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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화 꽃피운 항구도시…그 고요한 매력 속으로

기사전송 2017-04-20, 21: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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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지의 인도여행기 (8)어느 돌깎이 여행자의 마하발리푸람
낡은 버스 타고 도착한 작은 어촌마을
5세기경 팔라바 왕조가 세운 해상무역지
암벽 조각·힌두교 유적 등 곳곳 볼거리
석공예 장인 대거 밀집…예술품 ‘가득’
조각 공방에서 돌 목걸이 만들며 집중
인도여행기 중 가장 평화로웠던 나날
마하발리푸람 판치라타스 유적군
마하발리푸람 판치라타스 유적군.
퐁디셰리에서 두 시간여 버스를 타고 달리면‘마하발리푸람’이라고 작은 어촌 마을이 하나 나온다. 사실 이 마하발리푸람은 첸나이에 들리기 전에 하루 이틀 정도 쉬어갈 목적으로 일정에 넣었었다. 첸나이는 뉴델리 뺨칠 정도로 거대한 대도시라 그 아수라장으로 뛰어들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하발리푸람으로 가기 위에 잡아탄 버스. 나는 그 버스에 오르자마자 입이 쩍 벌어졌다.

“와, 내가 이런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나 가야한다고? 이거 제대로 굴러가는 거 맞아?”

사실 이동 시간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차피 대 여섯 시간 이동쯤은 인도여행자들에겐 애교수준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문제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아저씨! 이거 등받이가 고장 났어요. 조금만 힘줘서 기대니까 뒤로 막 넘어가는데요?”

너덜너덜한 좌석 시트와 내부에 진동하는 꼬릿꼬릿한 냄새까지는 어떻게 참아줄만 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뒤로 휙 젖혀지는 고장 난 등받이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볼멘소리로 기사아저씨에게 툴툴대자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괜찮아. 살살 달리면 돼. 노 프라블럼!’이라며 씨익 웃는다.

나는 뭐라고 대차게 되받아쳐주려다가 갑자기 맥이 탁 풀려버렸다. 그래그래. 어차피 인도라는 나라, 발 동동거리는 놈만 손해 보는 곳이다. 지금까지 인도를 여행해본 경험상 저 버스기사는 절대로 내 의자를 고쳐주지 않을 것이고, 다른 정상적인 버스로 교체해줄 일도 만무하며(물론 딱히 더 나아보이는 버스도 없었지만), 여기서 더 툴툴댔다간 나만 까탈스런 코리안이 될 것이 뻔했으니까. 이놈의 인크레더블 인디아. 늘 느끼는 거지만, 정말 저 좋을 대로만 노 프라블럼이지. 휴.

마하발리푸람의 해변
마하발리푸람의 해변.
그렇게 낡은 버스에 생명을 맡긴 채 두 시간여를 달린 후, 드디어 나는 마하발리푸람에 두 발을 디뎠다. 도착하자마자 릭샤를 타고 여행자 거리로 이동하고, 숙소를 잡고, 그렇게 허겁지겁 짐을 풀고 나니 어느덧 저녁 5시. 침대에 늘어져 쉬다 슬슬 배가 고파져 대문 밖으로 나왔을 땐, 저 멀리 수평선 끝에 농도 짙은 주황빛 노을이 바닷가를 뒤덮어가고 있었다. 그간 마하발리푸람은 그저 작디 작은 어촌마을이라고만 들었는데, 생각보다 소박한 그 바닷가가 꽤 마음에 들었다.

왠지, 어릴 적 친구들과 뛰놀았던 옛 골목을 생각나게 하는 골동품스런 분위기. 그냥, 별 이유 없이 느낌이 참 좋은 동네다.

마하발리푸람은 옛 팔라바 왕조가 건설한 항구도시다. 팔라바 왕조는 마하발리푸람으로부터 65km 떨어진 칸치푸람을 수도로 정한 뒤 3세기부터 7세기까지 남인도 타밀 지역을 막강하게 지배해왔는데, 그 중 마하발리푸람은 팔라바 왕조가 5세기 경 세운 항구도시로, 현재까지도 남인도의 해상무역을 꽃피운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마하발리푸람의 항구도시로서의 면모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 팔라바 왕조는 7세기 말부터 차츰 쇠퇴하기 시작하여 9세기 말 경 촐라 왕조로부터 완전히 멸망하게 됐는데, 멸망 이후 차츰차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해 현재는 그저 작은 어촌 마을의 소박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해상무역지로서의 막강함은 사라졌으나 이 시기에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은 마하발리푸람에 그대로 남아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마하발리푸람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유적으로는 ‘판치라타스’ 유적군과 암벽 조각 ‘아르주나 고행상’이 있지만, 사실 이 외에도 ‘크리슈나 만다빰’ 석굴 사원이나 ‘크리슈나의 버터볼’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마하발리푸람은 지난 2004년 12월, 남아시아에 불어 닥친 쓰나미에 직격탄을 맞았는데, 이 쓰나미로 인해 도로와 골목이 침수되고 어선들이 파괴되는 등 생활환경이 처참히 무너졌다.

