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고향 잃은 아픔 품어준 새 터전…이젠 ‘끼’ 마을로 거듭
정든 고향 잃은 아픔 품어준 새 터전…이젠 ‘끼’ 마을로 거듭
  • 김지홍
  • 승인 2017.07.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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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예끼마을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 예안마을 주민들
아랫마을로 이주해 와 40여년간 마을 일군 곳
마을 지나던 유명크리에이터디렉터와 인연
‘예술에 끼가 있다’는 뜻 가진 마을이름 정해
市 공모사업 선정·경북 청년조합 도움 받아
벽화 골목·예술체험 공간·한옥카페 등 조성
연말 완공 목표 선성형문화단지 한옥마을도
안동예끼마을1
1976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민 400세대가 주변 예안면 서부리에 모여 마을을 이뤘다. 이 마을은 끼 많은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안동 예끼마을’로 재탄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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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심에 있는 선성공원은 마을의 고즈넉한 멋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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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로 재탄생한 근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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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현 문화단지 한옥체험마을.

‘수몰이 돼 수백년 살아온 고향 땅은 물바다로 변하고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제각기 아픔을 안고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 끝에 부모님께서는 다른 곳은 못 간다고 하셔서 맏이만 산자락의 터를 마련해 집을 짓고 고향을 지키면서 생활하기로 마음 먹고 생활하려는 데 좋은 옥토는 물길이 되고 남은 땅은 산자락의 곡식도 되지 않은 땅들이다. 어느 누가 이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 예안이란 곳은 유래가 많고 유서 깊은 고장으로 애환이 담긴 마을 향기가 넘치는 마을이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정금자(75)씨가 ‘수몰민’이란 제목으로 예끼마을 백일장에 써낸 글이다.

1976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윗 마을이었던 예안마을은 호수가 돼 물에 잠겼다. 정씨와 같은 수몰민 400세대가 주변 예안면 서부리에 모여 마을을 이뤘다. 이 마을은 40년이란 세월 뒤 200가구 채 살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 됐다. 평균 나이 65세. 최근 이 마을에선 크고 작은 소동이 일고 있다. ‘끼’ 많은 어르신들이 ‘끼’ 있는 마을로 만들자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 수몰의 아픔, 예술로 펼치다

도산서원을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서부리는 나즈막한 단층 건물들로 이뤄진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사는 어르신들은 젊은 시절, 부모를 따라 이곳으로 터전을 옮겼다. 예전에 이곳은 경북 영양과 안동, 봉화 등 인근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예안장터가 열렸다. 장터에는 장옥(長屋)이 형성됐고 우(牛)시장이 크게 열렸다. 한번에 수 천명이 오가던 곳이었다. 강산이 네 번 바뀌면서 젊은 층이 빠져나가고 유동 인구도 줄어들었다. 장옥과 우시장이 폐쇄되고 상가들도 문을 닫았다. 지금은 대부분 농사를 하거나 주변 기관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르신들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짧은 역사를 가진 마을이지만 후대에 마을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우연히 마을을 지나가던 유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한젬마 씨가 관심을 보이고 예술을 접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한 씨는 “농촌이 좋고 마을이 너무 이쁘다”며 “쇠퇴해가는 마을을 주민들이 스스로 살리고 젊은 마을로 꾸며보자”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마을을 ‘예끼마을’로 정했다. 재주 예(藝)로, ‘예술에 끼가 있다’는 뜻이다.

예끼마을은 2015년 안동시의 ‘도산 서부리 예술마을 조성사업’을 지원받았다. 어르신들은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 대화모임에 참가하면서 전문가의 조언도 받았다. 경북지역 첫 청년자립조합 ‘바름협동조합’도 힘을 보탰다.

마을 담장을 활용해 벽화 골목을 꾸미고 상가 간판도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모양으로 바꿨다. 빈집을 활용해 마을 식당·한옥카페·안내센터 등으로 꾸몄다. 우체국 건물은 1층에 예술 체험 공간으로, 2층은 역사사진 전시관으로 운영했다. 지역 예술인 등이 이곳에 와 전시 혹은 작업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일부는 무상 임대로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8월부터는 마을 소식을 실은 마을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예끼마을의 예술 바람은 작가들의 관심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신혼부부도 주목했다. 김성원·정민경(34) 부부는 이 마을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부는 마을 사거리에 포장마차 ‘이심전심’을 열고 운영했다.

