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분석·프로파일링…묻혀진 범죄의 진실 찾는다
DNA 분석·프로파일링…묻혀진 범죄의 진실 찾는다
  • 김민정
  • 승인 2016.02.2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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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목받는 장기미제사건 수사

과학수사로 사건 접근

피해자 묶은 테이프·현장 벽 등

소량의 범인 DNA도 분석 가능

2010년부터 데이터베이스 구축

DNA로 장기미제 1천516건 해결

대구 미제사건 9건 수사 중

공소시효 폐지 후 전담팀 편성

작년 20년차 베테랑 형사 구성

증거 훼손 등 수사 어려움 많아
“미제사건이 왜 X 같은 줄 알아? 범인이 누군지, 동기가 뭔지, 모든 게 밝혀진 사건은 힘들어도 가슴에라도 묻을 수 있지만, 미제사건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잊을 수가 없는 거야.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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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아픔은 치유되지 않는다. 진실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피해자 가족의 고통은 진해지기만 한다.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는데, 현실은 그만 잊으라고, 그만하면 됐다고 한다. 하지만 내 아이, 내 가족을 잃은 유가족은 수십 년 세월이 흘러도 그 억울한 죽음을 결코 잊지 못한다. 미제사건은 끝나도 끝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장기 미제사건을 다루는 tvN 수사드라마 ‘시그널’에서 15년차 베테랑 형사 차수현 역할을 맡은 배우 김혜수의 대사다. 이 한마디는 ‘미제사건’ 수사의 동기를 정확히 알려준다. 시그널은 과거에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 장기미제사건 수사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과거 해결되지 않았던 ‘장기미제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

◆공소시효 폐지…하지만 영원히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드라마 속 형사들은 수십 년이 지나 잊혀 가지만 누군가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범인을 찾아 단죄하는 것을 넘어 희생자와 피해자를 위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드라마 속에서 경찰은 15년 전 ‘김윤정의 유괴살해사건(허구)’의 진범을 잡고도 공소시효 만료로 그를 처벌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공소시효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공소시효(범죄사건 발생 시점부터 일정한 기간이 지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형벌권을 소멸해주는 제도)는 폐지됐다.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태완이법’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1999년 5월 20일, 학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던 여섯 살 태완이는 골목길에서 정체 불명의 괴한으로부터 황산 테러를 당했다. 얼굴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태완이는 49일 만인 같은 해 7월 8일 숨을 거뒀다.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시효 만료일이 다가오자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며 탄원에 나섰다. 이런 사연은 지난해 3월 한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탔다. 4개월이 지난 뒤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찰의 사건 증거확보 기술이 발전하고, 피해자 가족들의 법 감정 존중, 범죄 예방효과 향상 등이 이유였다. 드라마에선 모든 장기미제사건에 대해 공소시효 폐지가 소급적용됐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2000년 8월 이전에 발생한 살인죄 및 아동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공소시효 폐지에 해당되지 않는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다른 이름이 ‘태완이법’이지만 김태완군을 해친 범인은 잡을 수 없다.

◆증거물을 헝겊으로 닦아 지문을 지워도 미세한 DNA는 남는다

드라마 시그널은 현실에서 법망을 피해간 영구 미제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간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2015년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과 ‘과거 형사’ 이재한(조진웅)이 오후 11시 23분부터 1분 남짓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무전기다. 드라마에는 판타지 설정이 담겼지만, 현실적 수사기법도 잘 나온다. DNA분석 시스템이나 CCTV 등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이전에는 알아낼 수 없었던 증거를 찾아내기도 하고, 프로파일링처럼 미제사건이 벌어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수사기법에서 도움을 얻기도 한다. 그 결과 영영 밝힐 수 없을 것 같았던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다. 현실은 어떨까?

1986년 미국에선 DNA로 사건을 처음 해결했다. 이후 일본과 한국에서도 잇따라 DNA 분석시스템을 도입했다. ‘대한민국 1호 범죄프로파일러’ 표창원 박사가 낸 도서 ‘한국의 CSI’을 보면 1992년 의정부에서 일어난 아동성추행사건의 범인은 DNA 분석을 통해 검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미국에 직접 연락을 하면서 얻어낸 성과다. DNA 수사 기법이 도입된 초창기만 해도 주사기로 피를 뽑아낼 만큼 시료의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분석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극소수의 양이라도 증폭기술(PCR)을 통해 DNA 판별이 가능하다. 생물의 세포 6개를 나타내는 50pg(피코그램·5X10-11g)까지 분석이 가능하다. 땀에 묻어나는 상피세포, 침에 포함된 구강세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 조직이 벽면·휴대전화 등 어디에서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DNA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돼 있다. 이를 통한 사건 해결도 눈에 띈다. 대검찰청은 대검은 2010년 7월부터 구축해온 8만7천여명분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현장 증거물과 상호 비교를 통해 장기미제 사건 1천516건을 해결했다고 지난해 3월 밝혔다. 주요 사례를 보면 △2001년 성폭행범의 DNA를 확보했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2013년 다른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가해자의 DNA를 확보해 12년 만에 범인을 확인한 경우 △피해자의 몸을 묶는 데 쓴 노란색 테이프에서 검출된 DNA가 증거로 쓰여 범행을 부인하던 가해자에게 유죄가 선고된 사례 등이 있다.

◆대구 미제사건 9건 수사중…해결 가능성은?

현장에서 발로 범인을 쫓는 경찰관들은 공소시효 폐지가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 평생 발 뻗고 자지 못한다는 압박감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잠재적 살인범들에게 언젠가는 잡힐 수 있다는 두려움을 줘 위축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요즘은 머리카락 등 현장 유류물 보존을 잘 하고, 지문 분석이나 유전자 감정 기술이 발달해 수십년 뒤라도 범인을 검거할 확률이 높다.

법감정과 정의 실현을 원하는 여론에 부응할 수는 있지만, 기존 장기 미제사건 해결의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초동수사에 실패해 증거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경찰관 수십명이 달라붙어도 꼬리가 잡히지 않는 사건의 경우 범인은 고도의 도피 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어, 시효 폐지만으로 해결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공소시효 폐지 전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하고 공소시효가 끝난 살인 사건은 2010년 2건, 2011년 5건, 2012년 2건, 2013년 2건, 2014년 5건 등이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현실에도 드라마처럼 미제사건 전담팀이 생겼다. 경찰청은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에 설치된 장기미제 사건 전담팀을 정식 편성하는 등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따른 장기 미제사건 수사체제 정비계획을 지난해 8월 발표했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9월 7일 20년차 이상 베테랑 형사들 3명으로 미제수사팀이 꾸려졌다. 이들은 미해결 살인사건 9건을 수사 중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소시효 폐지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끝까지 추적해 잡아내게 됐다며 정치권이나 언론에선 연일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하지만 미제사건을 파헤치는 건 쉽지 않다. 개별 사건자료의 사후관리가 안 되어 있거나, 증거가 훼손되기도 한다. 자료가 있어도 몇천 페이지가 넘는 관련 서류를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구하는 데도 제한이 많다. 결국 기억과 서류에 의존해 재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시그널의 형사들처럼 과거 사건을 담당한 형사들과 무전기로 연락할 수도 없다.

이기윤 미제수사팀장은 “수사 당시 인력이나 시간 부족 등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력한 방향으로 수사했을 것이고, 그 중 한번 더 짚어볼 수 있는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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