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뻗어나간 갯벌에서
어부 둘이 걸어오고 있다
부서진 배 뒤로 저녁놀이 발갛다
갈대밭 위로 가마귀가 난다
오늘도 고향을 떠나는 집이 다섯
서류를 만들면서
늙은 대서사는 서글프다
거리에 찬 바람만이 불고 이젠
고기 비린내도 없다
떠나고 버려지고 잃어지고......
그 희뿌연 폐항 위로
가마귀가 난다
◇신경림=<문학예술>추천, 만해문학상,
이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시집<농무><새재><새벽을 기다리며> 외 다수
<감상> 켜켜이 쌓인 먼지를 훅 불고 나니 낡은 시집 한 권이 <달넘세>라는 제목을 수줍게 드러낸다. 격렬한 시어를 쓰지 않는 노동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작가의 작품 <폐항>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내려가다 전북 부안 인근에 위치한 줄포항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한때 군산 다음으로 큰 항이었던 줄포항은 바닷물이 너무 깊이 들어오게 되면서 큰 배의 입항이 어려워져 폐항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저녁놀과 부서진 배를 등지고 갯벌에서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은 더 이상 어부가 아니다. 정면에서 이들과 마주친다면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고기 비린내조차 없는 바다는 까마귀만 날아다닌다. 서류를 대신 작성하는 직업이 대서사인데, 일감을 받아두고도 서글프다. 어쩌면 그도 줄포를 떠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을까. 지금은 <줄포만 갯벌 생태 공원>으로 거듭난 이곳이 한 때는 한 시인이 이리도 안타까워하며 그리워했던 곳이었음을 지금이라도 기억해 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김사윤(시인)-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