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품은 ‘삼국유사’의 고장, 청량한 초록도 품었네
세월 품은 ‘삼국유사’의 고장, 청량한 초록도 품었네
  • 황인옥
  • 승인 2017.06.0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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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순의 역사·문화 숨결 따라 <1> 군위군
일연스님이 생의 마지막 보낸 ‘인각사’
삼국유사 비롯 백여편의 불교 서적 집필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울창한 산림 일품
팔공산에 꽃피운 제2석굴암 ‘삼존석굴’
돌담·고택 등 내륙의 제주도 ‘한밤마을’
시간여행지 ‘화본역·추억의 학교’ 인기
20세기 가장 뛰어난 역사학자로 꼽히는 에드워드 카(Edward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고 말했다. 역사는 과거의 박제된 사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계속 이어지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역사의 현장을 찾을 수 있겠지만 특별히 삼국 통일 천년의 왕조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경북 곳곳에는 유독 깊고 넓은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전통 문화유산이 오롯이 담긴 경북 지역으로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따라서’라는 주제로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팔공산과 삼국유사의 고장
 

고로 아미산
고로 아미산.
경북 군위는 수려한 자연 경관과 더불어 역사의 향기가 살아 숨 쉬는 우리 민족 문화의 원류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우리나라 8대 명산영악(名山靈岳)이라 불리는 팔공산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울창한 산림을 품고 있어 자연으로부터 얻는 사유와 휴식의 시간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일연스님이 쓴 고대 한반도의 반만 년을 증명하는 최초의 역사서인 <삼국유사>를 잉태한 유서 깊은 역사의 고장이다. 군위의 빼어난 자연과 생생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국보급 보물을 잉태한 인각사

<삼국유사>는 우리나라 국보 제 306호와 30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국유사>는 그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한 개인이 이룬 위대한 업적이다. <삼국유사>가 갖는 위대함은 일연스님이 오로지 백성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어 채집한 우리 고대사의 역사·지리·문학·종교·언어·민속·사상·미술·고고학 등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이기 때문이다. 그 숭고한 역사서를 집필한 곳이 바로 인각사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이곳을 일연스님은 생의 마지막 안거지로 삼고 <삼국유사>를 비롯한 백여 편의 불교 서적을 집필하고 구산문도회를 열며 역사에 길이 빛날 혁혁한 공적을 세웠다. 일연스님은 78세에 보각국사의 칭호를 얻고 95세의 노모를 모시기 위해 인각사로 내려왔다. 그 이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인각사에서 한평생 수집한 우리 문화를 고스란히 꽃피워 후세에게 옛적의 문화를 향유하도록 했다. 그 바탕 위에 우리의 미래 또한 찬란히 열매 맺을 수 있지 않을까.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에 위치한 인각사는 산속 깊이 숨어 있는 여느 사찰과는 달리 큰 도로변 평지에 있어 길을 가다 문득 들어가 볼 수 있다.

절은 비록 낮은 평지에 있지만 맞은 편 화산의 위풍당당함과 병풍처럼 늘어선 바위절벽의 빼어남, 그 아래 위천이 유유히 흐르며 학이 서식했다는 학소대의 풍광이 그 옛날 인각사의 위상을 말해 주는 듯하다.

인각사 경내를 둘러보노라면 스님의 공적비와 부도 등 곳곳에서 일연스님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스님의 생애를 담은 보각국사비는 오랜 풍파를 겪은 나머지 마모가 심해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스님의 비는 훼손을 겪다가 탄생 800주년을 맞아 복원되었다. 인각사 국사전에는 일연스님의 모습을 담은 진영이 있고, 일연선사생애관에는 일연스님 관련 자료와 인각사에서 출토된 진귀한 유물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생애관 앞에 세워진 <일연찬가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 여든 살 그이 촛불 밝혀 한 자 한 자 새겨간 그 찬란한 혼 만나 뵈러 여기 인각사로 오라’ 고은 선생의 글인데 한 구절을 읊으니 일연스님의 위대함과 흠모의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인각사를 뒤로 하면서 문득 스님이 입적하기 전에 남긴 게송이 떠오른다.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

젊었던 한 시절 자취 없이 가버리고

시름에 묻힌 이 내 몸 덧없이 늙었어라

한 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린들 무엇 하리

인간사 꿈결인 줄 내 이제 알았노라

◇추억을 일깨우는 휴식의 공간, 일연공원

일연스님의 향취를 더 느끼고 싶다면 인각사에서 1.5km 거리에 위치한 일연공원으로 발길을 돌려 볼 일이다. 일연스님을 기리고 기념하는 의미가 담긴 일연공원은 군위댐이 지어지면서 하류지역에 조성된 생태 공원이다. 생태 연못과 일연폭포가 있고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어 나그네의 피로를 덜어 준다.

