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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의료칼럼

진료실 폭력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기사전송 2016-11-06, 21: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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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마크원외과 원장
얼마 전 우리 지역에서는 또다시 가공할 만한 진료실 폭력사건이 발생했다. 대구인근 지역 거점병원에서 82세 노인환자가 자신을 진료 중이던 내과 의사선생을 미리 준비한 흉기로 복부와 가슴을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3년 전에도 대구의 모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이 20여 년간 진료하던 환자에게 미리 준비한 흉기에 수차례 난도질당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사건이었다.

3년전 사건을 포함한 대부분의 진료실 흉기난동 사건은 ‘그럴만한 위험성이 있던’ 정신질환 병력 환자가 저질렀거나 병원에 불만을 품고 폭력을 행사하던 와중에 일어났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단순 ‘고혈압’ 환자였고, 이전의 정신질환 진단이나 치료병력이 없었으며 게다가 여든이 넘은 노인이었다. 범죄 동기도 황당하기 그지 없다. 수년전 타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의 일 때문에 의사를 불신하는 심리상태였고 그래서 자신을 진료하는 내과의사가 고혈압 치료제가 아니라 혈압을 올리는 약을 처방해서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망상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였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묻지마 범죄였고 따라서 진료실 의사로서는 예방이나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18대 국회에 발의되었으나 폐기되었었고, 19대 국회에서는 2014년 4월11일, 민주통합당 이학영 의원이 다시금 대표 발의한 의료법 일부 개정 법률안(진료실 폭행방지법)이 올해 5월, 19대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하여 입법예고가 된 상태이다. 이제 11월부터는 이 법안이 실효를 가지게 되어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의료행위를 행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 종사자(의료기사와 간호조무사 포함), 또 진료를 받는 환자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가한 경우에는 5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한 대구시 의사회는 이 법안과는 별도로 의료진에 대한 폭력행위에 대하여 의료법이 아니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보다 엄벌할 수 있도록 대구지방경찰청과 협약을 맺은 상태이다.

물론 명확한 법적인 근거를 토대로 한 강력한 처벌은 진료실 폭력 행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환기시킬 수 있고 범죄 발생률을 억제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일단 범죄와 범법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 어떠한 처벌 조치도 사후 약방문에 불과해져버린다는 사실이다. 즉, 법적인 처벌 조항이 가지는 사전 예방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처벌 이외에도 여러 가지 예방 수단을 강구하고 실행한다.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률을 낮추기 위하여 1차 예방수단으로 속도제한을 시행하고 어길 경우 범칙금을 부과하지만, 2차 예방수단으로 고속도로에 과속감시카메라를 설치하며, 그도 모자라 속도제한 표지판도 여러 곳에 설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을 의미한다.

진료실, 응급실, 입원 병동 등 모든 의료기관의 진료 공간은 길거리와는 또 다르다. 가뜩이나 심신이 나약해진 환자들이 치료 받는 공간이며 그 곳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이 진료에 집중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상황은 결국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엄청난 2차 피해를 유발한다.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119 구급차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 당연한 도리인 것처럼, 이제 진료 공간의 폭력행사에 대하여 남의 집 불구경하는 듯 한 사회의 시선을 바꿔야만 한다. 예를 들어 언어폭력만으로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에게는 직접적인 외상과 장애를 유발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다른 환자들에게는 엄청난 상해를 끼칠 수 있다. 병동과 진료실도 마찬가지이다. 진료실, 응급실 폭력·난동 사건을 의료진에 대한 폭행 그 자체로만 볼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범죄 행위가 만연한데도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우리 자신에게도 2차적인 피해가 그 언제 어디서라도 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이 진료실 폭력 사건의 진정한 본질이다.

미국에서는 진료실에 들어올 때에 환자 자신이 소지한 소지품을 최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다. 진료실 입구에 비치한 작은 라커에 개인 소지품을 보관하게 하거나 진료실에 입장할 때 본인의 소지품을 간호사 등 진료 보조 인력에게 전달하는 것이 일종의 관습처럼 정착되어있다. 이러한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도 하루아침에 자리 잡을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미국에서 이런 문화가 널리 자리 잡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만연했던 진료실 폭력사건이었다는 점을 주지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장기적이고 꾸준한 계도와 홍보활동을 통하여 하나의 진료실 문화로서 정착시킬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한 관심과 노력을 통해 의료진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피해자인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줄여나가야 한다. 119 구급차를 위해, 소방차를 위해 길을 터줘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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