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수 느티나무가 지켜온 설화 속 그 마을
천년수 느티나무가 지켜온 설화 속 그 마을
  • 김정석
  • 승인 2016.02.1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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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희망찾기 <북구 연경마을>
대구 최고령 느티나무 ‘할배나무’
서쪽 할매나무와 함께 마을 수호수로
나무 아래서 사랑 맹세하면 백년가약
글 읽는 소리에 왕건도 피해가 ‘硏經’
무태조야동·도덕산 등 지명설화 가득
탐방길·촬영지로 관광자원화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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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최고령 노거수인 북구 연경동 천년 느티나무.

시인 류시화는 ‘나무의 시’에서 ‘네가 외로울 때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라고 노래했다.

그의 시에서처럼 세상에는 사람의 머릿수만큼의 나무가 줄기를 뻗치고 하늘을 향해 있다. 줄기가 연한 어린 나무에서부터 어른이 한 아름에 안지 못할 고목(古木)까지 그 수는 셀 수 없다.

대구 북구 동화천으로 흘러드는 연경천 인근에는 연경마을 주민들의 나무로 1천년을 살아 온 느티나무가 있다. 대구의 숱한 나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다.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았던 주민들도 오랜 세월 뒤틀리고 갈라진 이 느티나무를 오래 전부터 마을을 지키는 보호수로 섬기고 있다.

지금은 연경공공주택지구 공사 현장 한 편에 꼭꼭 숨어 있어 탐방객이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조차 어려운 곳에 있지만, 앞으로 연경지구가 개발되고 지자체의 재조명 사업이 마무리되면 연경동 천년 느티나무는 대구 강북지역의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날 잠재력이 충분하다.

◇대구 최고령 연경동 천년 느티나무

대구시가 지난 2014년 발간한 ‘대구의 보호수’ 책자에 따르면, 대구시가 보호수로 지정·관리하고 있는 나무 304그루 가운데 수령이 500념을 넘긴 나무는 16그루다. 그 중에서 대구에서 가장 수령이 오래된 나무로 기록돼 있는 나무는 무려 1천년의 나이를 가진 연경동 느티나무.

대구 북구 연경동 연경교에서 태봉마을 방향으로 500m 정도 가다보면 연경동 879번지에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약 6m의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서 있다.

1천년 수령을 가진 나무는 둘 중 동쪽 그루로, 높이 약 17m, 가슴높이둘레 6.8m, 둥치밑둘레 7.9m다. 가지가 동으로 9m, 서로 8.5m, 남으로 10.5m, 북으로 11m 퍼져 아직 정정하다.

서쪽 그루는 그보다 약간 작은 나무로서 가슴높이둘레가 4.5m, 둥치밑둘레 5.7m다. 지난 2000년 9월 제14호 태풍 ‘사오마이’의 피해로 큰 가지가 부러진 상태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해마다 대보름 당산제를 지냈다. 전하는 바로는 동쪽 큰 나무를 할배나무, 서쪽 나무를 할매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내려오는 설화로는 남녀가 이곳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맹세하면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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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동 천년 느티나무 인근에 설치된 안내판. 얽힌 이야기에 나무 이야기가 아닌 지명 유래에 대한 이야기만 담겨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연경·무태·도덕…다양한 이야기들

천년나무가 위치한 연경마을을 둘러싼 지명 설화도 흥미롭다.

연경마을의 ‘연경’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군과 싸우기 위해 마침 이곳을 지나다 어디서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와 조심스럽게 지나갔다고 해 후세 사람들이 연경(硏經)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연경동이 속한 행정동인 무태조야동에 대한 설화도 왕건과 연관이 있다.

첫 번째 설은 왕건이 동수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해 도주하면서 부하들에게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고 빨리 가자(無怠警戒)고 군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왕건과 신숭겸이 야행을 하던 중 한밤중에도 아낙네는 열심히 길쌈을 하고 농부는 들에서 열심히 농삿일을 하고 있었으니 이에 왕건이 감탄해 “참으로 무태(無怠·게으름이 없는) 동네로구나”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한다.

이 중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라고 한다면 ‘없을 무(無)’가 아닌 ‘말 무(毋)’를 써서 ‘毋怠警戒’라고 하는 것이 어법상 옳기 때문에 첫 번째 설보다는 두 번째 설에 무게가 실린다.

연경마을 뒤편 도덕산도 왕건과 얽힌 이야기로 이름 붙여진 산이다.

왕건이 견훤군과 공산전투를 하기 직전, 군사를 이끌고 동화천 시냇길을 따라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던지 지금의 연경지 윗동네까지 간 모양이다. 여기서 왕건은 새벽 일찍 공자 사당에 제를 올리는 모습을 보고 “참 도덕을 숭상하는 동네로구나”라고 했다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대구에서 유일하게 1천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나무. 이 나무가 위치한 연경마을과 그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설화.

그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이자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연경동 천년 느티나무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대구시민들은 물론 북구 주민들조차 연경동 느티나무가 대구 최고령의 노거수(老巨樹)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천년 느티나무로 안내해 주는 이정표가 없을 뿐 아니라 느티나무를 찾아 온 탐방객들에게조차 ‘연경마을 입구’ 또는 ‘연경공공주택지구 현장사무소 앞’ 정도로밖에 위치를 설명할 길이 없다.

어렵사리 찾아간 나무에도 주변에 둘러진 낡은 나무 울타리, 보호수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전부다. 울타리 안으로는 무성한 풀과 함께 사람들이 버리고 간 담배꽁초와 각종 쓰레기들이 즐비한 상태다.

대구 북구가 설치해 둔 보호수 안내판 역시 연경동과 무태조야동의 지명 유래에 대한 설명뿐 천년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천년 느티나무 재조명 사업을 제안한 이헌태 북구의원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이 느티나무는 거란족이 고려를 침략할 시점에 태어나 지금까지 천년 동안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앞으로 가족과 연인들의 사진 촬영지, 영화 촬영지, 행사 개최지 등으로 각광받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헌태 의원은 연경동 천년 느티나무와 인근 광해군 태실, 연경서원 등을 포함한 ‘달구벌 역사탐방길’을 조성해 관광지화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같은 목소리에 힘입어 대구 북구도 연경동 천년 느티나무에 대한 관광자원화를 논의하고 있다.

대구지역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를 품고 있는 데다 연경공공주택지구 개발 후 7천여 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이곳에 들어서기 때문에 주거지 내 공원으로도 충분한 개발성을 갖고 있어서다.

현재 북구는 연경동 느티나무에 대한 안내판을 새롭게 조성하고 주변 교통 표시판에도 느티나무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대구시에 건의한 상태다.

북구청 관계자는 “연경공공주택지구의 개발이 마무리되면 동화천과 연결한 생태공원, 숲길 등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그 경로를 따라 연경동 천년 느티나무, 광해군 태실, 연경서원 등을 연결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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