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의무법’ 제정에 대한 유감
‘설명의무법’ 제정에 대한 유감
  • 승인 2017.01.0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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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경영상의학과의원 원장
우리 사회에서 의사는 강력하게 감시해야할 잠재적 범죄자요, 의사단체는 부패하고 부도덕한 범죄의 온상인가. 의사를 규제하는 또 하나의 의료법 개정안이 확정되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았을 경우,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 12월 20일 공포된 것이다.

이 개정안은 처음 발의될 당시에는 수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료행위에 대해 의사가 진단명, 진료 필요성과 방법 및 내용, 진료방법의 변경 가능성과 사유 등을 설명하고, 서면동의를 받고, 사본을 환자에게 주어야 하며, 이를 위반 시 자격정지 등의 행정처분과 1-3년의 징역과 벌금 등 형사처벌, 과태료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를 이루고 있었다.

법사위의 심사과정을 거치면서 처음 발의안보다 다소 완화되어 적용 범위를 전신마취·중대한 수술·수혈 등 3개 항목으로 줄이고, 위반 시 처분도 행정처분과 형사처벌 조항은 없앴으나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은 원안대로 통과되어 의료계의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환자는 치료방법, 예상되는 부작용 등 중요한 내용을 충분히 설명 듣고 치료를 선택 또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설명 의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그 당위성은 어떤 의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법으로 규제하고,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하여 처벌 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과잉규제이다. 법조문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법조문에 적시해 설명 의무 위반의 경계선을 명확히 판가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발생 확률이 희박한 부분을 설명하지 않아 처벌 받을 수 있다면,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수술을 할 때에도 아예 의학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줘야 될 판이다.

의료행위와 관련한 모든 것을 환자에게 설명한다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지만, 그렇게 나열식 설명을 한다면 환자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중요한 것을 강조하고 덜 중요한 것은 줄여 환자를 이해시키는 것이 설명의 요령일 것인데, 이러한 면책용 설명은 환자의 혼란을 초래하여 진료 현장의 오해와 상호 불신을 양산할 것이 우려된다.

의사의 설명 의무는 법으로 규정하기에 적절하지 않으므로 법적 의무라기보다 도덕적 의무이자 전문가의 직업윤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가 자식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듯이 환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역시 의사의 당연한 도덕적 의무이다. 법적 의무와 도덕적 의무는 그 성격이 다르고, 구현하는 방법 또한 다르다. 법적 의무인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면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하겠지만, 도덕적 의무인 효도를 하지 않았다고 처벌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도덕적 의무인 설명 의무를 태만하였다 하여 처벌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적 의무와 도덕적 의무가 적절히 나눠지고 조화를 이룰수록 사회가 안정되고 풍요해진다. 이러한 의무를 정확히 판별하여 제대로 자리 잡도록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다. 정부와 국회가 이런 개념을 염두에 두고 이번 개정안을 발의한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더욱이 의사에게 설명 의무가 있다는 사실은 대법원 판례 등을 통해 이미 인정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조문화하겠다는 것은, 환자를 보호하겠다는 좋은 입법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의료계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최근 몇 년 국회와 정부가 발의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보면,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잡은 듯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와 환자가 원활히 소통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는 자율성을 기반으로 의사의 도덕적 의무의 영역에서 해결책을 논의 할 화두이지, 처벌 일변도의 법 규제 제정으로 해결 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처벌위주의 환경 하에서는, 의사는 제대로 된 소신 치료는 접어두고, 만에 하나라도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의 경우의 수를 먼저 따지며 방어 진료에 골몰하게 된다. 이번 개정안 같은 처벌위주의 정책은 의료 환경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 확실하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귀속될 것이다. 새해에는 의료계에도,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의사와 환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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