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돈’ 전락한 ‘상생자금’…상인회 간부들 배만 불려
‘뒷돈’ 전락한 ‘상생자금’…상인회 간부들 배만 불려
  • 김지홍
  • 승인 2017.05.2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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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상권 보호’ 대기업이 낸 돈…이대론 안된다
부도덕한 관행 ‘도마 위’
횡령 등 잇단 비리 의혹 불거져
자금 운용 투명성 놓고 갈등도
일부 상인들은 존재 자체 몰라
관리·감독 없는 사각지대
비영리 민간단체인 시장상인회
지자체 관리 조례·법안 없어
상인회만의 특권행사 빌미 제공
대책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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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시장에 장을 보러온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과 기사 내용은 무관함. 대구신문DB
최근 대구 지역 경제계에서 ‘상생기금’(상생자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대구 전통시장상인회 간부들은 대구 신세계백화점이 내놓은 상생기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상생기금을 둘러싼 시장별 배분 문제로 발단된 이번 사건은 시장상인들 사이에서도 간부들의 부도덕한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시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정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건드린 과감한 정책이 오히려 일부 상인회 간부급의 ‘잇속 챙기기’로 변질됐다는 점에서다.

문제는 시장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운영하는 상인회는 비영리 단체여서 제3의 관리·감독하는 기구가 없다. 전문가들은 “‘상생’ 논리는 관(官)에서 주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지자체 관리·감독이 배제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상인회 공정성·투명성을 위해 지자체 차원의 상인 의식 교육 등 관리·감독이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관행으로 쓰는 상생기금?

최근 대구정의경제실천연합(대구경실련)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동구청으로부터 받은 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 지역협력계획서와 상생합의서·동의서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8월 3일 대구시상인연합회는 동대구복합환승센터로 입점을 앞둔 대구 신세계백화점과 ‘상생발전과 협력관계를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상생 합의서를 맺었다. 앞서 6~7월께 대구시상인연합회는 신세계 인근 시장인 동구·동서·송라·평화시장 각 상인회와 ‘상생합의에 대한 권한은 대구시상인연합회회장에게 위임한다’는 동의서를 작성했다. 이후 9월 30일 신세계 인근 동대구역전시장상인회도 신세계와 상생합의서를 맺었다.

상생기금에 대한 언급은 공식적인 상생합의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상생협의서를 공식적으로 서류에 남기지 않고 지자체인 동구청에도 알리지 않았다. 상생협의서를 상인연합회가 대표 자격으로 체결했다는 점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 동부경찰서와 상인회 등에 따르면 신세계가 내놓은 상생기금은 총 11억5천만원으로 상인연합회가 10억원을, 동대구역전시장상인회는 1억5천만원을 받았다. 상인연합회는 10억원 중 각 시장상인회별로 2억원(2곳)·1억5천만원(2곳)에 나눠주고 나머지 3억원은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자금의 배분 과정에서 상인회 내부 갈등이 불거져 언론에 ‘상생기금’에 대한 존재가 노출되자, 한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내부적으로 이미 결정된 부분”이라며 “상생기금은 앞으로 시장상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시장 시설 보수 등 공적인 성격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생기금이 오간지 3개월 뒤 시장상인들은 “상생기금의 사용처가 의심스럽다”며 경찰에게 상인회 간부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한 50대 시장상인은 “상생기금 존재도 몰랐는데 언론을 보고 알게 됐다. 상인을 대표해서 시장 경제 살리기를 위해 뽑아놓은거지 특권을 누리라고 뽑아놓은 것이 아니다. 큰 돈을 받아 어디에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최근에 시장 쇼핑 환경시설이 나아진 것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상인 간부들의 횡령 등 비리 의혹은 대구 지역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7월 경기 수원시 한 시장은 인근에 입점한 대형마트로부터 상생기금을 5년 동안 받기로 했으나 2년(8억5천여만원) 만에 상인들과 자금 운영 투명성 문제로 갈등을 겪다 검찰과 경찰에 고소·고발했다. 지난 2015년 5월 경남 마산에선 한 상인연합회장이 인근에 입점하려는 대형마트로부터 기금과 보조금 5억7천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관리·감독 없는 사각지대