마을주민들도 활기가 넘쳤다. 주민들의 숨은 ‘끼’는 주민 복지 교육 프로그램 결과물이다. 마을회관에선 지난해 노래·서예·탁구·풍물반이 운영됐으며 올해는 연극·한지·하모니카 교실 등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교실로 주민들이 더 자주 모이고 소통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일었다.

◇ 고즈넉한 ‘한옥체험마을’ 재탄생

주민들의 꿈은 ‘찾아오는 마을’이다. 관광과 연계한 마을 활성화를 꿈꾸고 있다. 현재 옛 농협 창고 자리에 선성현 문화단지(예안현 관광지) 한옥체험마을을 조성 중이다. 5천633㎡ 규모의 체험형 관광단지로 3개 문화권 사업이기도 하다. 지난해 터 잡기를 시작해 올 연말이면 완공될 예정이다. 한옥체험관은 웅장한 10채의 한옥으로 꾸며져 산 아래 자리잡았다. 전국의 고택 체험 공간은 많지만 대규모 한옥 체험 시설은 이곳이 유일하다. 외부는 전통 건축으로 100% 국산 목재로 지어졌다. 내부는 현대 건축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 관광객들의 편의를 더했다.

마을의 전통 먹거리인 ‘무청시래기’도 대표 먹거리로 거듭났다. 무청시래기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 혈당 및 인슐린 분비 조절 기능에 도움을 준다. 특히 말린 시래기는 생시래기보다 베타카로틴 성분이 약 5배 이상 많아진다. 예끼마을은 무청시래기로 만든 비빔밥을 대표 음식으로 내세웠다. 무청시래기 밥은 특유의 담백함과 고소함을 살려낸 깊은 맛을 특징이다. 오는 9월 경북 구미에서 열리는 ‘2017 경북 마을이야기 박람회’에서 맛볼 수 있다.

글=지현기·김지홍기자

사진=전영호기자

◇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예끼마을에서 5㎞ 남짓한 거리에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서월으로 조선시대 선조 7년(1574년)에 세워졌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졌던 때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다. 입구에서 도산서원까지 걸어가는 200m 남짓 한적한 산책로가 아득함을 더한다.

◇ 이육사 문학관

이육사 문학관은 지난 2004년 육사 이원록 선생(1904~1944)의 항일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출생지인 도산면 원촌리에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워졌다. 최근 문학관 확충과 증축 공사를 마친 뒤 5개의 전시실에 다양한 자료로 채워졌다. 2005년 5월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시설로도 인정받았다. 예끼마을에서 10㎞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 선성산성(宣城山城)

예끼마을의 옛 이름인 선성은 고려 왕조가 세워질 당시 삼국 통일에 기여한 삼태사의 공을 높이 사서 선성군으로 봉해지면서 얻게 됐다. 고려 말기에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 일행이 안동으로 오게 됐을 때 왕조를 지켜내기 위해 지역 곳곳에 산성을 쌓게 되는데, 그 중 한 곳이 선성산성이다. 현재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진 않지만 충정(忠情)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2006년 경북의 종합유교문화센터 건립 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국내 유일의 유교 전문 박물관이다. 정신문화의 수도의 대표적인 시설 중 하나다. 유교문화박물관에는 개별 문중이나 서원 등 민간으로부터 기탁받아 소장하고 있는 국학 자료 중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을 엄선해 전시하고 있다.

손기석 위원장
손기석(69·사진) 안동 예끼마을 선성발전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006년 경북 안동에서 직장 생활을 마치고 고향 서부리 ‘예끼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이야기 조성 사업의 첫 단추를 꿴 인물도 손 위원장이다.

손 위원장은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마을에 도로가 만들어지고 깜깜했던 길에 간판 불이 들어오면서 전체적으로 마을 분위기가 밝아졌다”며 “작고 조용했던 마을이 오히려 한옥체험마을로써 최고의 입지 조건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마을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니까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돈다”고 말했다.

손 위원장은 조성사업 과정에서 어려움도 털어놨다. 그는 “2년째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단지 주민만의 힘으로 무언가를 운영한다는 건 한계가 많았다”며 “마을에 온 젊은 친구들도 수익이 불투명하니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어떻게 더 체계적으로 운영해갈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손 위원장은 ‘사람이 찾아오는 마을’을 목표로 세웠다. 그는 “이쁜 마을보다 주민이 함께하고 관광객들이 왔으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다”며 “관광이 어우러져 주민 일자리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하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손 위장은 앞으로 예끼마을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마을팀 홍보물 제작에도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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