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 지천에 핀 꽃은 ‘들국화’ 아닌 쑥부쟁이·구절초
가을 들녘 지천에 핀 꽃은 ‘들국화’ 아닌 쑥부쟁이·구절초
  • 채광순
  • 승인 2017.11.0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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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휘영의 야생화 편지 (2) 쑥부쟁이와 구절초
쑥 캐러 간 딸 죽은 자리서 핀 꽃
울릉 부지깽이는 ‘섬쑥부쟁이’
한방서 해열제·이뇨제로 사용
1천m 이상 높은 고지대서 흔해
천연기념물 울릉국화도 구절초
중양절 지나면 부인병 등에 약효
쑥부쟁이33
쑥부쟁이
쑥부쟁이
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구절초
구절초

#들국화를 아시나요?

들국화를 아시나요? 이렇게 물으면 누구라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들국화’란 식물명은 식물도감에는 없다. 가을이 시작되면 일제히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데 높고 낮은 산에서 만날 수 있는 구절초, 들이나 산모퉁이에서 흔히 피는 쑥부쟁이, 높은 꽃대에 보라색으로 피는 개미취와 벌개미취, 봄철 5월경부터 늦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개망초, 나무 같은 줄기에 개망초와 같이 다닥다닥 붙어 피는 미국쑥부쟁이 등을 총칭하여 우리는 들국화라 부른다. 가을철 산이나 들녘으로 나가면 늘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기에 ‘들국화’라 불리는 것들이다. 이러한 들국화 부류의 꽃들은 모두 국화과에 속하지만 가을이 오면 일제히 피는 쑥부쟁이, 구절초, 개미취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 중 구절초는 잎이 쑥잎과 비슷하고 동글동글한 꽃잎이 흰색 혹은 연분홍으로 피며 산지에서 주로 서식한다. 반면 낮은 산이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쑥부쟁이와 개미취이다. 둘 다 연한 보랏빛 꽃이 피지만 꽃대가 1~1.5m로 유난히 높은 녀석을 개미취로 보면 구별이 쉬어진다. 개화시기는 개미취가 7~10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8~10월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국화과의 꽃에 Aster(병처럼 생긴 꽃) 혹은 Daisy(국화)라는 이름이 붙는다

#쑥부쟁이

가을이 오면 들녘에는 온통 꽃들이 피어난다. 꽃대 하나에 여러 개의 꽃이 가지마다 보라색 꽃으로 피어나는데 흔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이 대개 이 쑥부쟁이이다. 종류로는 까실쑥부쟁이, 섬쑥부쟁이(부지깽이), 갯쑥부쟁이, 가는잎쑥부쟁이, 왜쑥부쟁이 등 15가지 정도가 있다고 한다. 가을산행에서 쉽사리 마주칠 수 있기에 길손들의 걸음이 한결 가볍다. 쑥을 캐러 간 불쟁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핀 꽃이라고 하여 쑥부쟁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슬픈 전설이 담긴 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가난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11남매의 자식이 있었다. 대장장이의 큰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항상 들과 산으로 쑥나물을 캐러 다녔다. 동네사람들은 그녀를 쑥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네 딸’이라는 뜻의 쑥부쟁이라 불렀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쑥부쟁이는 산에 올랐다가 몸에 상처를 입고 쫓기던 노루를 숨겨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노루는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산 중턱쯤을 내려왔을 때 이번에는 한 사냥꾼이 산짐승을 잡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좀 전의 노루를 쫓던 사냥꾼이었다. 쑥부쟁이는 칡덩굴을 구덩이에 넣어 사냥꾼을 구해주었다. 사냥꾼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번 가을에 꼭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다. 쑥부쟁이는 그 사냥꾼의 늠름한 모습에 호감을 가지고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열심히 일했다. 마침내 기다리던 가을이 찾아왔다. 쑥부쟁이는 사냥꾼을 만난 그 산을 매일처럼 올랐지만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다. 쑥부쟁이는 더욱 가슴을 태우며 기다림 속에 몇 번이나 가을을 맞았지만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다. 쑥부쟁이의 그리움은 갈수록 더해 갔고,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쑥부쟁이는 곱게 단장을 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정한 수 한 그릇을 떠놓고 어머니를 낫게 해달라고 산신령께 기도를 했다. 그러자 몇 년 전에 목숨을 구해준 노루가 나타나 노란 구슬 세 개가 담긴 보랏빛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노루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쑥부쟁이는 우선 구슬 한 개를 물고 소원을 말했다. “우리 어머니 병을 낫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병이 순식간에 나았다. 그해 가을 쑥부쟁이는 또다시 산에 올라 사냥꾼을 기다렸지만 사냥꾼은 오지 않았다. 쑥부쟁이는 노루가 준 구슬주머니를 생각해 내고는 그 속에 있던 구슬 중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자 바로 사냥꾼이 나타났다. 그러나 사냥꾼은 이미 결혼을 하여 처자식을 둔 처지였다. 사냥꾼은 잘못을 빌며 쑥부쟁이에게 한양 가서 함께 살자고 했다. 그렇지만 맘씨착한 쑥부쟁이는 다짐했다. ‘저이에게는 처자식이 있으니 그를 다시 돌려보내야겠다.’ 쑥부쟁이는 마지막 남은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했다.

