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없는 미래…“어디든 대구보단 낫다는데”
꿈 없는 미래…“어디든 대구보단 낫다는데”
  • 정혜윤
  • 승인 2016.09.0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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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이성호씨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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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성호씨의 모습.

하루 수면 시간 4시간, 공부 시간 15시간, 식사시간 1시간.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대학생 이성호(27)씨의 2년간 일상이었다.

“이번엔 되겠지, 뭔가 되겠지…하면서 쳇바퀴 돌 듯 살았어. 자유는 없었어. 하루하루 점수만 보고 달렸지. 그때는 밥먹고 나서 2천원짜리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니깐.”

슬럼프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 6월, 성호씨는 시험을 포기하고 복학을 결정했다. 수 차례 낙방에 몸도 마음도 지쳤기 때문이다. 돌아갈 학교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복학을 몇 주 앞둔 성호씨는 걱정이 많다. 문제는 돈. 학기 중 쓸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올 여름,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고르는 기준은 무조건 ‘단기간 고수익’이다. 얼마 전까지는 힘들기로 소문난 성서공단 알바도 불사했다.

요즘은 새 알바를 하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한 ‘주거 콘텐츠 조사요원’. 하루 일당이 무려 8만원이다.

특정 동네에 거주하려는 이들에게 동네 인근 편의시설 등의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직접 거주지 주변의 부동산 위치 등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간단한 설명을 붙여 앱에 업데이트 하는 방식으로, 현장조사와 콘텐츠 제작을 동시에 해야 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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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위해 이동하는 성호씨.
성호씨는 요즘 하루 8시간 아파트 단지 곳곳을 누비고 있다. 이동은 100% 대중교통으로 한다. 오전 9시께부터 시작하는 알바는 오후 6시가 다 되서야 끝난다. 일도 혼자하고 밥도 혼자 먹는다. 식사 메뉴는 주로 빨리 먹을 수 있는 것들로 고른다. 빵이나 김밥, 햄버거 등이다. “뭐든 혼자가 편해. 일부러 다른 사람 신경 안쓰고 할 수 있는 알바를 찾았지. 관계 스트레스? 뭐 그런 것도 좀 있는 것 같고.” ‘혼밥’할 때와 달리 한 번씩 친구들을 만날 때면 맛집을 찾아간다. 이마저도 한 달에 한번 꼴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이래저래 부담스러워 졌다.

그는 동행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몇 번 대화를 시도했지만 단답형의 대답만이 돌아왔다. 끊임없이 하품하며 피곤한 모습으로 일정을 소화했다.

엄마 이외에 휴대 전화 연락은 하지 않는다. 중간 중간 엄마와의 통화에서 ‘위안’과 ‘안정’을 느낀다고. 스마트폰을 붙들고 살지만 카카오톡은 소위 ‘안읽씹(메시지를 읽지 않은 상태로 연락을 안 하는 것)’상태로 하루 종일 남겨둔다. 귀찮아서다. 대화가 길어지는 것도 싫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어플은 뉴스 어플. 기사 내용보다는 댓글 위주로 ‘눈팅’한다. 이동 중 틈틈이 웹툰도 챙겨본다.

최근 시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그가 하루 중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은 게임할 때다. 알바를 마치고 매일 저녁 2시간 정도 PC방에 머무른다.

“술 마시는 것도 별로 안좋아해서 주로 게임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 게임할 때는 그래도 이런저런 잡생각 안할 수 있어서 좋지. ‘현실 도피’라고 하기엔 오버같지만.”

한동안 게임을 하던 성호씨는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오후 8시께 귀가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은 뒤 근처 공원에 나와 1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목적은 다이어트다. “자기관리를 아예 안할 수는 없어. 배 나오면 안되잖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하루종일 혼자 멍 때리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알차게 보내고 있다고.”라며 웃어 보였다.

복학을 앞둔 성호씨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여행과 쇼핑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심적 여유가 없어 선뜻 계획하지는 못하고 있다. 복학 이후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 졸업 후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은 없지만 일거리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떠나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뭐가 됐든 대구보다는 낫다”는 지인들의 조언도 한 몫 한다.

“힘내”라며 어설픈 위로를 건네자 말이 없던 성호씨가 입을 뗐다.

“솔직히 하루에 수백 번도 더 불안해. 뭘 해야 할 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정말 큰 스트레스거든. 복학 후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부모님의 실망감은 어떨 지. 주위 친구들이 취업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부럽고 자극도 되지만 불안하고 우울해져. 그래도 웬만하면 걱정은 안 하려고. 그냥 견딜 수밖에.”

강나리기자 nnal2@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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