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돌·바람의 마을…때묻지 않은 수수함이 좋아라
물·돌·바람의 마을…때묻지 않은 수수함이 좋아라
  • 정민지
  • 승인 2016.09.1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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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경북도 마을이야기-칠곡 태평마을
금오산 등산 출발점 ‘숭오 1리’
옛부터 물 넉넉해 집집마다 우물
100년 넘은 빨래터 여전히 운영
인문학사업 참여 후 마을에 활기
칠곡
경북 칠곡군 숭오1리 태평마을은 금오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제2의 제주도’라 불릴 정도로 물, 돌, 바람이 많은 태평마을에는 마을 주민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기억을 공유한 공간이 많이 남아있다.
“빨래를 하세. 빨래를 하세. 빨래도 하고 님도 보고. 겸사겸사 빨래 하세.”

12명의 할머니들이 갈라지고 거뭇 때가 낀 빨래방망이를 높이 치켜 올렸다. 다른 한 손에는 빨래판이 들려있다.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고 할머니들은 어깨춤을 추며 빨래터로 향했다. 근심걱정 잊으러 가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경북 칠곡군 숭오1리(태평마을) ‘빨래터 합창단’은 70~80대 할머니들이 주인공이다. 숭오1리에 여전히 사용 중인 100년 넘은 빨래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단원들은 전부 이 마을 주민들로 합창단 최고령 할머니는 86세였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빨래하며 부르는 노래에 대화 형식의 연기를 덧붙였다. 시어머니, 남편 때문에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할머니들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들의 손에 들려있는 빨래방망이는 시집올 때 가져왔거나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었다. 최소 50년을 함께 한 방망이는 본디 색을 잃고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할머니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는 시간에 비례해 늙어버린 빨래방망이지만 차마 버리지 못했다. 그 속에 그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기에.

칠곡군의 가장 서쪽에 있는 숭오1리는 대구와 김천을 잇는 국도 4호선 바로 곁에 있다.

마을 전체의 배경이 되는 거대한 산은 구미와 경계를 이루는 금오산(金烏山)이다. 태평마을, 지경마을, 금오동천마을 등 3개 자연부락이 합쳐진 숭오1리는 금오산 등산의 출발점으로 더 알려져있다.

숭오1리 특히 태평마을은 ‘제2의 제주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바람, 물, 돌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37년간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허옥자(61) 부녀회장은 “우리 마을은 공동 빨래터는 있지만 공동우물은 없다”며 “집집마다 우물을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물이 많다”고 말했다.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대부분 집들은 우물을 메웠지만 지금도 10여개의 우물이 남아 있다. 100년이 넘은 우물에 여전히 물이 차올라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빨래터 역시 130여년 전 수로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사용돼 지금도 빨래를 할 수 있다. 희한하게 여름에는 차가운 물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와서 사시사철 빨래를 했다고 한다. 마을이 생길 때부터 있었다는 1천 평 가량의 못도 이곳이 물이 많은 곳임을 알려줬다.

태평마을은 돌담도 인상적이다. 온 마을이 돌담으로 밑그림을 그려놓은 듯 했다.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짙은 색 돌은 건물을 짓는데도 쓰였다. 지금은 신축 건물로 옮긴 110년 역사의 숭오교회 옛 건물이 대표적이다. 마을 공동창고 역시 돌로 지어졌다. 무려 7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숭오1리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지난 2014년 인문학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면서다. 농사일 외에 백년 넘은 교회의 영향으로 신앙생활만이 전부였던 마을 어르신들에게 한글 공부 열풍이 불었다. 그동안 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워 배울 마음조차 가지지 않았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손사래를 치던 어르신들은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진작에 배웠으면 이런 행복을 더 일찍 느꼈을 것인데 아쉽다”고 어르신들은 입을 모았다.

삼삼오오 모이거나 각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이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한글을 깨치니 다른 것도 시도해보고 싶어진 어르신들은 ‘빨래터 합창단’에 참여, 노래를 외우고 연기까지 하게 됐다. 할머니들이 ‘빨래터 합창단’으로 재미를 찾았다면 최근 이 마을 할아버지들은 ‘솟대 만들기’로 왕년의 손재주를 뽐내고 있다.

허 부녀회장은 “삶의 질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마을주민 간 보이지 않는 담도 무너뜨린 것 같다”며 “마을에 활기가 돌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글=최규열·정민지기자

사진=전영호기자

<백금득 숭오1리 이장>

백금득 이장
“누구나 와서 살아도 좋아서 태평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백금득(68) 숭오1리 이장에 따르면 숭오1리 자연부락인 ‘태평마을’은 오래전 금오산 기슭에서 몇 가구가 이주해 오면서 시작됐다. 산짐승 피해가 심해 너른 땅을 찾아 내려왔다고 한다. 접경에 있는 마을들이 으레 그렇듯 오며가며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때문에 이곳은 특정 성씨가 주류를 이루지 않는다.

집성촌 특유의 문화가 없어 타 지역에서 오더라도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백 이장 역시 55년 전 중학교 시절 가족을 따라 이사해 태평리에 정착했다.

“바로 옆 김천 남면 산골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농사 짓기 더 나은 곳을 찾아 여기로 왔다. 이제는 여기가 고향이 됐다.”

인문학마을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백 이장은 지난 3년여 간의 변화를 믿을 수 없어 했다. 과거에는 남자들은 마을 유일한 가게인 ‘태평상회’에서 모이고, 여자들은 교회 아니면 각자 집에 모여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너나 할것 없이 마을회관에 와 안부를 묻고 서로를 챙기게 됐다.

그는 “함께 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주민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인문학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진짜 ‘행복’을 알게 해주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가볼만한 곳>

마을빨래터
130여년 전 이곳에 수로가 만들어지면서 사용된 태평마을의 빨래터는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빨래를 하는 곳이다.
숭오1리 ‘마음 빨래터’는 마을회관에서 돌담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금방 찾을 수 있다.

물이 흐르는 수로 양옆에 빨래판으로 쓰는 넓고 납작한 돌이 십여개 놓여 있다. 백년 넘는 시간동안 그곳에서 빨래를 했을 아낙들의 모습을 그려보면 빨래터가 다르게 보인다. ‘삶이 힘들고 지칠때 마음을 씻고 가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이 빨래터의 가치를 알려준다. 빨래터 부근에는 이 마을에 부임했던 부사 강후선을 기리는 비석이 밭 한가운데 서 있기도 하다.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숭오교회다. 1904년 건립된 숭오교회는 이 마을의 역사와 같이 한다. 지금도 당시 건물이 신축 건물 맞은 편에 남아 있다.

마을에서 조금 올라가면 민물새우가 많이 잡히는 작곡 저수지가 있다. 예전 마을 못을 확장해 만들어진 곳으로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숭오1리 태평·지경·금오동천 3개 마을 중 사실 가장 유명한 마을은 ‘금오동천마을’이다.

금오동천은 금오산 성안분지에서 산 아래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과거부터 이름난 유원지다. 계곡의 네 번째 폭포인 벅시소 주변 암벽에 금오동천(金烏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기암괴석과 계곡이 있어 이 곳 등산로를 통해 금오산도립공원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닭백숙 등을 파는 식당과 숙박업소들도 금오동천 입구에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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