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 없이는 내일도 없다”…취업에 울고 웃는 사람들
“내 일 없이는 내일도 없다”…취업에 울고 웃는 사람들
  • 정민지
  • 승인 2015.12.3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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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부터 50대까지…각양각색 취업 이야기


한때 ‘취업’이라는 단어는 20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던 적이 있었다. 고교 졸업 혹은 대학 졸업 후 20대에 직장을 잡고 평생 그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었던 때다.

정규직, 비정규직, 구조조정, 명퇴, 취업스펙이라는 말들이 나오기 전의 일이다. 2000년대 이후 ‘취업’은 전 세대의 화두가 됐다. 첫 취업을 준비하는 20대부터 결혼, 출산으로 경력단절을 겪은 30~40대 여성, 수십년 근무하던 직장을 퇴직한 5060베이비부머 세대까지 구직자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

심화되는 취업난과 함께 수많은 취업 정보, 각종 통계는 쏟아지지만 정작 구직자의 이야기는 ‘너무나 평범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졸업까지 한 학기만 남은 취업준비생 최용준 씨, 20여년 근무한 직장에서 명퇴해 장년 인턴사원이 된 이명경 씨, 예절교육 강사로 활동중인 경단녀 이미경 씨의 사례를 통해 세대별 취업에 대한 걱정과 고민, 그리고 희망을 들어본다.

“토익 950점·4.0학점도 평범하대요”
최용준
‘스펙왕’ 최용준씨

“최근에 자기소개서(자소서) 준비를 위해 컨설팅을 받았는데 저보고 ‘너무 무난하다, 스토리에 임팩트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정말 새벽 5시에 첫 차타고 도서관에 가고 공부도 여행도 하고 싶어서 한 건데 ‘평범한 스펙’으로 치부되니 좀 충격적이었죠.”

자신이 했던 모든 활동이 ‘스펙’으로 계량화되는 경험을 한 용준씨는 “자소서가 왜 자소설이 될 수밖에 없는지 알겠다”고 말했다.

최근 취준생들은 학점관리와 토익은 기본에 스피킹, 컴퓨터활용능력, 한국사(공기업 등 가산점), 한자 등 차별화를 위해 스펙을 추가하고 있다. 특히 용준씨와 같은 인문계 학생들은 일자리에 비해 배출인력이 많아 고스펙 경향이 더 심해지는 추세다. 소위 ‘전화기과’(②)로 불리는 전기·화학·기계공학 전공은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은 편이라고.

하지만 용준씨는 두려움에 흔들리기보다는 구체적 목표를 정해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취준생 대부분 회사만 고려하고 직무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취업한 선배들에 따르면 시행착오를 피하려면 자기에게 맞는 직무가 더 중요하다고 했어요. 저는 영업관리 분야를 지원할 계획인데 제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수도권, 대기업 중심의 취업시장이 재편되면서 지방에 거주하는 취준생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취업박람회의 규모나 참가업체, 정보력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한 추가비용이 스펙쌓기에 이어 정보획득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반년 뒤 졸업(③)을 앞둔 용준씨는 취업을 못하면 죄인이 돼 졸업식에도 나오지 않는 대학 분위기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탈하게 대학생활을 끝낸 것 자체가 축하받을 일이잖아요. 대학이 취업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데 안타까워요. 졸업예정이나 재학생이 취업시장에서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졸업을 미루는 선배들도 많아졌어요.”

2년간 독하게 공부했던 모범생 용준씨는 이제는 일부러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중이다. “공부가 습관이 돼 재미를 느꼈다고 하면 ‘재수없다’고 하겠죠? 하하. 근데 정말 그래요. 취업도 꼭 성공하겠습니다!”

“기술 배웠는데 나이가 문제 됐었죠”
이명경
‘인생 2모작’ 이명경씨

이명경(53)씨는 지난해 20여년간 근무했던 전화국을 떠나면서 ‘기술’을 배워 제2의 직업을 찾고자 했다.

