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과’ 옛 명성, 마을기업 만들어 지킨다
‘대구 사과’ 옛 명성, 마을기업 만들어 지킨다
  • 손선우
  • 승인 2015.12.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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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평광마을 농가들, 경험·재배 노하우 공유
지역 9천129㏊ 달하던 재배 면적 2010년 153㏊로 줄어
평광동, 큰 일교차 등 자연환경 덕 당도 높고 과즙 풍부
사과즙 공장, 내달 중순 첫 상품 출시·HACCP 인증 추진
평광마을-16
갈수록 움츠러드는 대구 사과가 부활하고 있다. 생산량은 급감했지만 농가들이 모여 ‘마을기업’을 설립해 6차산업에 뛰어들었다. 평광왕건사과마을기업 제공

대구는 ‘사과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사과 수확량이 전국의 80%에 달할 정도로 사과가 많이 재배돼서다. 가수 패티 김은 대구 사과를 소재로 ‘능금꽃 피는 고향’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또 국내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과나무는 대구의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1935년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들여온 이 사과나무는 대구 동구 평광동에 심겨져 있다.

1899년 동산의료원 초대 병원장 우드브리지 존슨 박사가 미국 미주리주에 있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정원에 심은 게 대한민국 사과의 효시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옛 문헌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원래 사과가 있었다. 고려시대에 출간된 계림유사에는 사과를 능금이라고 해 ‘임금’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한때 사과하면 ‘대구’라고 할 정도로 사과나무가 많았다. 평광동을 비롯해 동촌·방촌·반야월 등이 원산지였다. 지금은 평광동 골짜기에 아주 조금 남아 있다. 이곳에선 대구 사과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움츠러든 ‘사과의 고장’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던 대구 사과는 1980년대 이후 위기를 맞았다. 대구에서 사과 수확량이 줄어든 이유는 도시화 때문이다. 과수원 자리에는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섰다. 재배 농가가 줄어들기도 했고, 온난화 등으로 사과의 주산지가 청송, 안동, 문경 등 북부지역으로 옮겨갔다. 9천129㏊에 이르던 사과재배 면적은 2010년 153㏊로 줄어들었다.

평광동은 대구 사과의 명맥을 잇는 유일한 곳이다. 1917년부터 마을 전체가 사과밭으로 덮힐 정도로 대구 사과 재배의 주산지다. 118㏊ 재배 면적에 계단식 사과밭이 펼쳐져 있다. 이 일대에는 탐스럽고 잘 익은 사과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특히 수령 80년을 훌쩍 넘긴 홍옥사과나무가 유명하다. 고령이지만 매년 열매를 맺고 있으며, 맛과 당도가 뛰어나다. 이 나무는 현재 높이 5m, 둘레 1.42m 정도다. 이 근처에는 뉴턴의 사과나무 품종인 ‘켄트의 꽃’도 자라고 있다. 영국의 물리학자·천문학자·수학자·근대이론과학의 선구자 아이작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사과나무 종이다.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서 평광동 사과마을이 유명해졌다. 국내 관광객은 물론 일본 등 외국 관광객까지 찾아 사과를 맛보고 간다.

이 지역은 팔공산 줄기 남쪽에 있어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이 사계절 흐른다. 특히 낮과 밤의 일교차가 10도 이상 차이가 나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사과 생산의 최적지다. 이 때문에 평광동에서 재배한 사과는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해 맛이 뛰어나다.

좋은 품질 덕분에 대구 사과는 2009, 2010년 2년 연속 수출됐다. 지난 2010년 12월 28일 평광동에서 재배한 사과 2천796상자(10㎉)를 말레이시아로 수출했고 2009년에는 대만에 1천240상자를 수출했다. 대구 사과 2년 연속 수출은 1990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국내 시가보다 5천원 정도 저렴한 가격인 상자당 2만5천원에 팔렸지만 농민들의 기대는 크다. 연이은 수출 소식은 대구사과를 전국은 물론 세계에 홍보할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현재 평광동의 사과 재배 농가는 140호로 연간 2천360t의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2011년 140가구에서 2천480t의 사과를 생산했던 것을 보면, 4년 만에 수확량은 120t 감소했다. 올해는 기후조건이 좋아 평광동 사과 생산량이 전년 대비 14% 증가했지만, 시세는 10~15% 정도 떨어졌다. 가격하락과 소비 둔화로 농가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광사과
평광사과.

◇“대구 사과의 부활을 꿈꾼다”

대구시는 지난 2010년 평광동사과 지키기와 관광상품 개발에 나섰다. 평광동사과를 통해 사과도시 명맥을 잇는다는 계획이었다. 시는 먼저 체험관광상품 ‘애플투어’를 개발했다. 두류동 대구관광정보센터~도동 측백나무 숲∼평광동 사과 재배단지∼둔산동 옻골의 경주 최씨 종택을 돌아보는 코스다. 이를 위해 2010년 10월 옛 평광초교~중시량리(왕건 퇴각로)~평광동 사과마을 등 6㎞에 걸쳐 ‘사과 먹고 싶은 왕건 올레길 걷기행사’를 했다. 팔공산 자락인 동구 지묘동은 927년 고려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싸우다 크게 진 지역이다.

이같은 노력에도 대구 사과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평광동 농가들은 갈수록 움츠러드는 대구 사과의 부활시키기 위해 손을 맞잡았다.

사과농가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마을기업을 지난 7월 설립했다. 명칭은 팔공산 왕건길의 의미를 담아 ‘평광왕건사과마을기업’로 지었다. 조합원 30명으로 꾸려진 마을기업은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던 농민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어졌다. 농가들의 사과 재배 경력은 평균 40~50년에 이른다. 이들은 작목반 등을 조직해 경험과 재배기술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이곳의 목표는 ‘6차 산업 추진을 통한 평광마을(대구 마지막 사과재배지) 활성화’다.

지난 마을기업 사업 추진의 첫 번째 결실은 6억여원(정부 지원금 5천만원, 조합원 출자금 3억원 등)을 들여 도동에 세운 사과즙공장이다. 지상 2층 257㎡ 규모로 세워진 이곳은 사과즙가공실, 포장실, 저장고 및 사무실 등으로 구성됐다. 사과즙가공시설은 하루 1천500㎏(1만 봉지)의 사과를 가공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 마을기업은 내년 2월 설 명절에 맞춰 1월 중순쯤 첫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 내년 상반기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현재 사과즙 포장 디자인 용역을 맡겨놓은 상태다.

마을기업은 생산된 사과주스를 전국에 유통시킬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 사과말랭이를 비롯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농업의 6차 산업화(생산·가공·유통)를 추진하기로 했다. 지역 농가를 위한 공동판매, 직거래 장터도 운영할 예정이다.

이 마을기업은 최부현 씨가 대표자로 돼 있다. 하지만 조합원인 농민 30명의 공동출자로 설립된 까닭에 사실상 공동소유 체제다. 따라서 대표이사를 포함한 출자자가 일종의 이사 자격을 갖고 공동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생산과 판매는 물론 새로운 회원 영입 등 주요사안은 모두가 참가하는 정기 회의에서 결정한다. 전원이 사장인 셈이어서 회사 운영에 책임의식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웃 주민들끼리 공동으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분란의 소지가 적다는 점도 이 마을기업이 내세우는 자랑거리다.

최부현 평광왕건사과마을 대표는 “사과즙공장 준공을 계기로 대구 사과가 6차 산업의 성공사례가 되길 바란다”며 “안전한 사과즙 생산을 통해 지역 농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대구의 사과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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