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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고정관념 깨자”…23년간 트렌드 연구·시장개척 매진

기사전송 2017-03-16, 2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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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의 커피 이야기(3)
도쿄 커피공방 호리구치
유럽 브로커 활동 늘며 위기의식
“장래 커피시장 양분될 것…
생두 판단 기준 더 정확해져야”
연구소 세워 커피 재배·정제 연구
커피 로스팅 기술 등 10여권 집필
세미나 운영·개업 컨설팅 지원도
커피공방 호리구치 내부 전경
커피공방 호리구치 내부 전경


호리구치 씨
‘世界中の 農園から スベシャリティコ-ヒ-を 輸入し 販賣しています。’

“전 세계의 커피농장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수입해서 판매합니다”라는 글귀를 자신의 상호위에 써 놓고 자신의 이름으로 커피연구소를 운영하는 커피장인 ‘호리구치 토시히데(堀口 俊英)’ 그가 나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존재였다. 부족한 커피지식을 채우고자 걸신들 린 듯 밤낮없이 커피 이야기를 쫓아다닐 때, 나의 굶주린 배움에 허기를 달래준 사람이 호리구치씨였다.

그가 커피에 대한 글을 투고했던 ‘커피와 에스프레소의 기술교본’이라는 책에서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의 글에 그동안 배우고 그가 생각한 커피 로스팅에 대한 자료를 아낌없이 내 놓았다. 실전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커피공부를 하는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자료였다. 그때는 커피기술에 대한 전문성 있는 자료들이 전무한 상태였다. 그런 시점에 그는 로스팅에 관한 기고의 글을 통해 커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글에서 자신의 로스팅 프로파일을 공개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로스팅 프로파일을 교과서 삼아 로스팅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작했다.

그는 동경 세타가야구 후나바시에 위치한 ‘커피공방 호리구치 (커피工房 HORIGUCHI)’에서 커피점과 커피연구소를 겸하고 있었다.

커피공방에 도착한 나는, 바로 그의 커피점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너무나 오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건물 앞에서 그의 상호가 적힌 안내 간판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마치 오랜 동안 떨어져 지낸 연인을 만나기 전에 마음의 진정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저 안에 그가 있을까? 혹시 없다면, 이 멀고 먼 길을 벼르고 왔는데.’

설렘을 가라앉히기 위해 몇 번의 심호흡 후, 어둑어둑한 실내로 들어갔다. 한눈에 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의 모습을 잘 알지 못했다. 작은 사진 속으로만 보았던 것이 전부였다. 눈썰미가 없는 내가 그를 첫눈에 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점차 어둠에 적응이 되자 시야에 주방에서 일하는 스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유니폼을 입지 않은 편안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가 오래전부터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 오는 손님들이 자리를 잘 잡지 못하자 염려하는 눈빛으로 스텝들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정말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는 세계 커피 산지를 자주 여행하기 때문에 커피점에 없을 때가 많았다.

매장 깊숙한 내부에 중대형 규모로 보이는 커피 로스터 2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좌석과 테이블도 규모에 비해 많지 않았다. 그는 머리에 듬성듬성 흰 머리카락이 있어서 호리구치씨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안경 낀 그의 얼굴은 전형적인 일본인 이었으나 그동안 만나 왔던 일본인들과는 좀 달랐다. 온화한 느낌에 소탈한 성격을 지닌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했다.

호리구치씨가 손님이 주문한 커피를 직접 추출하지는 않았으나, 모든 것이 그의 섬세한 손길아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그날 주문했던 인도네시아 만델링은 매우 깊은 커피향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그의 이름을 걸고 1990년 5월 현재 위치한 건물 2층에 ‘호리구치 커피 세타가야점’을 개점했고, 6년 뒤 같은 건물 1층으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2002년‘호리구치 커피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리고 1999년에는 ‘고마에점’을, 2004년에는 ‘호리구치 케이크 (HORIGUCHI CAKES)’를 개점했다.

그는 지금 ‘커피공방 HORIGUCHI’ 대표이사이면서,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 인증 컵핑 심사관과 일본 스페셜티커피협회(SCAJ) 인증 커피위원회 부위원장도 맡았다. 또한 그는 그의 커피 연구소에서 커피의 재배와 정제를 연구하고 세미나를 운영하며, 개업을 위한 컨설팅과 생두를 수입하고 있었다. 그는 아사히 문화센터나 방송강사로도 활동을 하면서 커피와 음료에 관련된 집필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 10여권의 책과 잡지에 그의 글이 실려 있다.

당시에 ‘호리구치’씨는 나의 목표였다. 그의 생각과 철학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에게 점점 빠져 들었다. 그는 자신을 부정할 줄도 알았고, 일본 커피업계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미국과 이탈리아 커피 등이 일본에 진출되고 유럽의 커피 브로커들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일본의 커피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보았고, 장래 커피 시장도 스텐다드한 커피와 스페셜티한 커피로 양분될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보다 정확한 생두의 판단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세계로부터 일본의 커피가 뒤처질 것이라는 위기의식까지, 처해진 일본 커피업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호리구치씨는 벌써 알고 있었다. 지금 누군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본의 커피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구태로부터 벗어나 커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맛있는 커피, 향미가 좋은 커피가 어떤 것인지, 그 근원을 밝혀내어 ‘맛있는 커피란 무엇인가?’ ‘왜 이 향미가 태어나는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는 커피가 생산되는 산지의 고도, 토양, 일조와 품종이 향미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성장의 환경과 건조, 생산의 프로세스가 향미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등, 자신이 품은 의문에 대해 그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는 이 시대에 자신이 커피의 장인으로서 꼭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역할에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다음해 다시 커피공방 호리구치를 찾았다. 때마침 그는 한국에서 온 고객들에게 커피 드립을 직접 시연하고 있었다. 그날 그의 핸드 드립추출 시연을 본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그는 추출한 다음 그를 찾아 온 한국의 고객들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진지하게 그의 설명을 경청하는 한국의 커피인들. 머나먼 이곳 일본까지 와서 그들은 호리구치씨의 어떤 모습이 보고 갔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의 설명을 듣고 무엇을 생각할까? 나는 사뭇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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