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브랜드로 세계에 통할 ‘K-패션’ 만들겠다”
“토종 브랜드로 세계에 통할 ‘K-패션’ 만들겠다”
  • 김정석
  • 승인 2014.01.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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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김충환 한국패션산업연구원장

부당 채용·비리 등 불명예 씻고자 과감한 혁신

정치인 출신…꿈 잠시 접고 지방선거 출마 안해

현 자리에서 패션산업 발전 위해 온 힘 쏟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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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대구 동구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하 패션연) 3층 원장실. 인터뷰를 위해 김충환 원장과 마주앉은 기자는 김 원장이 입은 주황빛깔 상의에 자꾸만 눈이 갔다. 대구를 대표하는 패션연구기관의 수장이라면 으레 짙은 정장을 입고 있을 것이란 편견 때문이었을까. 그 모습은 무언가 생경했다.

기자의 눈치를 읽은 김 원장이 불쑥 말을 꺼냈다. “이 옷, 발렌키입니다.” 김 원장은 일할 때 외출할 때 가리지 않고 지역 토종 브랜드인 발렌키의 옷을 즐겨 입는다고 말했다.

㈜평화발렌키의 대표가 패션연의 김시영 이사장인 까닭에 사람들은 발렌키를 즐겨 입는 그의 고집을 깎아내려 헐뜯기도 한다. 그러나 김 원장은 세간의 평에 개의치 않았다.

“지역 패션업계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길은, 케이팝(K-POP)과 같이 전 세계에서 통하는 ‘케이패션(K-Fashion)’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케이패션’이라고 칭할 만한 브랜드가 있나요? 발렌키를 비롯한 토종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나 자신부터 지역의 브랜드를 애용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비리온상’ 불명예 씻고자 칼 빼들어

지난해 패션연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여러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연구원이 부당 채용이나 납품 관련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검·경 수사를 받았고, 직원들의 기강 해이가 도를 지나쳤다는 지적도 수차례 제기됐다. 최근 검찰이 각종 의혹에 대해 무혐의 혹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면서 패션연을 둘러싼 잡음은 잦아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처를 봉합하는 것은 여전히 패션연이 풀어야 할 숙제다.

최근 김 원장은 방만한 운영으로 지적받아왔던 조직 체계를 대폭 슬림화했다. 기획경영본부, 패션디자인본부, 기업지원본부, 연구개발본부 등 4개 본부와 전시사무국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4본부 1사무국 14팀 체제를 1실(기획경영실) 2본부(패션사업본부, 연구개발본부) 9팀 체제로 개편한 것.

“전체 직원 61명 중 간부 직원 수만 19명이었습니다. 95 사이즈의 상의를 입어야 할 사람이 마치 105 사이즈를 입고 있는 꼴이었죠.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고 불편한 모양새였습니다. 체형에 맞는 옷을 마다하고 큰 옷을 입는다 해서 작던 덩치가 하루아침에 커지진 않습니다. 덩치를 키우고 싶다면 옷을 늘려 입을 것이 아니라 꾸준한 운동을 해야 할 일이죠.”

아울러 김 원장은 지난해 패션연에 내홍을 가져온 ‘문제 직원’들에게는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김 원장은 “불성실, 불필요, 부도덕 등 ‘3불(不)’에 걸리는 직원 4명에게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 중 2명은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사표를 제출했고요. 패션연에서 공공을 위한 업무 외에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직원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패션연이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글로벌 패션산업연구원으로의 도약’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것도 이 같은 방향성과 같은 맥락이다.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 패션연의 신뢰성을 회복하고 역량을 강화, 사양화(斜陽化)의 길을 걷고 있다고 평가받는 지역 섬유패션산업의 지형도를 뒤집겠다는 복안이다.

◇떨어지지 않는 ‘정치인 출신’ 꼬리표

조직의 재도약을 위해 칼을 빼든 김충환 원장의 자구 노력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 ‘정치인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김 원장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김 원장의 얼굴이 언론에서 오르내릴 때마다 여전히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물밑작업”이라는 구설이 이곳저곳에서 불거진다. 6·2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시비하는 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 김 원장은 답답한 마음이다.

“지난해 5월 원장직에 취임할 때부터 언론이나 이사회 사이에서 ‘패션연을 발판 삼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패션연이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라 그 우려가 더욱 컸던 것 같아요. 출마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패션연의 임기를 모두 채울 것이고 오는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여전히 그 질문은 들려오고 있네요. 거듭 밝히자면, 올해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습니다.”

김 원장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출마설이 제기되는 이유는, 그가 지난 1995년 대구 북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이후부터 15년 이상 정치권에 몸을 담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구의원을 거쳐 2002년부터 대구시의원으로 일했고 2010~2011년에는 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도 지냈다.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폴리테이아(국가)’에서 ‘인간은 정해진 삶의 방식에 따라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제 경우,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그리 부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랐지만 어렴풋이 ‘나는 공익적인 활동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건 30대 초반일 땝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처음으로 시행될 때 북구의회에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됐죠. 어릴 때부터 품고 있었던 선출직 공무원의 꿈이 이뤄진 것이고, 그 꿈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그 꿈을 잠시 접어둘 생각입니다. 저라고 왜 지방선거에 나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선 대구의 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옳겠죠.”