하지만 이 쓰나미는 마하발리푸람 어촌민들에게 또 다른 선물을 안겼다. 바로 이 쓰나미 이후 해안선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바다 아래에 잠겨 있던 고대항구도시의 유물로 추정되는 세 개의 돌 유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돌 유적에 사용된 정교한 제작 기법과 모양 등이 기존 마하발리푸람에 존재하는 다른 유적들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쓰나미로 인해 발견 된 이 조각들 역시 7세기 경, 팔라바 왕조가 남긴 유물 중 하나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곳곳이 힌두교 유적으로 넘쳐나는 마하발리푸람. 만일 힌두교 유적이나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마하발리푸람에 한동안 머물며 석조 유물을 감상하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내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일 것이다.

마하발리푸람 돌조각 작품
마하발리푸람 돌조각 작품을 만드는 장인.
마하발리푸람에 머무는 동안 내가 주로 했던 일은 바로 허름한 조각 공방에 앉아 돌 목걸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하발리푸람 공방 판매물품
마하발리푸람 공방 판매물품.
마하발리푸람에는 과거의 그 석조 기술을그대로 물려받기라도 한 듯 석공예 장인들이 대거 밀집해 있는데 그래서인지 거리 어디를 가든 수준 높은 작품을 자랑하는 석조 공방들을 아주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마하발리푸람에 처음 당도했을 때만 해도 한 이틀정도 잠시 머물다 첸나이로 떠날 생각이었다. 요 조그만 시골마을에 뭐 그리 할게 있겠나 싶은 마음도 있었고, 적당히 며칠 쉴 수 있으면 그저 그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공방에 앉아 고 조그만 돌 조각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그간 몰랐던 석공예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끌을 잡는 것도 서툴렀고 실수로 손등을 찍어 피를 흘기도 했다. 돌을 고정하고 있는 왼손은 진즉부터 이리 삐뚤 저리 삐뚤 흔들렸고, 도구를 잡은 오른손은 행여 왼손을 내려찍을까 두려워 제대로 힘조차 주질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도구들이 손에 익고 만들고자 하는 모양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슬슬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다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그때부터 돌을 깎아내는데 집중 할 수 있었고,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할라치면 공들여 다듬은 작품이 깨어지기 일쑤라 잡생각 따위는 단 1초도 할 여유가 없었다.

석공예 체험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온다. 조금의 잡생각도 용납되지 않는 시간. 그 어떤 걱정이 되었든, 일단 고민일랑 다 내려두고 오로지 돌조각 하나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그 고요한 작업.

이 돌조각 하나를 완성시키는 동안 나는 그 어떤 나쁜 감정도, 두려운 기억들도 떠올리지 않은 채 오직 ‘딱딱딱’하는 돌 깎는 소리와 내 손끝에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불필요한 걱정들이 사라지자 마음에 평안에 찾아왔고, 덕분에 고개를 수그리고 있느라 목은 좀 뻐근했을지언정 정신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 맑고, 또 건강했다. 살면서 이처럼 머릿속이 고요했던 때가 있었나.

정신적 안정을 찾고 싶어 여행을 떠나왔다지만 사실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에도 ‘기차를 탈까 버스를 탈까’, ‘빨래를 오늘 할까 내일 할까’ 등의 별스런 걱정들로 정신이 온전히 맑은 적은 많지 않았다.

돌목걸이완성후
돌 목걸이 완성된 모습.
그런데 그 어려운걸 마하발리푸람 돌조각 하나가 결국은 해내게 만든 것이다. 걱정도, 고민도, 그 어떤 불안함도 모두 떨쳐버리게 만드는 힘. 그 고요한 매력. 마하발리푸람에 머무는 동안 내가 만들어낸 두 개의 목걸이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 며칠 간 내 머릿속이 이토록 잠잠했음을 뜻하는 일종의 증거물과 같은 것이었다.

팔라바 왕조의 석조 유물로 시작해 돌 목걸이로 끝난 마하발리푸람에서의 시간. 돌로 시작해 돌로 끝난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내 인도여행 일정을 통틀어 가장 평화롭고도 또 조용했던 나날들이었다.

여행칼럼니스트 jsmoon09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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