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시름에도…“단골손님 있어 웃죠”
깊어가는 시름에도…“단골손님 있어 웃죠”
  • 정은빈
  • 승인 2018.03.1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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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동 새벽 ‘번개시장’ 르포
1년 365일 15년째 자리 지켜
대형마트 등 영향 손님 줄고
‘미투 열풍’ 정치권에 실망도
상인들, 갈수록 한숨만 늘어
청과·잡화 등 200여 곳 영업 중
날 밝을수록 손님 하나둘 늘어
대부분 기성세대들이 찾아와
하루의 활력 얻은 후 돌아가
북적이는새벽시장
지난 8일 내린 폭설로 쌓인 눈들이 녹고 따뜻한 날씨를 보인 11일 오전 대구 중구 달성공원 앞 새벽시장이 장을 보러 온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전영호기자 riki17@idaegu.co.kr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요즘 얼굴을 알리려는 예비후보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어나고 있어요. 정치인들이 선거철 마다 시장을 찾아 서민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바뀐 게 없어요. 특히 최근 ‘미투(Me Too)’ 사태 등을 보면서 정치권에 실망만 더 커지면서 선거에 대한 관심을 끄게 됐어요. 진정으로 서민의 아픔을 만져주고 더 나은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자질을 갖춘 정치인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 허탈감을 줍니다.”

지난 9일 오전 4시께 대구지역 새벽 전통시장인 ‘번개시장’에서 만난 분식노점 상인 박 모(63)씨는 이 같이 푸념했다.

대구 중구 달성동에는 매일 새벽에만 열렸다 사라지는 장이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새벽시장인 번개시장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년 365일 열리는 번개시장은 15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장이 들어선 지 15년이 지나면서 이곳 상황도 많이 변했다. 오랜 경기불황에다 최근에는 많은 시민들이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면서 이곳을 찾는 발길이 뜸해지면서 상인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곳 상인들은 한결같이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서민경제를 외치며 시장을 찾아 전통시장 활성화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도 우리 삶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최근의 정치권을 보면 너무 실망스럽고, 언제쯤 서민들을 위한 정치인들이 나올지 의문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 내린 폭설에도 장사 준비에 분주한 번개시장

지난 9일 오전 3시 30분께 달성공원 정문 앞 도로. 해가 채 뜨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지만 몇몇 상인들은 장사 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상인들은 장사 준비를 하면서 전날 내린 폭설로 쌓인 눈을 치웠고 비었던 도로가 옆 주차 공간이 상인들의 점포로 하나둘 채워졌다.

오전 4시께 빈 주차장에 야외용 테이블이 펼쳐지고, 뜨거운 김이 나는 어묵 냄비와 막걸리 여러 병이 진열됐다. 길거리 한 구석이 순식간에 노상 분식점으로 변한 것. 분식점 좌측 노상 국밥집에서는 추어탕 냄비 위로 뜨거운 김이 솟았고, 국밥집 뒤 기사 식당에도 불이 밝았다.

오전 5시께 거리를 거니는 사람이 늘자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특히 채소·과일을 파는 가게 앞에서 손님이 장을 보고 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상인들은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 경기에 갈수록 팍팍해진 경제 상황에도 불구, 상인들은 활기차게 손님을 맞았다.

상인 이금운(여·65)씨는 “동구 신천동에서 화장품 가게를 20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7년 전부터는 번개시장에도 나오기 시작했다”며 “벌이가 넉넉한 건 아니지만 주변 상인들과 함께 열심히 장사를 하다 보니 정도 쌓이고, 시장에 생기가 넘쳐서 좋다”고 말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번개시장 형성 어느덧 15년

평소 달성공원 공영주차장으로 쓰이는 달성공원로 일원 650m가량에는 동트기 전부터 5~7시간 동안 시장이 형성된다. 장이 열리는 데는 정해진 시간이 없지만, 보통 점포가 처음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3시 30분께다. 상인들은 평일과 토요일에는 오전 8시 30분, 일요일에는 오전 10시가 되면 제각각 흩어진다.

번개시장에 들어선 점포는 200여개. 분식과 음료 등 먹거리 점포부터 청과점, 농·수산물점, 화장품과 ‘효자손’ 등 다양한 물건을 파는 잡화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여느 시장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카세트테이프 판매점도 있다.

이렇게 매일 장이 선 지도 15년이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변했고 시장의 기세도 많이 꺾였다. 10년간 한자리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한 신모(66)씨는 “일요일 아니면 장사가 잘 안 된다.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 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는데 요즘은 시장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토로했다.

음료판매포차 상인 김모(여·60)씨는 “손님이 적을 때는 하루에 1~2만 원 번다. 경기가 안 좋은 탓도 있고 요즘 사람들이 백화점이나 마트를 좋아하니 그런 것 같다”며 “그래도 매일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이 있으니 웃으면서 가게를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번개시장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기성세대다. 상당수 손님은 장이 처음 생길 적부터 번개시장을 찾아온 단골이다. 이들은 “번개시장은 평범한 시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0여년 동안 번개시장을 찾은 조영혜(여·68·대구 중구 대신동)씨는 “달성공원에 와서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을 보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됐다”며 “이곳은 이른 시간부터 활력이 넘쳐서 항상 기운을 얻고 돌아간다.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은빈·장성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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