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내려온 재래방식 고집…명품한지의 탄생지
200년 내려온 재래방식 고집…명품한지의 탄생지
  • 김지홍
  • 승인 2017.08.1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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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한지마을
7대 맥 이은 한지 제작 기법 계승
이자성 한지장 무형문화재 지정
딸 이규자씨도 제지업 뛰어들어
현대 생활용품 접목 활성화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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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에서 유일하게 전통한지를 만드는 ‘한지마을’이다. 이곳엔 닥나무가 많아 신라시대부터 제지업이 성행했고, 200년 동안 전통 한지 비법이 전수돼왔다. 경북 지정 무형문화재 이자성 한지장이 7대째 전통한지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드론 촬영

경북 청송군 파천면에 들어서면 사람 허리만큼 자란 닥나무가 손님을 반긴다. 닥나무 밭을 지나면 ‘타닥타닥’ 장작불 타는 소리가 난다. ‘탁탁’ 방망이를 두드리는 소리도 난다.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마당 한켠에 닥나무 껍질이 햇볕 아래 바싹 말라가고 있다. 이곳은 청송군에서 유일하게 전통한지를 만드는 ‘한지마을’이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200년 동안 전통한지 제작비법이 전수돼 오고 있다. 경북 지정 무형문화재 제23-가호 이자성(69)한지장이 7대째 전통한지의 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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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지를 뜨는 ‘외발뜨기’ 기술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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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한장씩 떼어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열판에 붙여 건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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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자 전통한지 전수자가 마당에서 껍질을 벗긴 닥나무를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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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한지로 만든 공예품.

◇‘제지업’ 옛 숨결이 그대로

청송은 신라시대 이래 제지업이 성행해왔다. 특히 파천면 신기2리는 참닥나무 산지로 물이 깨끗해 종이 색이 변하지 않아 제지마을로 유명했다. 조선시대 때 청송 신씨의 문중에선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이 종이를 사서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신리2리는 1920년대에는 20여 개의 제지공장이 있어 한지 고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1980년대 중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신리2리 일부가 수몰되자 현재 한지마을로 터전을 옮겨왔다.

7대조 이석일씨로부터 내려온 한지재래기법은 200년 째 전수돼왔다. 한지마을에서 유일하게 이 기법으로 한지를 만들어 온 이자성 한지장은 1995년 6월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청송은 닥나무 중 최고로 꼽는 참닥나무가 많이 분포하고 있는 산지라는 지형적인 이점 때문에 타 지역과 차별화된 한지가 생산된다. 청송한지 생산과정은 긴 기다림과 노동력이 동반돼야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삶기·씻기·말리기·다리기 등 12가지 공정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청송한지는 주로 1년생 닥나무를 사용하는데, 12월부터 그 다음해 3월까지 닥나무를 채취한다. 채취한 닥나무를 큰 가마솥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6~7시간 정도 삶는다. 뿌리 쪽의 닥나무가 줄어 들어간 것이 잘 익은 닥나무다. 삶긴 닥나무를 껍질을 하나씩 잡고 밑에서부터 껍질을 벗겨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말려 보관한다. 말린 껍질을 피닥이라고 한다. 피닥을 다시 물에 불려 껍질(흑피)을 닥칼로 제거해 백닥을 만든다. 백닥을 잿물에 넣어 5~6시간 정도 장작불로 삶는다. 이 때 잿물은 메밀대와 콩대, 목화대, 짚 등을 태워서 재를 만든 후 시루에 천을 깔고 태운 재를 넣고 물을 부어 만든다. 삶은 백닥을 차갑고 깨끗한 물에 3~4일 정도 담궈 두면서 햇볕을 쬐어 일광표백을 한다.

본격적인 닥섬유 만들기 과정은 고뇌의 시간이다. 깨끗한 물로 씻은 닥나무 섬유질을 나무판 위에 올려 놓고 나무 방망이로 두드린다. 닥나무 섬유질은 두드릴수록 질겨지고 부드러워진다. 이어 닥죽을 깨끗한 물에 넣고 세게 저으면서 점액을 자루에 담아 걸러내 닥풀의 즙이 잘 섞이도록 저어준다. 이런 과정을 거친 청송한지는 표면이 고르고 질기며 흡습력이 강해 오래 보관할 수 있어 최고의 한지로 각광받고 있다.

◇한 발, 한 발 뜬 장인 발길

전통 한지를 뜨는 ‘외발뜨기’ 기술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대나무를 아주 잘게 떠서 촘촘하게 엮어 만든 발로 앞물을 떠서 뒤로 흘려버리고, 옆 물을 떠서 반대쪽으로 흘려보내는 것을 여러번 반복한다. 이 때 한지의 두께를 조절하는 데 이 작업이 반복되고 교차되면서 견고한 섬유 조직이 생긴다. 한 장의 한지는 2번 이상 발뜨기를 해서 합쳐진다. 외발뜨기 한지는 합지 또는 음양지라고도 불리는데 합을 이루는 각면이 엇갈리게 합쳐 그 강도를 높인다. 발 위에 다른 발틀이 없어 물이 사방으로 흘러가는데 이 때 어느 방향으로 흘러보내느냐에 따라 섬유 배열이 좌우된다. 한지의 용도에 맞춘 두께 정도는 눈으로, 손으로, 감으로 맞춰야 한다.