일연공원에는 <삼국유사>를 주제로 한 다섯 개의 테마 공간이 있다. 건국신화 공간, 향가의 공간, 고승의 공간, 설화의 공간, 일연스님의 공간인데 이곳을 특별히 ‘문화유산의 방’이라고 부른다.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옛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우게 하는 공간이다.

일연공원의 또 다른 사연을 담은 ‘군위군 기억의 방’은 2010년 고로면에 군위댐이 들어서면서 정든 고향을 등져야 했던 수몰민들의 추억과 향수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공간이다. 동판에 새긴 주민들의 손바닥과 사진으로 남은 옛 모습, 마을 이름을 새긴 비석들이 대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펼쳐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아련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일연공원을 품고 있는 군위댐 일대는 맑고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가 압권이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연 경치는 도시에서 찌든 때를 한 순간 말끔히 씻어 준다. 게다가 길고 편안한 산책로와 놀이터, 넓은 주차장 등을 고루 갖추고 있어 휴식의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군위 명소 구석구석 둘러보기>

◇팔공산 자락에 불심으로 꽃피운 삼존석굴
 

삼존석굴
삼존석굴
군위에는 경주 석굴암보다 1세기 앞서 만들어진 삼존석굴이 있다. 이 석굴은 석굴암보다 발견이 늦어져 ‘제2 석굴암’이라 불린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에 거대한 바위산 절벽을 이룬 곳에 절벽허리 20m 높이에 남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의 삼존불을 모셔 놓았다. 석굴암의 선행양식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국보 제109호로 지정됐다. 신라 소지왕 15년(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한 이 삼존불상은 고구려에서 전해진 신라불교가 팔공산 자락에서 꽃피워지고 신라 왕도(王都) 경주로 전해져 결실을 맺었음을 잘 말해 준다. 엄숙한 기품이 느껴지는 삼존석굴을 참배하며 불교 유물을 살펴보고 수려한 주위 경관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봄직하다.

◇내륙의 제주도라 불리는 한밤마을
 

한밤마을 돌담
한밤마을 돌담
군위에는 천 년을 이어온 전통마을이 있다. 바로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이다. 이곳은 집집마다 야트막한 돌담들이 속삭이듯 둘러져 있어 ‘내륙의 제주도’라 불린다. 마을에는 남천고택을 비롯해 천 년의 세월을 지켜온 고택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시간을 거슬러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마을 앞에 그 옛날 위상을 말해주는 듯 수령 200년이 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했다. 송림의 넓고 푸른 잔디는 자연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역사문화재현 테마 공원 사라온이야기 마을

군위에는 조선시대 조상들의 삶을 관람하고 체험하는 군위 역사문화재현 테마 공원인 ‘사라온이야기’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조상들의 삶을 관람하고 체험하도록 조성된 문화향유 공간이다. 군위읍의 구 청사와 관사 일원 7,948㎡에 조성한 것으로 테마별로 적라촌, 적라청, 적라골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생활양식을 통해 선조들이 살아온 역사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역사와 문화관광, 전통놀이 및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군위 관광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행의 설렘을 간직한 화본역과 추억의 학교
 

간이역-화본역
네티즌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역’
군위 화본역은 열차 마니아가 선정한 아름다운 간이역에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70여 년 전 아담한 역사(驛舍)에서 보여주는 간이역 특유의 분위기가 여행의 설렘을 자아낸다. 또 전국에서 몇 개 남지 않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이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역 광장에는 간이역 시비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2006년 세워진 박해수 시인의 시비가 서 있어 낭만을 더해 준다. 화본역 주변 산성중학교에는 1960, 70년대 생활상을 체험하고 엿볼 수 있는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라는 주제로 추억의 학교를 재현한 테마박물관. 지나간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기분도 쏠쏠한 재밋거리다. 화본역 주위 담벼락에는 삼국유사를 주제로 한 벽화는 단순한 볼거리를 뛰어넘어 교육적인 효과를 함께 제공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경북도의 한 가운데 지형에 위치한 한적하고 고즈넉한 풍광을 가득 담고 있는 자연과 역사의 도시 군위. 일연스님과 인각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 공부와 천 년의 숨결이 온전히 남아 있는 전통 마을과 향교 등 곳곳에 문화의 정취가 배어 있는 작지만 알찬 여행을 즐기기에 충분한 군위에서 초여름의 정취를 음미해 보면 어떨까.

이철순 자유기고가 bubryun@keduinfo.com

이철순은?

- 1978년:영남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교우지 ‘영대문화’ 기자로 활동.

-1989년3월~12월:서울 ‘명상출판사’ 편집장.

-1990년 3월~1991년 12월:월간 ‘해인’ 취재기자.

-1994년 3월~1997년 3월:유럽 ‘벨기에’ 거주, 불교문화연구소 설립 활동.

-1997년 6월~2004년 12월:잡지 및 신문사 프리랜서 취재기자, 글쓰기 논술 특강 강사로 활동.

-2000년 6월~현재:출판전문기획사 해조음 대표, 자유기고가, 교육신문 ‘진학일보’ 편집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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