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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교육논단

나는 왜 아이를 더 낳지 못했나

기사전송 2018-01-04, 21: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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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오시면서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서러움을 겪었던 엄마는 늘 “여자도 일을 해야 한다. 남편한테 의지하며 살지 말라.”고 가르쳤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불평등을 겪어 본 적도 없었다. 학교 친구들 중에는 자신의 꿈이 ‘현모양처’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런 친구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친구들 역시 많았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1970년대 생들은 “오빠와 남동생을 대학 보내야하니까 너는 공부를 그만하라.”거나,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자란 첫 세대일 것이다. 나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부족하다거나, 여자니까 참아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자 상황은 급변했다. 나는 계속 일을 하고 싶은데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남편은 아이와 상관없이 직장을 다니는데 나는 당장 모든 일을 그만둬야 했다. 시댁과 친정이 다 멀어서 아이를 돌봐줄 가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혼자 키운 시간은 내게 ‘절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아이가 자지 않고 밤새 울어댈 때,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나는 새벽까지 아이를 업고 아파트 놀이터를 서성여야했다. 내가 독감에 걸려서 혼자 서 있는 것조차 힘든 때에도 아이를 업고 울면서 병원에 갔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남편과 나는 동등한 관계였으나 아이를 낳자마자 나와 남편의 간극은 너무나 멀어졌다. 함께 만든 자식인데 왜 나 혼자 이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나 억울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제까지 나는 “네가 최선을 다하면 뭐든 할 수 있다.”라고 들으며 자라왔는데, 최선을 다해도 점점 더 힘들어지기만 하는 육아를 경험하며 ‘세상이 나를 속인 것’이라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가장 괴로웠을 때는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원하는 시간에는 아이를 맡길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월·수·금 2시부터 6시까지만 아이를 맡기고 싶었던 나는, 모든 어린이집으로부터 “월·수·금만 아이를 맡아줄 수는 없다. 특히 6시까지 맡아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지금은 저녁까지 봐주는 어린이집이 생겼다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3~4시면 어린이집은 문을 닫았다. 일곱 번째 방문한 어린이집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오면서 나는 ‘일주일에 몇 시간 아이를 맡길만한 곳도 없는 이따위 거지같은 나라에 아이를 낳아주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이를 깨물며 각오했다. 내가 경력단절여성을 벗어난 것은 그 뒤로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수십조 원을 쏟아 부으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3년 전 아이를 낳은 내 동생은 나와 똑같은 문제로 힘들어했다. 동생은 “일과 아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요구에 매일 절벽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공부해 대기업에 들어간 동생은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뒀고, 나와 같은 이유로 울면서 아이를 키웠다. 올해 직장어린이집에 있는 곳에 재취업을 하며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았으니 그나마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는 운이 좋은 편이다. 아이를 둘 셋씩 낳으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들은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지만, 부모님의 노후를 망치는 죄인이라는 죄책감과 양육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지옥을 경험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자랄 때는 남녀불평등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다가 아이만 생기면 여자가 얼마나 억울한 존재인지 뼛속까지 느끼게 되는 여자들. 그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이기적이라거나 모성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면 어쩔 수가 없어서’다. 사회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을 치켜세우면서 아이도 많이 낳으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것은 여자 혼자 해야 한다.

여자들의 문제가 이렇게 절박한데 정부에서는 아이를 하나씩 낳을 때마다 돈을 더 주겠다고 말한다. 그깟 돈은 우리가 벌면 된다. 우리는 그걸 하겠다고 남자들과 경쟁하며 공부한 거다. 그러니 어리석은 정책은 집어치우고 ‘어떻게 하면 여자들을 벼랑 끝에 서지 않게 할지’를 고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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