놓치고,
하중 깊은 서러움이/ 그만 달 속으로
미끄러졌네.
젖은 내 몸이 우네, 울고 있네
◇김소운= 199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1997년 <시대문학><월간문학>당선
<감상> 봉숭아, 즉 봉선화(鳳仙花)는 줄기와 가지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측면에서 보면 영락없이 봉황과 닮아 있다. 거창한 이름에 비해서 서식하는 곳은 까다롭지 않아서 여름이면 동네마다 가득 피어나서 서민적인 꽃으로 알려져 있다. 꽃잎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톱 끝에 여며진 채 오랜 시간 함께 한 후 제 몫을 다하고 버려진다. 손톱에 물든 그 빛깔은 매니큐어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가공의 착색과는 달리 오래 갈 뿐만 아니라 지워지는 동안에도 추하지 않게 은근한 매력이 있다. 곱게 물든 두 손을 모으고 달님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승에서 살아서 이루지 못한 그 소원은 달에게 미끄러진 거라 시인은 읊조린다. 달 속에 던져진 하중 깊은 서러움은 그렇게 희미해져가는 봉숭아물과 달리 젖은 ‘내 몸’을 울리고 있다. -김사윤(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