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책 펴낸 문현숙씨 오남매
가족책 펴낸 문현숙씨 오남매
  • 정민지
  • 승인 2013.10.2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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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조금 특별한 다섯 남매의 ‘오중주’

한 집에 살았지만 서로 다른 기억·감성 하나로 엮어

가까이 살며 10년째 이어온 ‘화요모임’ 가족애 비결

“1년에 한 권 책 내는게 목표…꿈, 포기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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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쓰는게 가장 행복하다는 문현숙(4번째)씨와 동생들(앞쪽부터 진숙씨, 희숙씨, 강숙씨)이 책에 둘러싸여 환히 웃고 있다.

머리색부터 각자 달랐다. 오남매가 함께 쓴 책 ‘아름다운 유산’에 이어 ‘부자완두콩의 오중주’를 내게 된 문현숙(49)씨 4자매는 스타일부터 말투, 성격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주부, 목사, 미용사, 음악교사, 미술선생님, 직업도 제각각이다. 이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책을 가까이하고 서로가 가족이자 친구며 각각의 다른 재능을 가졌다는 것.

부모가 물려준 사랑과 재능을 ‘아름다운 유산’이라 여기는 오남매 중 현숙, 희숙(45), 진숙(44), 강숙(41)넷을 만나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를 들었다.

40년이 넘은 ‘팀워크’로 뭉친 이들은 쉴새없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사는 이야기를 풀어놨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 낀 세대로서의 불안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성숙의 과정, 늦둥이 출산과 내 꿈을 좇는 희망의 이야기까지 그들의 삶이 바로 오늘 우리의 삶이었다.

평범해서 더 특별한 이들이 담담하게 가족과 인생이야기를 풀어 낸 책이 곧 나올 예정이다. ‘평범한 인생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말을 이들을 보며 떠올려본다.

◇우리가족 오남매가 같이 낸 책

현숙씨는 ‘큰성’이다. 오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동생들에 비해 먼저 접해본 게 많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재미있는 일, 맛있는 음식, 좋은 책이 있으면 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내 삶쓰기’도 그랬다.

지난해 대구 서구청이 교육청과 연계해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자 현숙씨는 셋째인 희숙씨에게 “같이 공부하자”고 꼬드겼다. 3개월 글쓰기 과정의 마무리는 ‘가족책쓰기’. 이번엔 남은 동생들까지 합류시켰다. “언제나 총대를 메고 동생들에게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편”이라는 현숙씨는 “작년에는 오남매가 같이 책을 낸다는 데 의미를 뒀다면, 이번에 나올 책은 글자크기부터 배치, 편집까지 우리가 직접해 진정한 가족책이 됐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큰성’ 현숙씨의 동생들은 목회활동을 하는 둘째 병구(47)씨와 우직한 성격에 미용실을 운영하며 철학책을 좋아하는 셋째 희숙씨, 톡톡쏘는 입담에 현실적인 책을 좋아하는 음악선생님 진숙씨, 오남매의 책사로 있는듯 없는 듯 언니·오빠들의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조용한 막내 강숙씨다.

‘부자완두콩의 오중주’라는 제목의 이번 책에 대해 넷은 “각자의 색이 모두 달라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현숙씨는 “같은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에 대한 기억도 제각각이고, 같은 장소, 같은 상황에 대한 서로의 기억과 감성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책을 내면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한 명씩 끌어들여 결국 다섯이 함께 책을 만들게 됐다”고 출판 과정을 설명했다.

서구청에서 운영하는 ‘내 삶쓰기’ 프로그램은 지역의 평생교육 사업의 하나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삶에 대한 자신감과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누구나 참가해 글 쓰기 방법을 배운 다음 결과물로 ‘내 책’을 출판토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대구시 교육청의 후원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해 올해도 봄에 이어 가을학기 책 쓰기 과정이 진행중이다. 초반에는 25명으로 시작하지만 글쓰기의 괴로움은 수강생을 채 10명도 남지 않게 했지만 현숙씨와 희숙씨는 그 중에서도 열혈 수강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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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는 문현숙, 희숙씨가 ‘책쓰기’수업을 듣고 있다.

◇다른 삶의 하모니가 5중주로 엮여

물리적인 계기가 글쓰기 프로그램이라면 심리적인 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이다. 셋째 희숙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돼 그것이 계기가 됐다”며 “아버지가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컸다. 물려준 재산은 없었지만 형제들에게 다양한 재능이라고 하는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주셨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처음 책을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제목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두 번째인 이번 책은 각자 다른 삶을 살지만 조화를 이뤄서 ‘오중주’라는 제목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책에 들어가는 글의 소재는 다양하다. 넷째 진숙씨는 2년 전에 늦둥이를 낳아 일을 쉬면서 ‘애 키우는 재미’에 빠진 이야기를 썼다. “흔히 말하는 ‘늦둥이 출산’이 최근 붐이기도 한데 내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니 낯설었다”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들이 TV에서 남일처럼 여겼던 각종 사회현상을 직접 겪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진숙씨.

어머니의 치매와 둘째와 넷째의 늦둥이 출산, 골드미스인 막내 강숙씨, 창업에 성공한 희숙씨 등 문씨네 가족들의 현재가 우리사회의 현재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가까웠던 고모가 뇌졸중으로 하루아침에 돌아가신 일과 객지에서 혼자 살던 젊은 조카의 죽음, 스마트폰으로 자녀와 대화가 단절된 집안 풍경, 돈과 꿈 사이에서 좌절하는 중년의 삶이 이 가족들의 주변에 녹아있었다.

