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24일 수요일    단기 4351년 음력 12월8일(丙辰)
오피니언좋은시를 찾아서

살풀이

기사전송 2017-12-19, 21: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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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자


너는 가고

내 핏줄 속에 송이송이 꽃 피우던 너는 가고

너의 그 많은 이름자만 핏줄타고 흘러다닌다

모서리가 많은 너의 이름자

가시 되어 나의 내벽을 할퀴고 다닌다

나는 안다 이 피 다 뽑아야 이 가시 다 빠질 것

쑥대머리 한 겹 두 겹 안으로 문 잠그고 수그리고 앉았다



이상한 손 하나 가슴에서 튀어나와

너를 향해 손짓해 부른다

고개를 외로 꼬고 부끄럼도 모르고 오라오라

손끝에서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말들

그 말들 두손으로 받쳐들고 하늘에 빌고 땅에 빈다



하늘 깊이 명주수건을 던진다

하늘에서 떨어질 때 命 꼭지에 붙어있던 탯줄을 던진다

흠 하나 상처 하나 없는 온전한 그것을 건지려고

제 몸을 제가 치고 때려서 재촉한다 이윽고 나른하게 잦아든다

바람을 일으킨다 바람 잠재우는 바람

파도를 일으킨다 파도 잠재우는 파도



너도 끊고 나도 끊고 하얗게 비우고 나서야

나에게서 나와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 설래발 치는

길이 보인다 기쁨에서도 얻고 눈물에서도 얻는다



갈까 말까, 말까 갈까, 휘었다 감아올리고, 고이 접었다 다시 펴고

서럽도록 어여쁜 춤사위에 나비들이 함께 난다

들리지 않으면서 들리는 것, 보이지 않으면서 보이는 것 있다

홀려야 한다 내가 나를 홀려야 부끄럼 설움 다 홀리지

홀리어 설움 녹는데 가신들 왜 아니 녹나



갈대밭을 주르르 훑으며 달이 간다 만월이 간다

달의 핏줄 속에 꽃이 핀다

설움 황홀하게 우려낸 하얀 꽃이 송이송이 송이송이





◇서수자=경남양산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모던포엠작가회원


<해설> 너도 끊고 나도 끊고 모든 것 하얗게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길이 보인다. ‘살풀이’ 춤을 추는 것은 모든 것 끊고 자유로워지려는 인간의 처연한 몸짓이다. ‘흠 하나 상처 하나 없는 온전한 그것을 건지려고’ 오늘도 우리는 설움을 황홀하게 우려내고 있다.

-백운복(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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