상생기금은 대형마트 규제를 대폭 강화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복합쇼핑몰 등 대형 유통매장이 출점할 때 주변 상권 활성화를 함께 돕고 살리겠다는 차원으로 인근 지역 상인들에게 ‘상생(相生)’ 명목으로 건네는 합의금 개념이다. 그동안 시장 경제계에선 하나의 관행이었다. 일각에선 지역 상인들의 집회 등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음성적인 ‘뒷돈’으로도 지적돼왔다.

논란의 중심은 상생기금의 사용 기준과 관리·감독하는 기구가 없다는 점이다. 단지 일부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유용할 경우 횡령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

대구시와 동구 등 지자체는 시장상인회를 관리할 조례도 법안도 없다는 입장이다. 대구시 민생경제과 관계자는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돈을 주고 받아 생긴 문제에 대해서 공공기관이 나서서 관리·감독할 권한은 없다”며 “지자체 보조금이 잘못 사용된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관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중소기업청도 “대형마트 입점에 대한 허가 등 전 조율 과정은 지자체가 전적으로 관여하는 부분이어서 우리는 상생기금 관련 내용조차 모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상인회로 들어오는 상생기금 등 돈이 상인회만의 특권 행사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말이 나온다.

상인연합회가 상생기금에 대한 논란이 일자 지난달 중순께 대구 전역 전통시장 50여곳의 각 상인회장에게 입막음용으로 200만원씩 돈을 건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내년에 임기가 마무리되는 상인연합회 간부들이 2019년 임원 선출을 위해 선거 선심용으로 줬다는 말이 시장상인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상인연합회 임원은 연합회에 등록된 대구 58곳 시장의 각 상인회장이 직접 선거로 뽑는다. 경찰도 이 점을 주목하고 상인연합회가 관리한 3억원의 사용 내역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대구의 한 시장에서 30년 넘게 음식점을 운영하는 60대 상인은 “2000년대 들어 대구에 수많은 대형마트 등 큰 유통업계들이 많이 들어왔다. 대부분 상인회 쪽에서 상생기금 성격의 돈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에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깨끗하게 밝힌 곳은 손에 꼽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상인(건어물 판매)은 “상인회 간부들의 개인 속살 채우기에 급급한데 시장 살리기가 제대로 되겠냐”고 말했다.

◇뒷돈과 한끝 차이, 대책은 없나

최근엔 상생기금을 아예 금지하는 법안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논산·계룡·금산)은 지난달 5일 일부 대기업 등이 대규모 점포 입점을 위해 주변 중소상인과 이해관계자에게 비밀리에 금품을 제공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자는 내용을 포함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일부 상인들과 대기업이 상생기금을 잘못 사용해 불투명한 거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전체 상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말했다.

반응은 엇갈린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된다하더라도 상생기금을 명목으로 한 뒷돈 거래는 오히려 풍선 효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존 유통산업발전법에서도 미흡한 출점 규제가 사업조정 신청 남발로 이어져 되려 행정력 낭비를 가져오는 등 실질적인 대형 유통 매장의 출점 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상위법 손질 외에도 상인회 의식 개선 교육 등을 포함한 지자체 차원의 관리·감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장흥섭 경북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원장)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와의 상생기금은 그동안 현금으로 몇 억씩 주는 게 관행되어 왔다. ‘상생’ 논리는 관에서 주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지자체 차원의 관리 감독이 배제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상생발전 투명성 위해 절차에 대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앞서 대구경실련은 지난 22일 성명서를 내고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상인회에 공적인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광현 사무처장은 “정부에서 전통시장 활성화사업 등을 추진해 시장에 상당히 많이 도와주고 있는데 이같은 부도덕한 관행은 시민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김지홍기자 kj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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