“전화국 조직개편과 함께 명퇴(④)를 신청했어요. 영업, 전산처리, 고객케어 등 직무를 바꿔가며 20년을 근무했죠. 1년 정도 사전 조사를 하고 재취업에 본격적으로 나섰어요.”

폴리텍 대학에서 CNC가공 기술과정을 3개월 간 수료한 명경씨는 각 구청에서 여는 취업박람회에 참여했다. 기술이 있으면 취업이 비교적 수월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서류도 통과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수십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오는 곳은 없었다.

“나이제한에 걸렸어요. 50대 이상 장년층은 기술직으로 들이길 꺼린다는 사실을 몰랐죠. 주·야간 교대근무가 대부분이라 체력 등 회사는 젊은 층을 선호할 수밖에요.”

기술을 살리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명경씨는 ‘나이제한 없음’을 구직의 1순위로 뒀다. 지난해 11월 달서구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딱 1군데에서 연락이 왔어요. 떡볶이·떡국용 떡을 수출하는 식품회사인데 12월 초에 ‘장년인턴’(⑤)으로 뽑혔어요. 다행이다 싶었죠.”

일주일 정도 교육을 받고 현재 명경씨는 얼어있는 떡을 개별 포장하기 위해 꺼내서 떼어내는 작업과 포장 작업 등을 맡고 있다. 동료 대다수는 중년의 여성들이다.

“3개월 인턴이 끝나면 정규직 채용여부가 결정될 거 같아요. 무슨 일이든 최소 1년은 해봐야지요.”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는 일과는 오후 7시 30분, 꼬박 10시간 동안 이어진다. 여성 동료들 대신 힘쓰는 일도 도맡아서 하고 있다.

명경씨와 함께 최종 면접에 통과했던 3명 중 명경씨만이 그만두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 취업박람회에 참가하는 업체 대부분은 만성적인 일손부족을 겪는 회사, 다시 말해 다소 일이 고된 곳이 많다. 급여도 시급이 적용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과거에 비해 월급이 절반 이하로 적어졌지만, 명경씨의 목소리를 밝았다. 늦게 결혼해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명경씨의 그나마 든든한 구석은 1988년부터 가입한 국민연금이다.

“전화국사업이 사양길로 가면서 5년 단위로 변화가 심해 준비를 미리 했어요. 국민연금도 빠지지 않고 민간 연금보험 등 노후 준비는 해놨습니다.”

취업이든 창업이든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또래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명경씨가 한 마디했다.

“더 좋은 일자리 구하려고 다른 데 가봐도 우리 나이에는 선택 폭이 넓지 않아요. 눈높이를 낮추고 일에 자신을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직업 있다는 것, 존재감 인정받는 것”
이미경씨
‘예절지도사’ 이미경씨

처녀시절 점쟁이에게서 “선생님 되면 잘하겠다”는 말을 듣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는 이미경(여·45)씨는 현재 예절지도사로 활동중이다. 15년 전 결혼과 동시에 일을 관두고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 전업주부로 지냈다.

“결혼 전에 7년 가량 경리로 일했어요. 당시에는 회사가 그렇게 다니기 싫더라구요. 시골에서 여상나오면 대부분 회사 경리, 백화점 판매직, 은행원 등이 자연스런 진로였던 시절이었어요.”

꿈, 적성보다는 주변 ‘언니들’의 삶과 비슷한 것이 최선이라 여겼던 미경씨는 회계 등이 포함된 경리직은 자신과 전혀 맞지 않았다. 최근 시집가는 것으로 취직한다는 신조어 ‘취집’(⑥)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흔했던 일이었다.

“아이들 봐줄 사람이 없어 전업주부로 10년을 보냈어요. 둘째까지 어린이집 보내고 나니 1년 정도 집에만 있게 되더라구요. 그때부터 학부모 교육같은 것을 찾아 들었어요.”

미경씨는 경력단절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는 않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구청에서 하는 무료 강좌 수강생 모집 현수막을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자녀교육 위주로 찾다보니 ‘자기주도학습법’에서 시작한 공부는 예절대학, 수학지도사, 최근에는 교육용 마술까지 확대됐다.

