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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동(弘恩洞)의 교훈-화냥년과 호로자식

기사전송 2016-11-14, 22: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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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
논설실장
우리는 자주 화냥년과 호로자식이란 단어를 쓰거나 듣는다. 화냥년은 평소 남자관계가 복잡한 여자를 나쁘게 욕할 때 사용하고, 버릇없는 못된 사람, 특히 주로 남자를 말할 때 호로자식이란 욕을 한다. 그러나 화냥년과 호로자식이란 단어에는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가 담겨 있고, 이런 가슴아픈 역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숨어 있다. ‘홍은동의 교훈’이 그것이다.

화냥년과 호로자식이란 말은 병자호란이 남긴 흔적이다. 후금(後金)은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바꾼 후, 정묘약조에서 설정한 형제관계를 폐기하고 새로운 군신(君臣)관계를 맺고 공물과 군사 3만명을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조선이 거부하자 12만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여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조선은 남한산성에 1만3천의 군사로 진을 쳤지만 병력등의 열세로 45일만에 항복하고, 인조 임금은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청에 볼모로 붙잡혀 가야 했다. 그리고 척화론을 펼치던 홍익한,오달제, 윤집 등도 청으로 끌려갔다. 뿐만 아니라 청군은 철수하면서 많은 조선인 부녀자들을 끌고 갔다.

인조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으나 백성들은 궁궐 앞에 모여들어 청나라에 끌려간 딸과 며느리는 물론 아내를 구해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인조는 청에 끌려간 인원을 조사해보니 대부분 부녀자들로서 그 수가 무려 50만 명이나 됐다. 그러나 청(淸)은 끌려간 사람들에 등급을 매겨 엄청난 돈을 요구 함으로 인조는 하는 수 없이 백성들이 각자의 재산을 팔아서 그 돈으로 청나라에 가서 데려 오도록 하여 많은 부녀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 부르면서 온 동네에서 고생하고 돌아왔다고 위로 해주었다. 그런데 이 환향녀들이 조선으로 돌아온 후 부정한 행위를 일삼자 사회 문제가 되었다. 국가에서는 그 대책을 각 가정에서 엄히 단속하도록 했다. 이에 각 가정에서는 노인들이 밤낮으로 대문을 걸어 잠그고 부녀자들의 바깥 출입을 못하게 하였음은 물론 부득이 외출을 할 때도 치마 같은 것을 뒤집어 쓴 후 눈만 내놓고 다니게 하고 게다가 감시자를 동행케 했다. 이때부터 환향녀를 화냥년이라고 하며, 멸시했다.

이들 환향녀들은 돌아올 때 이미 임신을 한 경우가 많아, 거기서 낳은 자식을 호로(胡虜) 즉 오랑케의 자식이라 하여 사회에서 냉대했다. 즉, 환향녀나 호로자식들은 멸시의 대상이 아닌 국가의 피해자들이었다.

이때 환향녀들은 자신의 순결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자결을 하는가 하면 돌아온 여인들도 청군에 더렵혀진 여인이라는 주위의 손가락 질과 내 쫓김에 고향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슬픈 신세가 됐다. 인조는 환향녀가 사회적 문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됨에 따라 홍제천 물에 몸을 씻고 도성에 들어오면 다시 정조에 대한 논란을 하지 말라는 교지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홍제천 인근의 홍은(弘恩)동은 여자들이 왕의 많은 성은을 입었다는 데서 홍은동이 되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인간 개인의 삶도 그렇듯이 국가의 운명도 때론 피할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성실히 일한다고 해도 실직의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따라 개인이나 국가의 운명도 달라진다. 오늘날까지 화냥년과 호로자식이란 단어가 남아 있지만, 정조의식으로 선의의 피해를 당한 많은 부녀자들에게 부정한 여인이란 멍에를 말끔하게 걷어준 국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사회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노력이 바로 국가의 정책이자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처럼 혼란스런 시기도 드물다. 근본이 무너진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의식이 지금의 국가 혼란을 불러왔다. ‘11·12 민중대궐기대회’는 국가가 스스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탓에 주권자인 국민이 대신 나선 사건이다. 혼란정국이 ‘화냥년’과 ‘호로자식’을 만들어낼지라도 국민은 ‘홍은동의 교훈’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국가의 밝은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촛불을 불사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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