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에 오롯이 담았네, 성진골의 정다운 얼굴
담장에 오롯이 담았네, 성진골의 정다운 얼굴
  • 김지홍
  • 승인 2016.09.1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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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경북도 마을이야기-안동 성진골 벽화마을

전봇대·담벼락마다 멋스러운 벽화

할머니·아이 등 동네주민이 주인공

조형물 100점 설치·벼룩시장도 열려

마을 전설, 마르지않는 우물 ‘성재정’

연인·가족 함께 손 씻으면 사랑 지속

“벽화에 웃고 있는 주민 얼굴, 덩달아 기분 좋아져요”

500년 역사 품은 임청각…숭고한 사랑 간직한 월영교

주진도 성진골 벽화마을 통장
☞★★★★★★★★★★☞ [ 본문:1 ] ☜★★★★★★★★★★☜
“어머, 저기 있는 그림 봐봐. 너무 이뻐!”

9월 막 비 그친 어느 오후 경북 안동 신세동에 있는 성진골 벽화마을 입구. 한 커플이 동부초등학교 건물 벽면에 그려진 인물 벽화를 보고 감탄했다. 웃음기 가득한 세 명의 어린이 얼굴이 고운 파스텔 톤으로 한 벽면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기 다니는 학생들인가봐, 너무 이쁘다” 이 커플은 꽤 오랫 동안 학교 주변을 서성거렸다. 평균 성인 남성의 키 2배 넘는 학교 담장에는 ‘탈춤 추는 사람’들로 벽화가 꾸며져있었다. 벗겨지는 페인트 대신 조각난 타일을 붙이는 방식이여서 갠 구름 사이 햇빛에 반사돼 반짝였다.

마을 한복판으로 난 300m 남짓한 골목길에는 튤립과 해바라기, 나팔꽃 등 전봇대나 계단, 좁은 벽 사이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있다. 무엇보다 23곳의 집 담벼락마다 멋스러운 벽화가 눈길을 끈다. 집 담벼락에 그려진 스파이더맨, 해바라기집, 기차길 오두막집, 왕벌할매집, 자작나무집, 행복한눈물, 창밖의 아이들 등의 콘텐츠로 집 이름도 걸맞게 붙여졌다. 더구나 이 마을에 사는 아저씨부터 할머니, 손자·손녀, 자장면 배달원 등 주민이 주인공이 된 담벼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가 그치자 관광객들은 꾸준히 몰려들었다. 마을 들머리부터 관광객을 반기는 아기자기한 안내판 때문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이 마을은 벽화 뿐만 아니라 ‘나두 줘’ ’줄타는 고양이’ ‘오줌 누는 개’ 등으로 이름을 붙힌 100여점의 조형물도 많아 관광객들은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하다.

안동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성진골 벽화마을’은 벽화로 유명하다. 골목을 따라 오래된 저층 다세대·다가구 주택들이 모여 80여가구로 이뤄진 마을이다. 영남산으로 올라가는 기슭에 주택이 지어져 경사가 심하고 소형 승용차도 오가기 힘들어 택시 기사들조차 운행을 꺼리던 달동네다. 비교적 도심에 있지만 슬레이트 지붕에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던 칙칙하고 어두워 사람들에게 소외된 동네였다.

‘벽화마을’이 된 것은 마을의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려던 주민들에 의해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09년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 사업에 선정되기까지 이강준 공공미술연구소 소장인 이강준 안동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도 마을 변화에 힘을 보탰다. 전국 143개의 작품 중 대구·경북에서 유일하게 성진골 마을의 ‘연어와 첫비’ 작품이 당선돼 정부 지원금 1억원을 받아 진행됐다.