그 후에도 쑥부쟁이는 그 청년을 잊지 못했다. 세월은 지나갔으나 쑥부쟁이는 그 그리움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동생들을 돌보며 늘 산에 올라가 그 청년을 그리워하며 나물을 캤다. 그러던 어느 날 쑥부쟁이는 산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쑥부쟁이가 죽고 난 뒤 그 산등성이엔 더욱 많은 나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마을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의 주린 배를 걱정하여 나물로 돋아난 것이라 믿었다. 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와 주머니 속 구슬과 같은 색깔이며, 긴 목처럼 올라온 꽃대는 아직도 그 청년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진다.

쑥부쟁이의 잎은 나물로 즐겨 먹었다. 울릉도 특산물 부지깽이도 실은 ‘섬쑥부쟁이’이다. 삶은 다음 건조하여 묵나물로 저장하여 겨울철 국으로 즐겨 끓여 먹었다. 쑥부쟁이의 잎은 소화를 돕고 혈압을 내리며, 천식과 기침에도 좋다고 한다. 하여 한방에서는 해열제와 이뇨제로 쓰기도 한다.

# 구절초

구절초는 가을 들국화의 대표주자로 산기슭이나 높은 산 정상부의 바위틈에서 주로 서식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상용으로 공원이나 학교교정에도 많이 식재를 하기에 항간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다. 구절초(九節草)는 ‘구절초(九折草)’라고도 한다고 하나 이는 오기인 것 같다. 9월 9일이 되면 꽃대가 아홉 마디가 되어 이때 꺾어서 약으로 쓰면 좋다고 회자되기도 한다.

학명은 Chrysanthemum zawadskii Valdilobum, 국화과 국화속의 다년생 풀로 서식지는 한국과 중국 동북부, 몽골의 저지대 등에 분포하는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들국화라고 하나 우리에게는 가을 들꽃을 부르는 속칭에 불과하다. 영어명은 존재하지 않고 일본에서는 조선들국화(朝鮮野菊), 중국에서는 광엽자화야국(廣葉紫花野菊)이라 하여 ‘들국화’란 명칭이 붙는다. 그 자태가 너무도 고결하여 ‘순결한 사랑’, ‘순수’, ‘어머니의 사랑’이란 꽃말을 가진다. ‘천상의 꽃’, ‘신선이 어머니에게 내린 약초’라 하여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부른다. 그 이름처럼 약효는 부인병, 생리불순, 어혈을 풀어주는 효과 등이 뛰어나다고 한다.

