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곰 같은 여우
[문화칼럼] 곰 같은 여우
  • 승인 2018.02.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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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지난 1월 30일 미국 워싱턴 의회에서 열린 대통령 연두교서 관련 기사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 자리에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와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Otto Warmbier)의 부모, 전사한 미군 장병 묘에 꽃과 성조기를 꽂는 활동을 벌인 12세 소년, 마약 중독 여성의 아이를 입양한 경찰관 부부 그리고 탈북자 지성호씨가 초청됐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미국 대선에 나선다고 했을 때 아마도 많은 사람이 실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의 이미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는 3번의 결혼을 거치는 동안 우리에게 난봉꾼으로 비춰졌다.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Apprentice)를 진행하며 한때 유행어였던 ‘넌 해고야(You’re fired)’를 날리는 그를 보며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스 유니버스 등 미인대회와 WWE와 같은 프로레슬링 사업을 하는 트럼프는 적어도 존경의 대상은 아니었다. 협상의 달인이다·공격적 경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할지라도, 방송활동 외에도 다수의 영화 그리고 많은 책을 저술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비도덕적이고 돈만 많은 대단히 거친 사람이란 이미지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이 됐다. 당시 우리 언론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그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그는 예상대로 전 세계를 흔들어 놓았다. 특히 코리아 패싱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얼을 빼놓는 행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이번 연두교서에 앞서 열린 다보스 포럼의 금메달감은 트럼프라는 평이다. 돋보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도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도 아닌 트럼프가 다보스 포럼에서 가장 눈부신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사람들을 이번 연두교서에 초청 했다는 것은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목적은 너무나 분명하고, 우리에게 재앙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코피작전(bloody nose strike)의 정당성을 쌓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감동 스토리 연출은 멋있다. 깊은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 줘야 하는 사람들을 찾아 함께한다는 것은 의도된 연출 일지라도 높이 사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보기 힘든 광경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연두교서 도중 오토 웜비어에 대해 언급하며 그의 부모를 소개했다. 눈물 가득한 그들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이었다. 사람으로서 감내 하기 힘든 참척(慘慽)의 아픔을 안고 사는 그들은 세상이 아들을 기억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가장 주목 받은 사람은 탈북자인 지성호씨 였다. 배고픔에 지쳐 쓰러진 그를 열차가 덮친 일, 그로 인해 왼쪽 팔다리를 잃고 마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 받은 일 그리고 불구의 몸으로 아버지가 만들어준 목발을 짚고 수천 킬로미터를 돌아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일들을 트럼프가 설명하는 동안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고난을 극복한 무쇠 같은 청년의 얼굴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트럼프의 소개에 그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일어나 아버지가 만들어준 그 목발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런 그에게 모두가 큰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초반의 너무나 리얼한 전투장면 묘사와 다수가 희생하더라도 한명의 병사를 구한다는 내용의 인상 깊은 영화였다. 우리는 지금도 목격한다. 6.25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단 한명의 병사도 두고 가지 않겠다는 정신은 아름답다. 이러한 그들 사회의 보편적 정서를 이번에 잘 연출해냈다. 어느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이런 곰 같은 여우를 봤나’ 트럼프가 그런 격이다.

다만 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그들이 준비하는 코피작전은 우리에게는 코피 정도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쌍코피가 터질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별 힘이 없어 보인다. 지성호씨의 휴먼 드라마가 미국에 의해 연출된 것이 그 단면이다. 감동적 이야기에 의한 응축된 에너지를 우리는 만들 수 없을까? 그러면 이웃집 코피에 덩달아 우리까지 깨질까 전전긍긍하지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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