발로 건진 종이를 차례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널빤지와 무거운 돌을 올려 놓고 물이 빠지도록 한다. 어느정도 물이 빠진 종이를 한장씩 떼어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열판에 붙여 건조시킨다. 마지막으로 말린 한지를 수백번 두드려서 종이의 밀도와 섬유질을 높인다.

한 장의 한지가 탄생하기까지 일주일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이 한지장은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 다라니경에도 보여주듯 한지가 1천년 이상 보존되는 이유는 천연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질 좋은 닥나무를 사용하고 삶을 때 천연재료로 만든 잿물을 사용해 종이의 강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청송한지는 서예가나 화가 등 예술가들이 주로 많이 사용한다. 요즘에는 공예품의 재료로도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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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마을의 공방 전경.

◇손재주 없어도 한지 작품이

최근에는 웰빙 바람과 함께 천연 재료로 만든 한지가 인기를 끈다. 환경 호르몬이 없어 아토피를 치료하고 성인병 등도 예방한다. 미술 분야 외에도 황토방·벽지 등으로 많이 쓰인다.

한지마을은 지난 2010년 마을 한켠에 체험장을 만들었다. 한지의 제작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전통한지의 좋은 점과 쓰이는 곳 등을 알아볼 수 있다. 한지 뜨기와 붓 글씨, 전통 공예 체험도 가능하다. 봄에 오면 한지를 만드는 초기 단계인 닥나무를 벗기는 것부터 모든 체험이 가능하다. 체험비는 최대 1만원이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http://cshanji.com)를 참고하면 된다.

글=윤성균·김지홍기자

사진=전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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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자 전통한지 전수자

“한지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야죠.”

이규자(41·사진) 전통한지 전수(傳受)자는 8대째 전통한지기법을 내려받고 있다. 이 전수자는 인위 염료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 염색한 한지를 활용해 한국의 멋을 살리는 전통한지공예품을 제작하고 있다. 한지를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는 물론 공예품도 자신이 직접 개발해 만든다. 현대의 생활 용품에 접목한 한지공예품을 알리겠다는 취지다. 이 전수자는 “옛 제지업을 토대로 공예 영역까지 확장해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공예 체험 등을 통해 타 지역과 차별화된 청송한지를 알릴 수 있도록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수자는 이자성 한지장의 딸이기도 하다. 그에게 제지업은 어릴 적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온 일상이었다. 어린 시절 한지공방은 그의 놀이터였다. 할아버지와 함께 닥나무 껍집을 떼며 놀았다. 겨울에는 문중 마을 전체가 닥나무를 채취해 가져오면 큰 아궁이에 닥나무를 삶고 동네 가구들은 모두 이 한지로 집을 보수했다. 이 전수자는 “예전에는 모든 동네 사람들이 함께 역할을 나눠 한지를 만들었다. 30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가구에서 한지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우리 집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 전수자는 “우리나라 한지의 자긍심은 고려지라고 불렸던 전통한지다. 현재 일본의 화지나 중국의 선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있다. 우리나라 한지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 훨씬 우수한 만큼 유네스코에 등재돼야 한다. 청송한지가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송소고택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의 재산을 가진 ‘만석꾼’ 청송 심씨의 7대손인 송소 심호택이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에 이거하면서 건축한 가옥이다. 7개동 99칸으로 ‘덕천동 심부자댁’이라 불리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상류층 가옥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7년 10월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0호에 지정됐다. 온돌방에서 고택 체험이 가능하다.

◇청송 옹기 체험

이무남 옹기장(경상북도 무형문화제 제25호)은 전 공정을 재래식으로 수작업하는 청송 전통 옹기 제작법을 고수하고 있다.

가마에 장작불을 태워 옹이를 굽는다. 청송 옹기는 사과나무와 뽕나무 등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 유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옹기 표면에 공기가 통하도록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다. 숨쉬는 그릇으로 알려져있다. 청송옹기의 5가지 은은한 색채가 감도는 오색점토는 전국 유일하게 청송 진보에서 나온다.

◇객주문학관

객주문학관은 청송 출신 작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테마로 만들어졌다. 객주는 조선시대 후기 보부상들의 삶의 애환을 그림으로써 상업 자본의 형성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 김주영은 1998년 소설 ‘홍어’로 대산문학상을 수상, 천둥소리·활빈도·화척·아리리 난장·멸치 등을 썼다.

객주문학관은 전시관과 영상교육실, 세미나실, 연수시설 등으로 구성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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