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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로 많고 코스도 다양한 ‘대구시민 체력 단련장’

기사전송 2017-11-09, 21: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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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과 함께하는 대구의 걷기 길 <4> 용지봉 종주길
12.5㎞ 중간중간 진밭골·욱수골 등 접근로
성암산~팔조령~용지봉 70㎞ ‘9산 종주길’
삼성산 지나 밀양 종남산까지는 ‘비슬지맥’
체력 고려 알맞은 거리 자유롭게 선택 장점
맥반석 물 흘러내린 욱수천
망월지는 ‘두꺼비 보호구역’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재
‘서상돈 무덤’ 새롭게 단장을
그림=임지인 화백
용지봉
용지봉에서 바라본 대구 시가지
1
노변동 사직단(노변동 고분군)
2
서상돈 무덤(범물동 천주교 공동묘지 가족묘원)


#수성못 입구부터 성암산까지

대구는 분지이다. 남북으로는 팔공산과 비슬산이 긴 산줄기를 형성하며 대구를 감싸고 있고, 동쪽은 초례봉(환성산) 줄기와 용지봉 줄기가 뻗어있다. 용지봉은 다시 대덕산, 안산, 성암산, 병풍산, 동학산, 상원산으로 뻗어가며 비슬산괴에 맞닿아 있고, 용지봉·대덕산·안산·성암산 줄기는 대구시 동남쪽을 감싸며 대구시민과 수성구민을 위한 걷기길과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용지봉 종주길은 서쪽 지점인 수성못 입구의 삼풍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삼풍 아파트~법이산~배드민턴장~애기봉~용지봉 트래킹은 5km 남짓의 짧은 길이어서 용지봉~감태봉(3km)~성암산(4.5km)까지 연장하여 12.5km를 용지봉 종주길로 본다. 주변에는 다른 걷기길도 많다. 용지봉에서 감태봉으로 가기 전에 진밭골로 내려서면 욱수정과 만보정이 있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욱수정 혹은 만보정은 용지봉 일대 걷기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만보정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대덕산을 거쳐 관계 삼거리의 천주교 공동묘지 혹은 복명 초등학교 뒷길로 내려올 수 있다(만보정에서 대덕산까지 1.8km, 대덕산에서 복명초등학교까지 2.8km). 대덕산에서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빠지면 대구 스타디움으로 내려간다(2.5km). 만보정에서 북동쪽 임도를 따라가면 안산을 거쳐 욱수골로 내려가고, 가는 길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청계사, 내환지를 거쳐 자동차극장으로 내려가게 된다(만보정~덕원고 4km, 만보정~자동차극장 4km). 안산으로 가기 전에 왼쪽으로 내려서서 2km 정도 걸으면 대구스타디움 혹은 노변동 사직단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진밭골의 욱수정에서 봉암사 방향으로 1km 정도 내려오면 수성구에서 새로 만든 봉암누리길과 만나는데, <봉암누리길>은 욱수동 공영주차장~오부자 산소~소바우~욱수지~눈물바위~봉암폭포까지 4.8km의 트래킹 길이다(욱수정~욱수동 공영주차장 5.5km).

용지봉에서 동쪽으로 3km 정도 걸으면 감태봉에 이르는데, 감태봉 주변의 광산고개에서 남쪽으로 진행하면 병풍산, 동학산, 상원산을 거쳐 팔조령에 도착한다. 욱수골에서 성암산을 거쳐 감태봉~병풍산~동학산~상원산~팔조령~삼성산~통점령~헐티재~비슬산~청룡산~산성산~용지봉을 거쳐 다시 욱수골로 원점 회귀하는 등산길을 <9산 종주길>이라 부르고, 산꾼들의 종주 목표가 되는 길이다. 9산 종주길은 70km가 넘는 길이어서 3일을 꼬박 걸어야 하는 트래킹 길이고, 오랫동안의 걷기로 체력을 단련 후에 도전해야 한다. 9산 종주길은 다시 가창의 상원산에서 비슬지맥과 만나는데, 비슬지맥이란 낙동정맥의 경주 사룡산에서 분기하여 청도, 경산을 거쳐 대구 구간인 상원산~삼성산~비슬산으로 이어져 경남 밀양의 종남산을 지나 낙동강에 이르는146km 정도의 종주길이다. 전 구간에서 비슬산이 가장 높은 산이기에 비슬지맥이라 부른다. 그리고 용지봉 종주길은 경산 능동산~병풍산~감태봉~대덕산~관계삼거리~무학터널~무학산(대구 경찰청 뒷산)~범어체육공원(수성구민운동장)~만촌시민공원~동대구역~신암공원~산격동 연암공원을 지나 금호강에 이르는 27km의 산줄기(비슬대덕단맥)와 이어진다.

용지봉 종주길은 수성못~법이산~용지봉~감태봉~성암산까지 12.5km이고, 이 길 중간 중간에 욱수골, 대덕산, 진밭골, 성암산 쪽에서 진입하는 수많은 접근로가 있다. 진입로가 많은 것은 개인의 체력에 맞는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걸을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진입로와 개략적인 구간별 거리를 정리하면 다음 그림과 같다.