음력 9월 9일은 동양에서는 양수(홀수) 중 가장 큰 숫자로 가장 경사스런 절기인 중양절(重陽節) 혹은 중구일(重九日)이다. 9가 두 번 겹치는 명절로 3월 3일(삼짇날),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석)과 같은 중일명절(重日名節) 중 가장 큰 명절로 여겨왔다. 3월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다시 돌아가는 날도 이 중양절이다. 중양절에는 국화를 감상하거나 산에 올라가 국화전을 먹고 국화주를 마시며 즐기는 등고(登高)라는 세시풍속도 있었다. 추석 때 햇곡식으로 차례를 드리지 못한 집에서는 이날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구절초의 ‘구절(九節)’이란 이 중양절을 의미한다. 음력 9월 9일 무렵에 채취하는 잎과 뿌리가 가장 약성이 뛰어난 약초라 하여 구절초란 이름이 붙은 것 같다.

구절초는 대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지 바위틈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주로 하얀 순백색의 꽃이 대부분이지만 바위구절초, 한라구절초, 산구절초와 같은 것은 연분홍의 꽃이 핀다. 낙동구절초, 포천구절초, 서흥구절초 등 서식지의 풍토와 환경 특성에 따라 10여종 이상이 있다.

울릉도 나리분지 등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52호인 울릉국화도 실은 이 구절초의 한 종류이다. 연중무상지대(年中無霜地帶)이고 육지와 멀리 격리된 해양성 기후인 울릉도의 환경에 적응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관상용으로 많이 식재되어 봄이나 여름에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샤스타데이지(Shasta daisy)와 마가렛(Marguerite) 등과 같은 원예종 국화의 원종의 하나이기도 하다.

구절초에는 미색의 선녀 이야기가 전한다.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를 보필하는 어린 선녀가 꽃을 좋아한 나머지 상제의 보필에 소홀해 그만 지상으로 쫓겨나게 됐다고 한다. 지상에 내려와 살던 선녀는 가난하고 시를 즐기는 시인을 만나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여쁜 선녀의 미색이 소문을 타고 그 고을 사또의 귀에 들어갔고, 욕심 많은 호색한이던 사또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갖은 꾀를 다하다가 그녀의 남편을 불러놓고 제안을 하게 됐다.

첫 번째 제안은 시 짓기 시합 이였는데 남편이 손쉽게 이겼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사또는 이번에는 말타기 시합을 하자고 말 두필을 대령했는데 사또가 탄말이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또 지고 말았다. 그러자 사또는 선녀를 붙잡아 옥에 가두고 모진 협박과 회유로 선녀를 유혹하였다. 선녀는 절개를 지킨 채 거절을 했고 그 일이 의금부에 알려져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녀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옥황상제가 있는 천상으로 돌아갔다. 너무 슬픈 남편도 그녀를 따라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듬해부터 가을이면 그들의 집주위에 하얀 구절초가 피어났는데 천상의 선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꽃이라고 한다. 절개를 뜻하는 천상의 꽃 ‘仙母草’라고도 한다.

쑥부쟁이, 개미취와 더불어 가을이 오면 우리의 산과 들을 온통 가을꽃으로 물들이는 낯익은 꽃으로 늘 우리의 곁에 와주는 친근한 꽃이다. 하여 들국화라고 했다. 10월이면 정읍 구절초축제, 세종 구절초축제, 밀양 구절초축제, 지리산 구절초축제 등의 축제가 일제히 열려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가을 언덕을 온통 하얗게 수놓은 꽃송이들 사이를 거닐고 있노라면 모두가 가을남자, 가을여자가 된 기분이 들 것이다. 구절초가 피면 가을이 오고, 구절초가 지면 가을이 간다고 한다. 또한 구절초가 피면 내 고향마을과 내 어릴 적 누이가 그리움으로 피어오를 것이다.

칼럼니스트 hysong@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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