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살갗 탱탱한 유혹이었지
미끈한 탄력으로 물살 누르며
출생의 미천도 가벼이 헤쳐나갔다
잘생긴 자식새끼들 큰물에 보낸 기억 떠올리며
한평생 받쳐주던 부레마저 내어주고
끓는 물속에서 아름다운 해탈길로 가는가
아무런 장식 없는 몸 깊숙이
세상의 기억들은 삼삼하게 간 배어
붉은 아가미마저 곤하게 잠드는 저녁
두어 잔 소주 걸친 아버지 목소리 낙동강 둑길 거닐고
어린 붕어들 재잘거리는 갈대밭
재첩 한 바구니 줍는 꿈을 꾸었다
◇김인권 = 1997 ‘시문학’ 등단
부산강서문협회원, 시집 <즐거운 몽상> 외
<해설> 한 마리의 고기 위에 강이 오버랩 되고 연이어 인간의 생애가 담겨진다. 출생과 성장의 신산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식들 큰물로 보낸 후 스스로는 술안주로 해탈하는 고기 한 마리. 그 고기 같은 아버지가 낙동강 강둑에 환영으로 거닌다. 어려운 시절, 개천에서 태어나 세상을 헤쳐나가면서 용케도 제법 큰 물고기를 길러 대처로 보낸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대처로 나간 그 자식이 다시 강물을 바라보며 부모님을 추억한다. 아울러 자신의 새끼 물고기도 품어본다. 물고기로 대유된 탱탱하고 미끈한 탄력의 생동감과 부레, 아가미 등의 상징적 이미지가 시정을 더 맑고 깊게 한다.
-서태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