#용지봉 종주길에 얽힌 이야기

용지봉, 대덕산, 욱수골, 성암산 주변에 얽힌 이야기도 무수히 많다. 먼저 수성못은 1925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水崎林太郞)에 의해 조성되었다. 그는 조선총독부 예산과 사비로 수성못을 만들고 1939년까지 수성못 관리인을 하다가 죽었는데, 유언에 따라 법이산 아래 수성관광호텔 가는 길에 무덤이 있다.

수성못이 조성되어 수세나 소작료를 납부하며 핍박받고 수탈되는 수성들을 바라보며 대구 출신의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울분에 찬 시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현재 수성못에는 영상음악분수도 있고, 둑에는 시인 이상화를 기리는 상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수성못을 한 바퀴 도는 것은 2km 남짓의 짧은 길이지만 멋진 걷기길이어서 사시사철 산책 나온 시민으로 붐빈다.

용지봉(629m)은 정상부분이 용의 뿔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법이산 봉수대에서 용지봉으로 가는 길에는 배드민턴장과 각종 체육시설이 있어서 주민들의 체력 단련장으로 손색이 없다. 산 아래의 범물동(凡勿洞)은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 동네인데, 범이 많이 살아서 범 울음이 들렸다는 옛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범울이 동네).

관계 삼거리에 있는 천주교 공동묘지 가족묘원에는 서상돈의 무덤이 있다. 서상돈(1850~1913)은 일제강점기에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이 식민지건설의 정지작업으로 강제차관을 공여하여 진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민주권을 회복하고자한 국권회복 운동이었다. 일진회와 일본인들의 교묘한 방해공작으로 실패한 운동이었지만 국권회복을 위한 최초의 범민족적인 운동이었음이 밝혀졌다.

서상돈의 무덤 아래에는 둘째아들 서병조(徐丙朝)의 무덤이 있는데, 서병조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대륜 중.고등학교 교주(校主)이다. 오랫동안의 노력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되었으니 대구시는 선양사업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의 무덤을 새롭게 단장하기를 바란다.

대구 스타디움이 있는 시지, 신매, 욱수동에도 종주길 접근로가 많다. 시지동은 대구와 청도를 잇는 교통요지인 시지원(時至院)이 있던 자리에서 비롯된 명칭이고, 신매동(新梅洞)은 신기리(新基里)와 내매동(內梅洞)이 합해진 명칭이고, 욱수동(旭水洞)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맥반석 물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욱수천은 욱수지에서 시작되어 경산 남천에 합류한 뒤 다시 금호강과 합류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청정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욱수골에는 물고기와 가재가 많았다. 지금도 욱수골에는 공룡화석지가 있고, 불광사 앞에는 두꺼비 산란장소로 유명한 망월지가 있다. 망월지는 두꺼비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고, 매년 5월 비오는 날이면 부화한 새끼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유건산(453m)으로 대규모 이동을 감행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노변동 사직단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는데, 노변동 고분군, 사월동 지석묘군과 함께 보호해야 할 유적이다. 노변동(蘆邊洞)은 갈대가 많이 자라는 곳이어서 노변동이 되었고, 사직단은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역대 제왕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던 종묘(宗廟)와 기우제, 기곡제를 지내던 사직단(社稷壇)이 중요하여 종묘사직을 보호하는 것이 제왕의 기본적인 임무였다. 노변동 고분군은 이 지역의 도로건설을 하며 발굴된 수 만 점의 삼국시대 유물인데, 고산지역의 생활문화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사월동 지석묘군은 사월보성타운 안에 있다.

삼국을 통일하고 신문왕이 즉위하자 왕과 귀족간의 세력다툼이 일어났다. 신문왕은 통일신라의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달구벌 천도를 계획하였고 689년 장산성(獐山城)으로 순행하게 된다. 백제와 고구려를 통일한 왕국을 동남쪽에 치우친 경주에서 통치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진골과 귀족의 반대로 달구벌 천도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역사적으로 대구가 왕경(王京)으로 적합한 땅이란 것이 인정되었다. 실제로 달구벌은 산이 감싸고 있어서 군사적으로 방어가 쉬운 땅이고, 금호강이 낙동강과 연결되어 수상교통이 용이하고, 압량벌, 고산들, 수성들이 있어서 농업생산물이 풍부한 곳이었다.

산에는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 되고, 물에는 용이 살아야 신령한 못이 된다고 한다. 걷기길에도 많은 탐방객이 몰려야 비로소 명품 걷기길이 된다. 용지봉이나 욱수골에 거미줄처럼 펼쳐진 수많은 걷기길도 밤낮으로 탐방객이 몰리니 이제는 명품 걷기길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걸어보면 아기자기한 산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고, 경치는 수승하고 정취는 그윽하여 깊은 산속을 걷는 느낌이 들고,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대구 시가지의 경치가 멋지다. 도심에 이러한 걷기(트래킹)길을 가진 것은 대구시민의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bluesunk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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