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마을이야기]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歷史산행…힐링은 기본
[상주 마을이야기]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歷史산행…힐링은 기본
  • 김상만
  • 승인 2015.08.1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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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수봉리마을

김유신 장군 백제정벌 당시

병력·물자 지원하던 대궐터

한성봉 능선에 쌓은 금돌성

무열왕 삼국통일 전초기지

백화산 곳곳 대몽항쟁 역사

산 입구에 항몽대첩 기념탑

산행·둘레길 걷는 즐거움

역사의 현장에서 심신 충전

옥동서원서 황희 정승의 숨결을 느껴보자
/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항공촬영옥동서원-01/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
황희 정승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옥동서원의 모습.

백화산(933m)이 감싸고 있는 경북 상주 수봉리마을은 마을 자체가 역사박물관이다.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에 걸쳐 있는 백화산을 중심으로 2500여년의 유적과 유물, 그리고 설화가 오롯이 살아 숨 쉰다.

신석기 시대 고인돌에서 신라 무열왕이 임시 행궁으로 사용했던 금돌성, 황희 정승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옥동서원에 이르기까지 옛 사람들의 자취가 진하게 남아있다.

역사 현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봉리마을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에 힐링의 시간을 선물하기에도 더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뿌리 깊은 전통과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상주 수봉리마을을 만나보자.

/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저승골입구/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
몽골 침략군을 격퇴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백화산 저승골 입구.

◇수봉리마을에서 시작하는 역사 산행

해발 933m의 백화산은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할 명산이지만 2007년 우리나라 호적에 올라간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 산이다.

일제가 이 산의 기(氣)가 두려워 호적에서 삭제하고 최고봉인 한성봉(漢城峰)마저 자기네들이 백화산의 기를 사로잡는다는 의미로 ‘포성봉’(捕城峰)으로 바꾼 것이다.

2008년 5월 세워진 백화산 한성봉 표지석 뒷면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잘 새겨져 있다.

“일제가 ‘성을 사로잡다’는 뜻으로 포성봉이라 개칭한 것은 저들의 흉계인데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청원해 옛 이름을 되찾음은 백화산의 영기가 발현됨이다.”

수봉리마을의 백화산은 전국 어디에서나 당일 코스로 산행할 수 있다.

수봉리마을은 낙동강의 지류가 마을을 감싸 흐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산촌마을이다. 헌수봉 앞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수봉리라 부르기 시작했다.

수봉리마을에서 출발해 백화산에 오르면 처음 만나는 것이 작은 사찰인 보현사다. 산길을 걷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때면 대궐터와 금돌성을 만날 수 있다.

대궐터는 660년 김유신이 이끄는 백제 정벌군을 보낸 후 신라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주둔해 추가적인 병력과 물자를 지원하는 전쟁 지도부를 설치했던 곳이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실현한 태종무열왕이 백제의 항복 소식을 듣고 소부리성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다. 지금은 천년의 세월을 버티고 있는 석축으로 그 터만 확인할 수 있다.

백화산성으로도 불리는 금돌성(경북문화재자료 제131호)은 한성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위에 포곡식으로 쌓은 석성이다. 산세를 적절하게 잘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신라시대 김흠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신라시대에는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 활용했고, 고려시대에는 몽고 장군 차라대가 침공했을 때 황령사 승려 홍지가 이끈 관민이 침략군 과반을 죽인 호국성지였다.

/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금돌성내원성곽/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
신라 무열왕이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 활용했던 금돌성 내원성곽.

◇설화는 산길 따라 역사를 꽃피우고

백화산 북쪽 자락에 있는 저승골은 승려 홍지가 몽골의 차라대 장군이 이끄는 군을 유인해 격퇴한 곳이다. 몽골군이 많이 죽었다고 해서 ‘저승골’로 불려왔다.

백화산은 유독 몽골 침략에 얽힌 지명이 많다.

차라대가 홍지에게 대패해 성을 넘지 못하고 한탄한 데서 한성봉(恨城峰)이라고 부르던 것이 지금의 한성봉(漢城峰)으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방성재’는 몽골군이 방성통곡하며 퇴각했다고 해 구전된 지명이다.

수봉리마을 백화산 곳곳에 대몽항쟁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항몽대첩탑전경/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
수봉리마을 백화산 입구에 세워진 상주항몽대첩기념탑.

상주지역 주민들과 출향인사 등 240여명으로 구성된 상주항몽대첩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는 이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2013년 백화산 입구에 항몽대첩 기념탑을 세웠다.

불사이군(不事二君·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의 충절을 지킨 악사에 대한 설화도 있다.

고려의 악공(樂工) 임천대는 고려 말에 거문고를 안고 상주의 화산에 들어가 매일 높은 바위에 올라 북쪽을 보며 거문고를 켰다고 한다.

그는 태조가 거듭 부르자 불사이군의 충절을 꺾지 않고 거문고를 품고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바로 임천석대가 그곳이다.

이밖에 구수천에서 학문을 닦던 선비가 바위에 새겼다는 ‘세심석’(洗心石)도 백학산의 명소로 꼽힌다.

상주 수봉리마을은 산행과 둘레길을 걷는 즐거움,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문화재를 만나는 감동이 있는 곳이다.

백화산 천년 옛길을 걸으며 청정 자연 속에서 닫혔던 마음을 열면 어느새 역사 속 현장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봉리마을에서는 지금도 역사가 흐르고 있다.

상주=이재수기자 leejs@idaegu.co.kr

/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모동면백화산계곡/news/photo/first/201508/img_173768_1.jpg"
산골짜기 굽이굽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상주 수봉리마을 백화산.

상주 수봉리마을에 간다면 반드시 들러야 될 유적지가 바로 황희 정승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옥동서원이다.

황희는 청렴결백한 정승으로 명성이 높았다.

황희는 태종과 세종대에 걸쳐 육조 판서 등을 두루 역임했고 20여 년 동안 의정부 최고 관직인 영의정 부사로서 왕을 보좌했다.

젊은 시절 농부로부터 가르침을 얻고 함부로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등의 설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옥동서원은 황희 정승의 영정을 모시고 학문을 배우던 일종의 사립학교다.

1518년(중종 13)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황맹헌(黃孟獻)·황효헌(黃孝獻)·황희(黃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당초 ‘백화서원’으로 세운 이 서원은 숙종 41년(1715)에 경덕사와 강당을 짓고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정조 13년(1789)에는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옥동’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폐쇄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에는 사당과 강당 등 주요 건물 외에 제물을 마련하는 전사청과 서원 관리인이 거처하는 고사, 화직사, 묘직사 등이 있다.

사당인 경덕사는 황희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식·황효헌·황맹헌·황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 옆으로 온돌방이 있다.

강당은 2층 형식으로 된 기와 건물로 교육 장소와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했다.

매년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84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상주=이재수기자 lee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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