“수업에 가보면 90%이상이 주부들이에요. 아무래도 시간여유가 있는 층이 정해져있으니까. 저는 취미강좌보다 교육 관련 과정들이 재미있어 자격증 공부도 하게됐어요.”

미경씨는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강사로 섰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재능기부라는 이름의 봉사가 아닌 소정의 강사료도 받았다. “청소년수련관에서 두달 정도 자기주도학습 강사로 섰어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웠죠.”

예절지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미경씨는 자신감과 함께 수익을 내는 강의를 하고 싶다는 소망도 생겼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 돈을 받는 강의를 맡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경력단절여성(⑦)의 고민 중 하나인 근무시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주변에서 ‘봉사만 하면 되나 돈도 벌어야지’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재미만 하기에는 경제적 도움도 중요합니다. 결국 직업과 보수를 통해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이니까요.”

미경씨는 다양한 직업군이 생긴 만큼 경력단절여성들의 설 자리도 넓어졌다고 봤다. 꼭 취업이 아니더라도 되돌아 가기 힘든 길인 경력단절을 채울 무언가를 배울수도 있다는 것.

“제가 배움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다른 것 무엇을 해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큰 변화죠.”

정민지기자 jmj@idaegu.co.kr

키워드로 본 취업난

① 스펙왕

2004년 신어로 등록된 ‘스펙’은 흔히 구직자의 학력·학점·토익 점수 등을 의미한다. 최근 한 조사에서 인사담당자들은 구직자 30%가 잉여스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잉여스펙은 석·박사 학위, 극기 경험, 한자·한국사 자격증, 해외 경험, 공인어학성적, 학벌 등의 순이었다.



② 전화기과

‘문송’ ‘인구론’ 등 문과 기피 채용전망 신조어가 나오기도 한다.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전망에 따르면 2024년까지 공대 졸업자는 26만명 부족하고 인문사회계열은 53만명이 넘친다. 과잉수요 대표학과는 경영·경제, 사회과학 등 인문·사회계열이다.



③ 졸업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NG(no graduation)족’으로 불리는 졸업유예 대학생은 지난해 전국 2만 5천여 명으로 이들이 낸 등록금은 56억 원이었다.



④ 명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퇴직 평균연령은 49세였다. 퇴직 이유로 남자의 경우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가 많았다. 재취업한 장년층 절반이 임시직이나 일용직 일자리를 얻었다. 월평균 급여는 184만 원에 불과했다.



⑤ 장년인턴

2013년부터 정부가 1인당 일정 금액을 지원, 기업의 장년층 인턴 고용을 돕고 있다. 만 50세이상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며 최대 3개월의 중소기업 인턴연수를 거치면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다.



⑥ 취집

취업과 시집의 합성어인 ‘취집’은 좋은 의미는 아니다. 취직이 되지 않아 도피성으로 시집을 가거나 계획적으로 시집을 가는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혼여성 구직자들은 ‘계속 취업이 안 될 때’ ‘나이 때문에 입사지원 제한이 있을 때’ 취집을 생각해본다고 답했다.



⑦ 경력단절여성

30대 여성의 또 다른 이름이 ‘경단녀’라는 말이 있다. 15∼54세 기혼 여성 중 경단녀는 205만3천명으로 30대가 109만명이다. 이들이 경력단절되는 가장 큰 이유는 ‘육아’였다.
영남대학교 국제통상학부 4학년인 최용준(25) 씨는 소위 ‘스펙왕’(①)이다. 토익 950점에 평균 학점 4.0,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4학년 1학기를 보냈다. 교환학생으로 가 있으면서 유럽 11개국을 혼자 배낭여행했다. 인터뷰를 했던 12월 19일에도 사랑의 연탄나눔 후원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봉사 시간도 250시간이 넘는다. 남들이 부러워 할 스펙을 가진 용준씨지만 그 역시 취업은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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