이런 경력으로 인해 김 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 원장은 “오케스트라로 따지자면, 원장의 위치는 연주자가 아닌 지휘자의 자리”라며 “패션연을 이끌어가기 위해 패션과 섬유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겠지만, 패션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지휘자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데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섬유, 기술수준 높지만 이렇다 할 브랜드 하나 없어
해외 경쟁력 갖추고 산업 활성화 위해 브랜드 개발 필요
봉제지원센터 운영·기능성 교복 개발 등 신규사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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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의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다. 최근 대구시의회가 다른 섬유 관련 기관들은 제쳐두고 패션연에만 대구시 보조금을 2억2천만원 증액한 일로 여러 가지 ‘설’들이 난무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러 의혹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김 원장이 시의원 출신인 까닭에 대구시의회가 ‘전관예우’ 차원에서 보조금 증액을 해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김 원장은 이런 의혹을 부인한다.

“제가 원장에 취임한 이후 많은 내부혁신을 단행했습니다. 조직개편과 구조조정, 임금 체계 단일화, 정년 단축 등 여러 부분에서 짧은 기간 내에 많은 성과를 냈다고 자부합니다. 지난 4년 동안 계획만 무성했던 일들이죠. 보조금 증액도 이러한 성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패션연이 운영하고 있는 패션센터가 연간 3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데, 이런 애로사항도 대구시의회가 감안을 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와 별개로 패션연이 주도해 국비 10억원을 확보한 것도 있습니다. 이는 지역 8개 전문연구기관들이 공유할 수 있는 예산입니다.”

◇“야구엔 류현진 있는데 패션엔 뭐 있나”

김 원장은 패션연과 대구 패션산업의 미래를 ‘브랜드’에서 찾았다. 대구 섬유산업이 소재·염색기술 면에서 수준 높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정작 이렇다 할 패션 브랜드 하나가 없다는 지적이다.

“지금 대구의 패션산업을 둘러보면 소재나 염색 등 1차적인 산업에만 비중이 몰려 있습니다. 이는 지난 1999년 정부 정책에 따라 지역별 특화 산업을 발달시켰기 때문이죠. 대구에 섬유가 있다면, 부산에 신발이 있는 식입니다. 2000년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된 밀라노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밀라노 프로젝트는 섬유의 고도화와 첨단화를 통한 ‘다품종 소량생산’에 역점을 둔 사업인데, 시대가 변할수록 그런 방식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해법은 ‘브랜드’입니다.”

김 원장은 대구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패션 브랜드가 전무한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기자에게 캘빈 클라인, 루이비통, 나이키 등 이름만 들어도 전 세계에서 통하는 패션 브랜드들을 거론하며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갖고 있는 가치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구의 류현진과 추신수, 피겨 스케이팅에 김연아, 가요의 싸이 등등 우리나라의 이름을 빛내고 있는 브랜드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들이 창출해내는 가치도 셀 수 없다. 김 원장은 “해외의 유명 쇼핑가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국 패션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나아가 김 원장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 하나를 잘 키우면, 그와 관련된 업계들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류뿐만이 아니라 신발이나 안경, 액세서리 등 잡화까지 브랜드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되고, 그에 따른 산업시장이 대폭 확장될 것이란 설명이다. 점차 역량이 약화되고 있는 섬유소재나 염색 분야의 산업이 견인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패션연은 지난 2011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스튜디오’ 사업을 운영하며 전국의 실력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을 육성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창조하는 데 패션연이 힘을 보태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사업이다. 올해는 3년간의 입주 생활을 마친 ‘졸업생’ 9명을 배출한 첫해이기도 하다.

◇“한국 패션산업의 미래…희망 있다”

김 원장이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사이 시간은 훌쩍 흘렀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원장실 바깥에는 김 원장과의 미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짓고 있었다. 약속한 인터뷰 시간은 이미 지나 버렸지만, 마지막 질문은 던져야 했다. 올 한해, 패션연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생각하고 있는 사업들이 많습니다. 전부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노력할 생각입니다. 우선 봉제지원센터 운영을 계획 중입니다. 단순한 봉제공간의 지원이 아니라 하이패션 시대를 위한 고급 봉제인력 양성 교육을 진행하는 곳이죠. 향후 한중FTA가 발효되면 분명 봉제인증 같은 제도도 필요해질 것으로 봅니다.

또한 학생들이 6년 동안 입을 교복을 생각했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복은 굉장히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교복은 패션과도 거리가 멀고 가격도 비쌉니다. 예민한 성장기 신체에 좋은 소재도 아닙니다. 학생들은 패셔너블하고 기능적으로도 훌륭한 교복을 입어야 합니다. 패션연은 오는 2월 중순께 세미나를 통해 교복 개발 및 보급 프로그램을 가동할 예정입니다.”

김 원장은 설 명절 휴일을 반납하고 오는 25일 연구원 3명과 함께 독일로 향한다. 26일부터 29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스포츠 용품 및 패션 박람회 ‘이스포(ISPO)’에 참관하기 위한 독일행이다. 김 원장은 이스포에 참가한 국내 업체들을 방문해 힘을 북돋우고 연구원들과 함께 아웃도어·스포츠 산업의 트렌드도 읽을 계획이다.

“비록 패션·섬유 전문가는 아니지만, 패션연 원장으로서 임하는 동안에는 최대한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동양의 밀라노’라고 불리는 대구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꼭 태어났으면 좋겠네요.”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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