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안전불감증…하청·원청 구조적 문제도
지독한 안전불감증…하청·원청 구조적 문제도
  • 김무진
  • 승인 2015.08.2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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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없이 행복없다-대구·경북지역 건설현장 현주소

낯뜨거운 안전사고

복합환승센터 공사현장 붕괴

물포럼 구조물 무너져 망신

대부분 부실시공·관리 허술

지역 산업재해 증가세

작년 재해자, 전년比 65명↑

90% 중소규모 현장서 발생

사망자도 12명이나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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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에서의 산업재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은 원청인 대형건설사와 하도급 업체의 불건전한 ‘공생’ 관계에 따른 것으로 지적한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세월호 사고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던져준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안전’이었고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이를 외쳐왔다. 또 정부와 각 지자체는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각종 안전 대책을 쏟아냈다. 정부는 국민안전처 신설 등 조직을 개편하는 한편 안전 관련 대응체계도 강화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관심과 대책 마련 등에도 불구, 구조적인 문제를 걸러내지 못함으로써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대한민국 곳곳은 고양종합버스터미널 화재,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의정부 아파트 화재, 인천 영종대교 연쇄추돌사고, 용인 교량 공사 붕괴 사고 등 각종 대형사고로 얼룩졌다. 세월호 참사가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종을 울렸지만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안전불감증을 다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들 사고 대부분이 안전수칙 미준수 및 부실 시공 등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후진국형 인재(人災)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기관 등이 세월호 이후에도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각종 안전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특히 산업현장은 항상 각종 복합재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중에서도 건설현장은 대표적인 ‘안전 사각지대’로 통한다. 하지만 이 같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은 여전히 만연한 안전불감증으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에 본지는 지역 건설현장 안전의 현주소와 문제, 대책 등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최근 대구·경북 안전사고 백태(百態)

지난 7월 31일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 지하 6층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바닥 데크플레이트가 한쪽으로 기울어 무너져 내리면서 12명의 근로자가 7m 아래 지하 7층 바닥으로 추락,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사고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등 조사 결과 공사장 붕괴사고는 부실시공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원인은 빔 브라켓 용접 불량으로 철골 빔이 콘크리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내려앉으면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구조물을 받치는 브라켓이 일부만 용접, 화를 불렀다.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앞서 지난 7월 29일에도 경주지역의 랜드마크로 ‘2015 세계물포럼’ 행사가 열렸던 경주 하이코(HICO·화백컨벤션센터) 지하 1층 전시실에서 천정 부분의 닥트(건물 내 오염된 공기를 바깥으로 배출하고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순환시켜주는 장치)가 갑자기 떨어져 관람객들이 대피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하마터면 큰 피해로 번질 수 있었던 사고였다. 특히 1천200억원이 투입, 준공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관련자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하이코는 이곳 뿐 아니라 1층 전시실 바닥 곳곳에서도 균열이 발생한 것은 물론 전면에 부착된 돌이 떨어지는 등의 하자가 발견, 전형적인 부실 시공 및 허술한 관리감독 문제를 드러냈다.

또 지난 4월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15 대구경북 세계물포럼’ 개막식에서는 ‘자격루’(自擊漏) 퍼포먼스 도중 나무로 만든 2m 높이의 구조물이 무너져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2월에는 경주시 양남면 마우나오션리조트에서 체육관 지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한 부산외국어대학교 학생 등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 역시 시공상 과실과 관리상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인재가 부른 낯 뜨거운 안전사고로 기록됐다.

◇대구·경북 건설현장 안전 현주소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대구·경북지역 건설현장에서는 아직 안전불감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안전관리 미흡 등으로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는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대구·경북지역 건설현장에서의 산업재해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고용노동청 관할 대구·경북지역 건설현장에서 생긴 산업재해자 수는 모두 719명으로 2013년 654명에 비해 65명 늘었다. 사고성 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도 2013년 7명에서 2014년 19명으로 12명이나 증가했다. 더욱이 지난해 대구·경북지역 전체 산업재해자는 총 8천214명으로 이 가운데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재해자는 2천441명으로 전체의 28.6%를 차지했다.