특히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대 사이에 낀 40대의 컴맹 여자들은 이번 출판을 계기로 컴퓨터와 친해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한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이번 책의 편집을 도맡은 막내 강숙씨는 언니들에게 기초적인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모든 것이 온라인화되고 우리도 각자 떨어져 있는 상태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컴퓨터라는 도구를 이용해야 했다. 나 같은 경우 직업상 컴퓨터에 익숙해 몰랐는데 언니들은 너무나 간단한 것까지 알려줘야 해 힘들었다. 어린아이들도 아는 기초적인 것이라 빼고 설명했는데 그것조차 이해를 못해 난감할 때가 많았다. 일종의 세대간 디지털 격차를 느꼈다. 우리가족이 시대가 변하는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숙씨의 토로에 언니들은 “종이에 쓰는 것이 가장 믿을 만하고 편하다”고 반박했다.

◇아무리 자주 만나도 늘 할 말 많은 가족

현대사회의 핵가족화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바꿨다. ‘부’라고 하는 경제적인 환경도 한몫해 ‘없어도 같이 나눴던’ 가족문화가 ‘남들과 비교해 뒤지고 싶지 않은’ 경쟁의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이들 오남매는 꿋꿋하다. 서구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까운 곳에 뿌리내려 왕래가 잦고 일주일에 한번씩 근 10년째 ‘화요모임’을 이어오는 것이 ‘가족애’ 유지의 비결이다. “어릴 때는 뜯고 싸웠다(웃음). 한 방에서 복작이며 살아서 싸울 때도 많았지만 사이가 좋았다. 지금도 서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우리들과 자식들이 같은 초등학교 동창”이라며 현숙씨는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호적상으론 막내를 빼고 모두 연년생이다. 할아버지가 호적에 잘못 올리셔서 66년부터 69년까지 위에 둘은 한살씩 아래로, 아래 둘은 한살씩 위로 돼 있어 동사무소 가면 1년에 한 명씩 낳느라 어머니가 바쁘셨겠다는 농담을 많이 듣는다.”

화요모임은 문씨 자매의 일종의 ‘사조직’이다. 10여년간 첫째, 셋째, 넷째가 일주일에 한 번씩 화요일마다 모인다. 매주 만나도 할 얘기가 많느냐는 질문에 현숙씨는 주저없이 말한다. “매주 보니까 할 얘기가 많다. 가끔 보는 친척이 반갑기는 해도 할 얘기가 없는 것을 생각해 보라.”

만나면 주로 인근 두류공원에 가고, 자판기 커피 한 잔 하면서 책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너무나 건전한 가족이다.

엄마들만큼 자녀들도 돈독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현숙씨는 “언니가 족발집 해서 대박나면 동생들도 내리 족발집한다”는 농담을 던졌다. 넷째와 막내가 음악과 미술을 각각 전공하면서 조카들도 먼저 걸어온 이모들의 도움으로 이 분야를 전공하게 된 것을 비유한 것이다. 플룻을 전공한 진숙씨는 “가난한 집에서 대학을 ‘제때’ 간 사람은 오빠가 유일하다. 남자니까 대학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여자들은 고등학교만 제대로 나와도 감지덕지였는데, 나와 강숙이는 혼자 벌어서 공부해 늦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다. 감히 꿈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남들이 보면 유별날 수도 있는 가족애. 결혼하고 20년을 같은 동네에 살고 남편들끼리도 친한 이들에게 누군가는 보통의 형제관계를 넘어선다며 특이하고 이해못하겠다는 반응도 보인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미덕처럼 돼버린 요즘 세태와는 확실히 다르다. 남매가 모두 돈버는 것과 무관하게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 점은 곱지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평범한 인생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

이리저리 튀던 인터뷰는 갑자기 문씨 자매들의 질문공세로 이어졌다. 요지는 ‘이렇게 평범한 우리가 인터뷰 대상으로 가치가 있느냐’는 것.

평소 과장이 심한 현숙씨의 호들갑에 동생들은 알아서 걸러 듣고 커피한잔 마시는 간단한 인터뷰를 예상하고 왔는데 1시간이 넘어가자 슬슬 불안하단다.

요즘처럼 가족의 의미가 희박해지는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고, 오남매가 함께 글을 써 책을 내는 일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그 속에 푹 젖어 있는 사람들만 그 가치를 못 느낄 뿐이다. 글쓰기 과정의 초반에는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마흔이 넘어 글을 쓰겠다고 덤벼든 이들의 용기와 자의든 타의든 책을 내고야 마는 추진력, 평범함이란 비범함의 다른 이름이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계획을 들었다. 올 여름 꿈에 그리던 등단을 하게 된 현숙씨는 1년에 한 권의 책을 내는 것이 바람이다. “돈 때문에 꿈을 접지말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힘을 얻어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현숙씨는 오는 12월 20일께 열리는 책축제를 통해 대구 전역에 시민책쓰기 운동, 가족책쓰기 운동이 확대되길 바랬다. 그 시작점에 오남매가 함께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셋째 희숙씨는 “우리같은 주부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꿈이라는 것은 살면서 끝내는 이루고 싶은 것인데 현실적인 이유로 처음부터 꿈이란 게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돈도 안되는 글이나 쓴다며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주변으로부터 질책도 많이 들었다는 이들. 그때마다 손 내밀어주는 형제들과 가족이 있었다.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함께 가야 멀리간다’였다. 서로의 계획과 바람을 가만히 듣던 ‘큰성’은 동생들에게 물었다.

“계속 같이 가줄래?”

정민지기자 j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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