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서른, 뜨거웠던 스물 셋의 나를 만나다
불안한 서른, 뜨거웠던 스물 셋의 나를 만나다
  • 황인옥
  • 승인 2017.02.2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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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지의 인도여행기
프롤로그-나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여행작가의 꿈 대신 세상과 타협한 직장생활
잊고 지낸 그 시절의 행복·열정 찾아 인도행
7년만에 다시 발 내딛는 순간 샘솟는 에너지
델리부터 인도 끝까지 떠난 청춘 성장 여행
인도뉴델리파하르간즈입구
인도 뉴델리 파하르간즈 입구.
내 나이 서른을 목전에 두었던 어느 날. 나는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7년 만에 다시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냥, 불안했다. 모든 게.

‘서른’이라는 나이를 너무도 두려워하는 나 자신이 참 싫었고,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을 잃고 쪼그라드는 모습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만 커져갔다. 글쓰는 삶을 살겠다던 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당차게 살아보겠다던 예전의 내 모습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나. 덜컥 겁이 났다. 나 이러다가 영원히 이렇게 사는 거 아닐까. 그저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이고 사는 인생만이 최선이라 여기며 그렇게 한심하게 살다, 어느 날 먼지처럼 훅 사라져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까맣게 잊은 채 말이야.

그래서 결심했다. 내 평생 가장 행복했고, 또 더 없이 나 다울 수 있었던 그 땅으로 되돌아가기로. 나를 향하던 미소. 눈만 마주쳐도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어 주던 얼굴들. 더러운 발로 망아지마냥 들판을 뛰어다니면서도 그저 즐겁고, 당당하고, 행복했던 스물세 살의 나 자신을 다시 만나고 오겠다고.

인도뉴델리 파하르간즈 풍경
인도 뉴델리 파하르간즈 풍경.
7년 만에 인도 땅을 다시 밟던 날, 나는 솔직히 두려웠다. 너무 많이 변했으면 어쩌지? 괜히 다시 와서 실망만 하고 가면 어떡하나. 기대보다는 걱정이 조금 더 앞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있었다.

7년 전, 카메라를 도둑맞아 울고 있던 나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던 그 아저씨가, 비록 그간의 세월만큼 나이가 들긴 했지만. 환전을 못 해 쩔쩔매던 나에게 “거기서 동동거리지 말고 이거나 한잔해~”라며 코코넛 라시를 내밀던 그 사장님이, 어쩐 이유에선지 7년 만에 많이 지친 모습으로 나를 맞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향기도, 사람들도, 모든 것이 그대로인 인도 땅에서 그토록 두려워하던 서른을 아주 고요히, 그리고 담담하게 맞아들였다.

사실, 나는 이미 글렀다 생각했다. 당차고 해맑았던 예전의 내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세상에 찌든 빈껍데기 서현지만 남았다고 여겼다. 여행작가가 되어 평생 글을 쓰며 살겠다던 그 다짐은 이미 잊은 지 오래고, 내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그저 채워지는 통장에 만족하며 살았던 세월이 벌써 3년이었으니까.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더 나이 먹기 전에 커리어를 쌓아야한다는 핑계로 가슴이 하는 소리를 외면한 채 그렇게 몇 년을 살았으니까.

근데 아니더라. 7년 만에 다시 밟은 그 땅. 인도를 거울삼아 바라본 서른의 나 자신은 여전히 예전처럼 밝고, 건강하고, 또 씩씩했다. 차려입은 오피스룩을 벗어던지고, 온 얼굴을 답답하게 가린 두꺼운 메이크업을 씻어버린 채 ‘직장인 서현지’가 아닌 ‘인간 서현지’로 돌아가고보니 그제서야 확실히 알겠더라고. 나, 아직 늦지 않았다고. 여행작가가 되겠다던 그 꿈. 온몸의 피가 펄펄 끓어오를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그 일. 그때의 그 에너지가 아직도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는 걸.

“아저씨이~!! 나 왔어요!!! 나 진짜로 돌아왔다구요!!!”

인도 갠지스
인도 갠지스.
7년 만에 갠지스로 돌아간 날, 나는 어느 게스트하우스 문턱을 뛰어 넘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사람. 어리숙한 스물 세 살의 서현지에게 가슴 뜨거운 추억을 안겨준 잊지 못할 인연.

그 옛날, 영어가 짧아 ‘See you again’ 이 한마디로 이별을 고하던 내게, 당신은 “너 정말 다시 올 거야? 진짜 again해? 약속할 수 있어?” 라며 재차 되물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난 몰랐습니다. ‘다시 보자’는 이 한마디가 얼마나 지키기 힘든 약속인지, 이 말에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 누군가의 얼굴을 다시 마주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또 가슴 뛰는 일인지를 말입니다.

그렇게 나는 이 두 번째 인도 여행을 통해 그간 잊고 살았던 나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나의 인연, 하마터면 영원히 이루지 못 할 뻔 했던 작가로의 꿈, 그리고 당당하고 패기 넘치게 세상을 살아가던 예전의 내 모습까지. 까무룩 꺼져가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하나하나 건져올리며 가슴 뛰는 몇 개월을 보내다, 그렇게 뜨거워진 가슴을 끌어안고 내 삶의 터전인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앞으로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나의 인도여행에 대해, 그리고 내 서른의 삶을 영롱하게 만들어준 그곳에서의 다양한 경험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내보고자 한다.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델리에서부터,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바르깔라의 그림같은 풍경을 지나, 타는 듯 한 뙤약볕 아래 마주했던 인도의 끝 깐야꾸마리까지. 그 흔하다는 맛집에 대한 이야기나 유네스코에서 지정했다는 무슨무슨 유적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곳에서 보낸 하루, 머리에 맴돌았던 생각, 그리고 수개월간 나를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곳을 찾아올 예정이다.

내가 앞으로 꺼내놓을 이야기들이 현재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혹은 꺼져가는 무언가를 되찾아오고 싶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여행칼럼리스트 jsmoon09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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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지는?

-경북대국어국문학과, 신문방송학 졸업

-인도여행에세이 ‘내가 그곳에 있었을 때’ 출간

-세계 여행 및 진로 강연 진행(서현지 작가 청춘 콘서트, 여행대학, 여행오픈세미나 등)

-한류문화인진흥재단, 한국갭이어 및 다수 언론사 인터뷰 진행

-전 Travel Open Seminar 여행콘텐츠 연재(1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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