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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자락 세종·태종 태실 잠들어 있는 왕의 터

기사전송 2017-08-10, 20: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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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순의 '역사·문화 숨결 따라'<10> 성주군
왕건 도와 고려 개국한 공신 이총언
공덕 기리는 경수당·사적비 보존
성주 수륜면~김천 증산면 절경
한 편의 시로 표현한 ‘무흘구곡’
저자 한강 정구 선생 자취 담겨
성주 명소 구석구석 둘러보기
가야산 일출
성주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가야산에 둘러싸인 도시로 세종대왕, 단종, 태종대왕의 태실이 있는 곳이다. 사진은 가야산 일출 모습.


성주(星州)는 말 그대로 별 모양을 하고 있는 별고을이다. 성주를 품고 있는 가야산은 산세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져 조선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영남의 명산이다.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뽐내는 가야산의 풍광과 더불어 한반도의 형상을 연출하고 있는 성주호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절경을 연출한다. 고대로부터 길지(吉地)로 이름 나 왕실의 찬란한 생명문화를 꽃피우는 곳,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했던 선비의 기개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이 바로 성주다. 자연과 역사, 문화가 공존하는 성주를 탐색해 보자.



경수당
고려 개국 공신 벽진장군 이충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경수당의 모습


◇고려 개국의 일등공신 벽진장군 이총언

성주(星州)는 옛 이름이 벽진(碧珍), 성산(星山), 광평(廣平), 경산(京山), 가리(加利) 등 5개나 되는데 여기에 성주를 더해 각각 다른 이씨의 본관을 지명에서 연원하고 있다. 신라 헌강왕 2년(858) 벽진군에서 태어나 후일 벽진 이씨 시조가 된 이총언은 고려 개국의 일등공신이다.

왕건이 삼국을 통일해 고려를 건국하기까지 숱한 전투를 치르는 동안 항상 곁에서 큰 힘이 돼 준 인물이 바로 이총언이다. 후백제가 신라를 침략했을 때 수차례 백제 대군을 격파해 대승을 거뒀고 왕건이 견훤에게 쫓겨 공산전투에서 완전 포위되어 대패하여 도주할 당시에도 이총언이 있었다. 왕건이 외로이 혼자 말을 타고 청천강, 반야월, 해안, 대구 앞산 은적사, 월배를 거쳐 벽진군에 도착할 때까지 이총언은 사지에서 태조 왕건의 생명을 구출하였다. 그 후 자신의 아들 영(永)에게 태조를 호위하여 황도 개경까지 무사히 안착하도록 하여 통일대업과 고려 왕조의 기틀을 다지도록 뒷받침한 개국 원훈(元勳)이 바로 이총언이다.

이총언의 공을 인정한 고려 태조는 자자손손에 이르도록 마음 변치 않겠다는 맹약을 담은 친서를 보내 금석과 같은 신의를 표시하였고, 공을 세운 이총언에게 국빈예우로 각별히 대했다. 고려 태조는 은혜의 마음을 갚기 위해 공주인 사도(思道)를 이총언의 아들 영에게 출가시켜 부마로 삼았고, 이총언에게는 고려 정일품의 문관 품계인 삼중대광(三重大匡) 벽진장군으로 봉하였다.

성주군 벽진면에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넘어 청렴과 충직으로 대업을 이루고자 하는 큰 뜻에 마음과 힘을 다한 벽진장군 이총언의 공덕을 기리는 경수당(敬收堂)이 있다. 경수당에는 양정재, 근성재, 비현사, 세덕사 등 전각과 유허비가 있고 인근에는 전장에서 당당하게 호령하던 벽진장군의 위업을 아로새긴 사적비가 울창한 솔숲에 우뚝 서 있다.



◇고려 말 대문장가 도은 이숭인

이숭인(李崇仁)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고려 말 대학자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성주가 낳은 역사적 인물이다. 이숭인은 1346년 성주에서 출생해 1360년(공민왕 9) 14세의 나이로 국자감시에 합격하여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이색의 제자로 학문을 익혔다. 16세 때 숙옹부승에 임명 되었고, 승진을 계속해 장흥고사 겸 진덕박사가 되었다. 예의산랑, 예문응교, 문하사인등 관직을 두루 지내고 21세 때 성균관 생원이 되면서 정몽주, 정도전, 권근 등과 깊은 교우관계를 가졌다.

고려에서 명나라 과거에 응시하기 위한 관리를 선발했을 때 이숭인은 수석으로 뽑혔지만 25살이 되지 않아 보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대문장가로서 자질을 잘 보여준다. 이숭인은 재능이 뛰어나고 문장력이 탁월해 원나라와 명나라의 복잡한 국제 관계의 외교문서를 도맡아 썼을 뿐만 아니라 주옥같은 글이 담긴 『도은집』을 남겼다. 스승 목은 이색은 중국에서 찾아도 구하기 힘든 문장들이라 칭찬했으며, 멀리 중국에까지 문사로 그 이름을 떨쳤다.

