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죽음’ 공존하는
‘삶-죽음’ 공존하는
  • 채광순
  • 승인 2017.11.2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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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걷기길 ‘한 구간’
곳곳에 ‘역사 스토리’
<등산길 10㎞>
김영현과 함께하는 대구의 걷기길 <5>형제봉 종주길
높지도 않은 4코스 10㎞ ‘맞춤 걷기길 ’
모명재는 귀화한 明 장수 두사충 재실
임란때 귀화 日병사 김충선 ‘삼난공신’
인도 나야 대령 6·25때 전사 기념비도
형제봉 유래·고산서당 등 수많은 사연
모명재11
모명재
나야대령비
나야 대령비
고산서당
고산서당
형제봉222
형제봉에서 바라 본 시가지 전경.

#형제봉 걷기길

일반적으로 걷기길의 한 구간은 평지를 기준으로 15km 미만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등산길인 경우에는 10km 이하이다.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형제봉 걷기길은 높지는 않지만 산길이고 4코스를 모두 걸으면 10km가 넘으니 도심지에 있는 걷기길로 손색이 없다(총 10.9km, 330분).

형제봉 걷기길은 군데군데 체육시설이 많아 만촌동 주민들이 많이 찾지만 군부대 지역이어서 등산로를 제외하고 출입이 제한된다.

특히 명복공원 근처에서는 인도의 바라나시(갠지스 강) 여행에서 느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묘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4개 코스의 거리, 소요시간, 경로는 다음과 같다.

형제봉길 코스(3.39km, 120분): 모명재~형봉 건강쉼터~그루터기쉼터~제봉~<비 내리는 고모령>노래비~영남 제일관

모봉길 코스(3.22km, 100분): 그루터기쉼터~동대사~모봉~어부바쉼터~전우쉼터 ~고모역

고모령길 코스(1.89km, 50분): 고모역~고모 노래쉼터~여럿이 함께 만든 쉼터~제봉

팔현길 코스(2.41km, 60분): 금호강 철새 탐조대(팔현 체육공원)~수성 패밀리파크~팔현 마을~갈림길~고모 건강쉼터~제봉 건강쉼터

걷기 매니아들은 형제봉 걷기에 만족하지 않고 남부정류장을 건너 두리봉을 종주하여 연호역으로 가는 길을 걷기도 하고, 두리봉을 지나 무학산, 범어체육공원을 종주하여 대구여고로 내려오기도 한다.

#두리봉~연호역 코스(8km, 3시간)

만촌역~덕일 어린이집~오성고~정화여고~두리봉 터널~경북고~두리봉~산불감시초소~조일골 삼거리~운곡사~연호 마을회관(연호내지)~연호역

두리봉~무학산~범어체육공원 코스(15km, 6시간)

만촌역~덕일 어린이집~오성고~정화여고~두리봉 터널~경북고~두리봉~산불감시초소~조일골 삼거리~두산 삼거리(황룡사 입구, 무학터널)~수성소방서 맞은편 입구~무학산(능인고)~황금 캐슬골드파크~국립대구박물관~범어공원~ 대구여고(수성구청) 혹은 KBS 방송국(나야대령비)

더욱 극성스러운 매니아들은 고산동 주민들이 즐겨 찾는 걷기길인 천을산(121m)까지 연장하여 형제봉, 천을산, 두리봉, 무학산, 범어체육공원 코스를 걷기도 하는데, 총 26km이고 8시간 이상 걸리는 걷기길이다. 도심지 걷기길로는 상당한 거리이다. 형제봉을 중심으로 연장코스 전체를 조망하면 그림과 같다.

만촌역~모명재~형봉~제봉~고모역~가천 지하차도(가천역)~천을산~우산(고산서당)~고산중~대공원역~ 연호역~담티고개(대륜고)~두리봉~산불감시초소~조일골 삼거리~두산 삼거리(황룡사 입구, 무학터널)~수성소방서~ 무학산(능인고)~황금 캐슬골드파크~국립대구박물관~범어공원~대구여고(수성구청) 혹은 KBS 방송국(나야대령비)

