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불편한 여동생 뒷바라지 75년
몸 불편한 여동생 뒷바라지 75년
  • 남승렬
  • 승인 2017.04.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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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캉 내캉 한날한시 죽는 게 소원”
‘장애인의 날’에 앞서 만난
서소순 할머니 애틋한 우애
1943년 7살 동생에 병마
그때부터 여태껏 돌봐
결혼 후에도 함께 생활
“병수발 가장 큰 조력자는
먼저 세상 떠난 영감님”
우애 지켜본 막내 아들
어머니와 이모 모시려
서소순5
서소순(85) 할머니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애를 가진 여동생을 보살폈다. 19일 대구 신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서 할머니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몸 불편한 동생, 내가 당연히 거둬야지’하는 마음으로 80평생을 살았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영호기자
“지캉 내캉 한날 한시에 같이 죽는 게 소원이라예. 몸이 워낙 불편해 이번 생에선 자기 하고 싶은 것도 다 못하고 살았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예.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선 부디 맛있는 것 많이 먹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예.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라예.” 85살의 언니는 세살 터울의 여동생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쳤다. 무려 ‘75년…’. 대구 동구 신천동에 사는 서소순(85) 할머니(이하 서 할머니)가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은 뒤 신체 오른쪽을 못 쓰는 여동생 서음전(82) 할머니를 돌봐온 시간이다.

서 할머니 자매는 어릴 때부터 각별했다. 자매는 각각 1933년, 1936년 대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2남4녀 중 넷째와 다섯째였다. 1943년 예기치 못한 병마가 동생에게 찾아왔다. 일제강점기였던 그 시절, 대부분 가난했다. 술로 세월을 보내던 아버지가 그 해 어느 날, 자매를 심하게 다그쳤다. 동생이 울자 어머니는 동생을 집 밖으로 내보냈고, 동생은 집 근처 나무 전봇대에 서 있었다. 얼마 후 어머니가 찾으러 갔지만 동생은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이후 동생은 소아마비 증상과 언어장애가 왔다. 당시 자매의 나이는 10살과 7살이었다.

“멀쩡하던 동생이 하루 아침에 몸을 제대로 못쓰게 됐어요. 어떡합니까. 그 때부터 동생 뒷바라지를 할 수밖에요.”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지만 동생의 장애는 악화됐다. 혼기에 들어선 서 할머니는 결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차마 동생을 두고 출가하려니 마음이 미어졌다. 고민을 거듭하던 서 할머니는 남편 조순철(2000년 작고. 당시 70세)씨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남편 조씨는 “당신 마음이 정 그러하면 처제와 같이 살면 되지 않느냐”며 동생을 받아들였다. 서 할머니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며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신천동에 터를 잡은 부부는 없는 살림이지만 알뜰히 일궜다. 미장일을 하던 남편 조씨와 서 할머니는 아픈 동생을 보듬어가며 슬하의 3남1녀를 남부끄럽지 않게 키웠다. 동생 병수발의 가장 큰 조력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었다.

“우리 영감님이 애를 많이 잡수셨어요. 몸 불편한 처제 먹기 편하게 김치도 잘게 썰어서 상에 내놓으라고 하시고…. 사소한 것까지 다 챙기셨어요. 사람 좋기로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

2000년 남편이 세상과 이별한 뒤 자매는 현재 신천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서 할머니의 막내아들 조정욱(50)씨가 든든한 기둥으로 어머니와 이모를 살뜰히 챙기고 있다. 아들 조씨는 “우리 4형제 모두 이모를 짐으로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한 때 이모를 요양시설에 모실까 고민했지만 어머니와 이모님, 두 분의 애틋한 우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접었다”고 말했다. 아직 독신인 조씨는 30대 때 결혼할 여자가 있었으나 어머니와 이모를 모시기 위해 결혼까지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들 조씨는 자나깨나 고민이다. 3년 전부터 서 할머니가 파킨슨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서 할머니는 아직도 자신의 병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로지 동생 걱정뿐이다. 조씨는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이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건강하셔야 이모님도 편안히 지내실 수 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때문에 주위에선 이제 두 분 모두 요양시설로 모시라고 권한다.

“세상 원망 안합니다. 가족이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요. ‘몸 불편한 동생, 내가 당연히 거둬야지’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후회는 없어요. 그게 가족 아닙니까.” 서 할머니와 같은 ‘가족’이 있다면 이 땅의 장애인들은 더이상 장애가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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