또 지난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전체 산업재해 형태는 추락이 226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전도(넘어짐) 160명, 충돌 84명, 비래(구조물 등에 고정돼 있던 물체의 이탈 등으로 작업자가 상해를 입는 것) 78명, 절단 74명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지난해 지역 건설현장에서의 전체 산업재해자 719명 가운데 120억 미만 중소 규모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근로자는 모두 653명(90%)으로 집계, 다세대주택과 근린생활시설, 상가 등 건설현장의 안전 관리감독 및 규제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건설현장 안전사고 문제는?

건설현장에서의 산업재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은 원청인 대형건설사와 하도급 업체의 불건전한 ‘공생’ 관계에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안전관리자 및 건설업자에 대해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을 부과토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하는 건설공사 역시 국가·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법에 의거 산재를 유발한 건설업체에 입찰참가 제한 처분 등의 조치가 내려진다.

이 같은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 건설현장에서의 산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산재 책임을 하도급 업체가 지고, 원청 업체는 가벼운 처분을 받는 구조적 문제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건설공사에서 하도급 업체는 현장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산재 신고 의무도 대부분 원청이 아닌 하도급 업체가 지는 것이 업계 관행이다. 현장 안전사고 발생 시 원청 업체가 산재보험처리 할 경우 향후 각종 입찰에서의 불이익을 우려, 하도급 업체가 처리토록 압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 산재가 발생할 경우 하도급 업체는 이를 공상처리한 뒤 원청으로부터 그에 상응한 비용을 다른 명목으로 지급받는 일이 허다하다.

이와 함께 비용 절감에 급급해 ‘최저가 낙찰제’로 하도급 업체를 선정하는 것도 대형사고의 반복 원인으로 지적된다. 예산에 맞춰 수익을 내야 하는 하도급 업체는 작업 인력을 줄이거나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안전이 외면받고 있다.

전국건설산업노조 대구경북지부 한 관계자는 “건설현장 안전사고의 근원을 제공하는 건설업계의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청 업체의 산재책임은 물론 신고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며 “아울러 하도급 업체와의 연대책임을 묻는 계약서 명시, 적정가 낙찰제 도입 등 실질적인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설현장 안전사고 줄일 수 없나?

건설현장에서의 안전사고는 현장 근로자들의 안전의식 부족, 미숙련 근로자 증가, 사고예방을 위한 업체의 투자 미비, 감독기관의 허술한 안전관리 등이 주된 원인이다.

우선 안전모 착용 등 안전수칙 준수 등을 통해 사전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안전의 시작이다. 수시 또는 정기 안전교육, 근로자들의 추락·붕괴·낙하 예방을 위한 안전 조치 등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또 설계 단계에서부터 위험요소를 고려하는 설계안전성 검토도 요구된다. 안전과 관련된 사항 등이 포함된 작업계획서를 작성한 뒤 그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사 자재 품질인증 강화도 빼놓을 수 없다.

시공업체의 안전 분야 투자도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공사를 따낸 업주는 일정 규모 이상 공사 시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제대로 지출하는 등 안전 사각지대 보완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중소 규모 현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투자는 곧 좋은 결과로 나타난다.

실제 국내 한 대기업 계열 유명 건설사는 지난해부터 ‘안전 최우선 경영’을 내세우고 총력을 기울여 올 상반기에만 660여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했다. 이 결과 올 상반기 안전사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국내 53%, 해외 50%가 각각 줄어들었다. 이 같은 투자로 인해 장기적으로 사고 감소에 따른 브랜드 가치 상승 등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법적 및 제도적 보완 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재해사고가 빈번한 중소 규모 건설현장의 사고 감소를 위해 현재 4천만원 이상 공사에만 적용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모든 공사로 확대하는 방안 추진이 시급하다. 또 하도급 업체 산재사고에 대해 원청 업체 책임 강화, 설계 단계에서의 명확한 안전성 검토와 관련한 기준 마련 등도 좋은 방법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건설관리공사의 일부 기능 조정을 통해 ‘한국건설안전공단’으로의 조속한 승격을 통해 소규모 공사의 착공부터 준공까지 전 과정에 걸쳐 건설 안전을 지도 및 안전점검을 실시, 재해율을 낮추고 사회적 손실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홍성호 건설정책연구원 박사는 “건설업의 특성상 원청과 하도급 업체 할 것 없이 공사기간 단축, 안전 관련 비용을 줄이려고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많은 산업재해가 발생한다”며 “근로자들의 안전의식 준수, 사업주들의 안전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 미비한 제도적 보완 등이 조화롭게 이뤄진다면 산재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김무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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