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잃는 설움 없어야”
“나라 잃는 설움 없어야”
  • 승인 2017.08.1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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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30년 동안 집에 태극기 게양
보은 평화의 소녀상에 감사
겪은 악몽들 국민 앞에 증언
태극기내걸린이옥선할머니집
속리산 국립공원 길목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7) 할머니의 집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속리산 국립공원 길목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펄럭거리는 허름한 집이 한 채 있다. 충북 유일의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7) 할머니가 사는 집이다.

일제의 만행에 한 평생 굴곡진 삶을 살아온 이 할머니는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조국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극 정성으로 태극기를 ‘모시고’ 더는 치욕스러운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훌륭한 후학을 양성해 달라며 어렵사리 모은 전 재산을 흔쾌히 내놓았다.

광복절 72주년을 앞둔 이 할머니의 바람은 하나 뿐이다. 나라 잃은 설움을 다시는 겪지 말자는 것이다.

대구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열여섯 살 나던 1942년 일본군에 끌려가 2년 넘게 지옥 같은 위안소 생활을 했다. 가녀린 소녀가 일본군의 총칼 앞에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것조차 지켜주지 못한 조국이지만, 그녀의 태극기 사랑은 남다르다.

“일본 패망 뒤 중국사람 도움을 받아 천신만고 끝에 조국에 돌아왔어.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갈 곳이 없었지. 나라가 힘을 잃는 바람에 내 인생도 송두리째 망가진거야”

걸핏하면 고열과 함께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와 생활이 힘들었고, 독한 약을 입에 달고 사는 바람에 손가락이 비틀어지고 손톱이 빠지는 고통까지 경험했다. 결혼 20여년이 넘도록 아이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위로처럼 다가선 것은 뜻밖에도 태극기였다.

어느 날 기력 잃은 몸으로 길을 걷다가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본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나라가 원망스러웠지만, 내 나라가 건재하고 내 눈앞에 태극기가 펄럭인다는 게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섰는지 모른다.

“태극기를 보는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울컥 솟아오르는 기분이었지. 아마도 당시 상황이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

그날의 감동은 두고두고 여운으로 남았고, 한참 뒤 남편과 사별해 다시 혈혈단신이 되면서 아침마다 대문 기둥에 태극기를 내걸기 시작했다. 벌써 30여년 전이다.

이 할머니는 요즘도 틈이 날 때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 근처 암자에 찾아가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한다.

몇 해 전에는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금과 위안부 생활안정지원금으로 모은 2천만원을 보은군민장학회에 내놓기도 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인재육성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이 할머니는 요즘 이웃들로부터 반가운 소식 하나를 전해 듣고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들떠있다. 자신이 사는 보은에 충북 3번째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추진된다는 얘기다.

보은지역 200여 곳의 사회단체는 지난 5월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 지금까지 8천만원이 넘는 군민 성금을 모았다. 군청 공무원부터 시장 상인, 농부는 물론이고, 고사리 손의 어린 학생까지 호주머니를 털어 모금 대열에 동참했다. 이어 “지난달 김군자 할머니 타개로 이제 나를 포함해 37명의 피해자만 생존해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 정부는 어물쩍거리다가 사과할 대상조차 사라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 할머니는 “보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꼭 참석할 생각”이라며 “기회가 되면 내가 겪은 악몽들을 다시 한 번 국민 앞에 또렷이 증언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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