마을의 명칭은 ‘성지골’에서 따왔다. 마을은 행정구역상 중구동(옛 신세동 포함)에 속하며, 안동의 정기가 깃든 영남산 자락에 있다. 신라시대 도승인 성지도사가 칠층전탑(七層塼塔·국보 제16호)이 있는 법흥사를 창건한 뒤 이를 중심으로 북암·남암·동암·서암 4개의 암자를 지었는데 성지 도사는 북암에 기거했다. 북암이 자리한 이곳 마을을 성지골이라고 불렀다. 이 마을은 성재정이라 불리는 ‘우물’에 대해서도 전설이 내려온다. 1천500여년 전 안동부에서 제를 지낼 때 이 우물물을 길러다 썼는데 줄지도 늘지도 않고 어디로 들어와서 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요한 우물이었다고 한다. 마르지 않은 우물이라고 해 연인과 가족이 함께 손을 씻으면 사랑과 화목을 이어가고, 짝이 없는 이가 손을 씻으면 천년을 이어갈 인연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을은 변하기 시작했다. 주민 평균 나이가 70세. 예전엔 날품을 팔거나 희망근로로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은 마을 대표를 중심으로 공동 텃밭을 만들어 함께 경작하는 등 마을 공동체 의식을 깨우치는 데 노력했다. 안동시에서도 예산을 들여 빈집을 철거해 공동주차장과 공용화장실, 정자 쉼터를 만드는 등 벽화마을을 지원했다.

마을이 변하면서 청년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산들배기협동조합 이사장이자 정윤정(36) 성진골 벽화마을 활동가는 지난 2013년부터 마을 사업에 뜻을 모았다. 이 일대에 살았던 정씨는 “마을이 되살아나면서 주민들이 진정한 마을의 주인이 되도록 벼룩시장과 카페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많이 추진해왔다”며 “주민에게 소득뿐 아니라 즐거움을 주고 관광객에게도 새로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마을 방문객이 드물었으나 ‘안동에 하나뿐인 벽화마을’로 입소문을 타면서 친구나 가족, 연인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마을 활동가들과 주민들은 성진골에 ‘그림애문화마을’라는 또다른 이름을 붙였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그림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주민 20여명이 구성돼 그림애문화마을협의회를 꾸리기도 했다. 마을의 전체적인 문화와 예술, 마을 가꾸기 등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매달 한차례씩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기획하는 ‘그림애문화장터’라는 벼룩시장을 연다. 잡채와 국수, 전을 부쳐 팔거나 수제 초콜릿·쿠키, 비누 등 젊은층에 맞춘 다양한 제품도 함께 판다. ‘그림애카페’도 운영해 성진골 사랑방 역할을 한다.

글=지현기·김지홍기자

사진=전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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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도 성진골벽화마을 통장 인터뷰>

“몇 년전만 하더라도 이 동네가 모두 시커먼 회색빛이었다면 믿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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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도(71) 성진골벽화마을 통장은 이 동네에서 산 지 40년이 넘었다. 그는 이 마을은 ‘성진골 벽화마을’이란 이름이 붙기 전까지 산 자락에 층층이 지어진 검은 벽의 집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통장이었던 그는 그동안 예술팀과 주민, 협동조합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함께 나아가기 위한 갖은 노력을 해왔다. 안동에서 이름난 벽화마을이 되기까지 그의 손떼가 묻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는 “모두가 함께 해온 공(功)”이라며 멋쩍어했다.

최근 주민들은 마을 활성화를 위해 인문학 강의부터 짚공예·목공예 교실까지 다양한 분야를 배우고 있다. 주민들이 만든 공예품을 상품화하는 것도 하나의 목표 중 하나다.

주 통장은 동네를 거닐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는 “밝아진 마을 속에 웃는 주민들의 벽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며 “앞으로 이 마을이 안동에서는 하회마을 다음으로 유명한 마을이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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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臨淸閣·보물 제182호)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큰 규모로 조선시대 전형적인 상류 주택이다.

500년의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 이씨의 종택으로, 99칸 기와집으로 조성돼있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임청각은 귀래정(歸來亭) 영호루(映湖褸)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라고 기록돼 있다.

월영교(月映橋)는 벽화마을과 3㎞채 떨어지지 않는 안동호에 놓인 목책교(길이 387m·너비 3.6m)이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한 켤레의 미투리(신발)를 지은 지어미의 애절하고 숭고한 사랑이 간직돼있는 다리로, 2003년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로 개통됐다. 다리 한가운데에는 월영정(月映亭)이 있다.

신세동 칠층전탑(七層塼塔)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탑(높이 17m·기단 너비 7.75m)으로 원형이 보존된 우리나라의 가장 큰 전탑이다.

상륜부가 금동제로 장식됐고 기단도 지금 모습은 아니었으나 후대에 크게 훼손됐다. 규모가 장대하고 상승감이 있으면서도 안정감이 있고 비례가 아름다워 국보 제16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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