#형제봉 주변 이야기

명나라를 그리워한다는 모명재(慕明齋)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杜師忠)의 묘소 앞에 만들어진 재실이다. 두사충은 시성 두보(杜甫)의 22대손으로 임진왜란 당시에 이여송 장군의 풍수지리참모(수륙지획주사)로 참전하여 평양성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벽제관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이여송 장군은 진지구축에 실패하여 전투에서 패배한 책임을 물어 두사충을 처형하려고 하지만 우의정 정탁, 의병장 이시발 등의 탄원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때 두사충의 마음속에는 구명을 해준 조선에 대한 감사함이 컸을 것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두사충은 두 아들을 데리고 다시 참전하게 된다(두 아들을 데리고 참전했으니 이미 조선에 귀화를 결심했을 것이다). 당시 중국 동북부에서 세력을 넓혀가던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합한 막강세력으로 성장하여 명나라의 멸망은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 명나라의 국운이 다하고 새 왕조 청나라가 시작되리라는 것을 풍수지리학자이자 기문둔갑을 공부한 두사충도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두사충은 조선에 귀화하여 두 아들과 대구의 경상감영공원 지역의 땅을 하사받아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왜란 후 상주에 있던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오자 계산성당 뒤편으로 이주한다. 당시 왜란을 겪은 조선의 현실은 참담했기에 살던 마을 주변에 뽕나무를 심어 헐벗은 조선 백성을 구제하였다. 지금도 계산동을 뽕나무골로 부르는 이유이다. 홀아비로 살던 두사충 옆집에는 수절한 과부가 살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곧 결혼하게 된다.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후에 다시 이사하여 대구고등학교 근처에 살았고 멸망한 명나라와 황제에게 배례하기 위해 최정산(대덕산) 아래에 대명단을 쌓았다. 두사충이 살던 마을 혹은 대명단이 있던 마을이 남구 대명동의 지명 유래가 된다. 두사충은 말년에 명당이라는 우산 아래(고산서당)에 묘 터를 잡았으나 담티고개 근처에서 죽게 되고, 결국 형제봉 아래에 묻히게 된다. 후손들은 두사충의 묘가 있는 형제봉 아래(만촌역)에 명나라를 그리워 한다는 모명재를 짓고, 대문에는 만동문(萬折必東 혹은 百川流水必之東)이라 현판을 달았다. 두사충의 후예인 두릉 두씨 후손들은 계산동, 대명동을 근거지로 지금도 번성하고 있다.

조선 건국 초기부터 투항해온 왜인을 항왜(降倭)라고 한다. 조선의 앞선 문물에 대한 동경이나 일본 국내의 정치적인 입지가 좁아져서 혹은 상관의 횡포나 박해를 피하기 위해 항왜가 생겨났다. 본격적인 항왜는 임진왜란부터 시작되는데, 그 숫자는 1만 명에 이른다. 임진왜란은 국가 간의 전쟁인 조일전쟁(朝日戰爭)이 아니라 히데요시의 가병이 출병한 전쟁이기에 왜란이 장기화되자 강제로 동원된 병사들 사이에서 반전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식량부족, 과다한 군역부과, 상관 횡포 등으로 다수의 왜군이 조선으로 투항하게 된다. 하지만 사야가(沙也可, 金忠善, 귀화 당시 22세)는 임진왜란 개전 초기에 귀화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였다. 그는 임란 초기에 투항하여 임진왜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 때도 많은 공을 세워 삼난공신(三亂功臣)이 되기도 한다. 선조는 사야가에게 김해 김씨를 사성(賜姓)하고, 충선이란 이름도 하사하였고, 벼슬은 정2품인 자헌대부의 품계를 주었다. 30세에는 진주목사의 딸과 혼인하여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에 정착하여 72세까지 살았다. 김충선 정착 이후 가창 우미산 아래의 소 굴레 형상의 마을인 우륵동(牛勒洞)이 사슴을 벗하며 유유자적 한다는 우록동(友鹿洞)으로 지명이 바뀌기도 한다. 김충선은 평화주의자였고 한일 우호증진의 모범(오래된 미래)을 이미 400여 년 전부터 보여주고 있다. 김해 김씨(사성 김씨) 김충선 가문은 번성하여 현재 20만에 이르는 후손을 자랑하고 있고, 우록동에는 녹동서원과 한일우호증진관이 건립되어 있다.

나야 대령은 6.25때 UN 인도대표로 참전하여 1950년 8월 낙동강 전선 시찰 도중 칠곡군 왜관에서 지뢰폭발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대구여고 뒤편 범어동 산에 화장 후 안장되었고, 기념비를 세웠다. 60여 년 동안 남편을 그리워하며 사부곡(思夫曲)을 부르던 부인 <비말라 나야> 여사도 2011년 죽어서 남편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2012년 나야 대령 옆에 묻혔다. 나야 대령과 비말라 나야 부인의 이야기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돌이 된 울산의 치술령 망부석 이야기와 다름이 없다. KBS 방송국 옆의 범어체육공원 산책길(속칭 주일골)을 따라 100m 정도 오르면 나야 대령비가 있다. 한국과 인도의 오랜 교류를 상징하는 기념비로 인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두사충, 김충선, 나야대령 유적은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 인도와 오랫동안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대구시는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두사충의 모명재,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에 있는 녹동서원, 수성구 범어동의 나야대령비를 더욱 잘 가꾸고 관리하여 중국, 일본, 인도와의 교류를 증대시키는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고 관광객 유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도심에 펼쳐지는 걷기길인 형제봉, 두리봉, 무학산, 범어체육공원 주위에는 얽힌 이야기가 많다. 형제봉의 유래, 고모(顧母)의 유래, 오랫동안 우리의 심금을 울리던 가요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퇴계와 우복이 강학한 고산서당, 두리봉 가는 길에 있는 청호서원(손처눌 배향), 황금동 우방신천지 아파트 안쪽에 위치한 덕산서원(서섭 배향), 담티고개나 솔정고개에 얽힌 이야기, 연호동의 연꽃 이야기, 국립 대구박물관, 김대건 성당 등에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다.

칼럼니스트 bluesunk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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