이숭인이 살았던 시대 상황은 고려 말 정치적 격변기였다. 그는 명나라를 지지하는 친명파로서 친원파에 의해 배척되어 자주 유배길에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친명파의 대표적 인물인 정몽주가 피살되자 다시 정몽주파로 몰려 정도전 등에 의해 44세의 젊은 나이로 죽임을 당했다. 이방원이 즉위한 후 이조판서로 증직되고 ‘문충’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숭인의 문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죽음 또한 그의 문장과 관련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이숭인은 정도전과 함께 이색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하루는 이숭인이 지은 ‘명호도(鳴呼島)’란 시를 보고 이색은 크게 칭찬했다. 며칠 뒤 정도전도 명호도를 지어 이색에게 보였는데 이를 보고는 “좋은 작품이고 잘 지었다. 그렇지만 도은의 시 같은 것은 많이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도전이 권세를 쥐었을 때 이숭인은 정도전의 심복인 황거정에게 피살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명호도가 빌미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 고금의 수많은 경박한 소인들이 / 아침엔 친구였다가 저녁엔 원수가 되는 것을’이라는 명호도의 일부 내용에서 보듯 그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내다본 것일까.

성주군 벽진면 안산영당에는 이숭인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이숭인은 고려를 지키려 했던 절의의 충신이었고 성리학의 깊이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던 문인이었다. 당대 최고의 시문만을 엄선한 『동문선』에 실린 시문 75수는 그의 문학관을 잘 말해준다. 특히 그가 남긴 주옥 같은 차시(茶詩)는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차시 한 편을 음미해 보자.



선생이 나에게 주신 한식 전 봄차 / 색과 맛 향취 하나하나 새롭구나 / 온 세상 떠도는 슬픔 깨끗이 씻어 주나니 / 모름지기 좋은 차는 佳人과 같도다



◇청빈한 선비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

정구는 1543년(중종 38) 성주 대가면에서 태어나 호를 ‘한강’이라 하고 1620년(광해군 12)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학문에 매진한 대유학자이며 문신이다. 정구는 외증조인 성리학의 대가 김굉필로부터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그래서일까. 체질적으로 남명의 명행(名行)과 출처의리(出處義理)를 본받았고, 학문 태도는 퇴계의 학풍을 이어 받아 자신의 학풍을 일으켰다. 그의 학문을 연원(淵源)으로 하여 근기학통(近畿學統)이 이루어지고 조선후기 실학사상의 주류를 이루는 경세치용파(經世致用派)로 이어졌다.

한강 정구는 젊은 날 향시에 합격한 후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갔다가 명종의 외척인 윤원형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시험을 치지 않고 바로 돌아올 정도로 강직하고 청빈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평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할 때는 주로 외직을 맡아 선정을 베풀었고, 내직으로 우승지, 공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는 ‘문목’이라는 시호와 함께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한강 정구가 남긴 또 하나의 업적은 ‘무흘구곡’이다. 성주군 수륜면에서 김천 증산면 수도리까지 약 35킬로미터 대가천에 이르는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절경을 무흘구곡이라 이름하고 7언 절구의 시로 남겼다. 중국 남송시대 성리학을 이룬 주희가 지은 무이구곡을 본떠 봉비암, 한강대, 배바위, 선바위, 사인암, 옥류동, 만월담, 와룡암, 용추라는 자연과 어우러진 이름을 짓고 도학의 근원을 찾아가는 수행과정을 산수의 아름다움에 빗대어 노래했다. 아름다운 100리길에 선정된 무흘구곡은 성주군 30번 국도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다. 무흘구곡을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풍광에 절로 발길이 멈추어진다.

성주군 수륜면에는 한강 정구가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회연초당 자리에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유학 교육을 위하여 1627년(인조 5)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회연서원이 있다. 그가 심은 100그루의 매화나무가 봄이 되면 지천으로 피어 그 향기를 뿜는다.

△한개마을

성주군 월항면에 위치한 한개마을은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이능일의 15대손 이우가 처음 들어온 이래 마을을 형성해 영남 지역에서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에 이어 세 번째 민속마을(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된 곳이다. 600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 한옥과 초가, 강학을 펼치던 강당 등 75채의 가옥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어 옛 정취를 감상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마을을 둘러싼 아담한 산과 노송 등 자연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우러져 고풍스럽게 다가온다. 해질녘 고즈넉한 돌담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종대왕자태실
세종대왕자태실


△세종대왕자태실 & 생명문화공원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이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에게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 여겨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었다. 왕족의 경우에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믿어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명당에 안치시키는 방법으로 처리했다. 성주에는 세종대왕자태실, 단종대왕태실, 태종대왕태실 모두 3곳의 태실지가 있다. 월항면 인촌리에 위치한 세종대왕자태실은 세종대왕의 적서 18명과 단종이 원손이었을 때 조성한 태실 1기를 포함해 총 19기의 태를 봉안하고 있어 태실문화 유산으로 그 가치가 높다. 세종대왕자태실은 군집을 이룬 전국 최대 규모다. 보기에도 명당 길지임이 느껴지는 솔숲 돌계단을 오르면 군집한 태실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근에는 태실 수호사찰인 선석사가 있고, 생명문화공원을 조성해 조선왕조의 출산의례와 태실의 조성과 구조 등 생명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 가야산야생화식물원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일원에는 가야산 신화와 역사를 담은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이 있다. 가야문화권의 성지로 성주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마련된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은 신화의 땅 가야산의 만남, 해동의 명산 가야산의 전경, 구전설화 가야산의 전설, 가야산의 산신 정견모주의 신화 등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신화 이야기가 다양한 영상물로 전시되고 있어 성주의 모태인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인근 가야산 자락에는 야생화를 주제로 하는 국내 유일의 군립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이 있다. 640여 종의 나무와 야생화를 식재해 야생화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감상할 수 있는 야생화 문화공간이다.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꽃차 무료 시음은 덤으로 얻는 기쁨.

자유기고가 ubr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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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철 교수의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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