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발굴…인주설화 뒷받침
해자서 터번 두른 독특한 토우
‘병오년’ 글자 적힌 목간 등 나와
성벽 유적에서 인골이 출토된 것은 국내 최초로, 제방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을 주춧돌 아래에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주(人柱) 설화를 뒷받침한다.
16일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발굴조사 설명회에서 5세기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서쪽 성벽 문지(門址, 문 터)의 기초층에서 누워 있는 인골 1구와 얼굴과 팔이 이 인골을 향해 있는 또 다른 인골 1구를 지난해 12월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결박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고 곧게 누운 점으로 미뤄 사망한 뒤에 묻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의례 행위를 치르고 나서 매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어른 새끼손가락 크기의 토우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페르시아풍의 긴 옷을 입었다.
월성 해자에서 새롭게 발굴된 목간 중 글씨를 해독할 수 있는 유물은 모두 7점이다. 그중 한 목간에서는 ‘병오년’(丙午年)이라는 글자가 확인됐고, 경주가 아닌 지역 주민에게 주어진 관직인 ‘일벌’(一伐)과 ‘간지’(干支), 노동을 뜻하는 ‘공’(功) 자가 함께 기록돼 있었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목간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병오년은 586년이 99%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월성 해자에서는 신라시대 유적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곰의 뼈,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한 가시연꽃의 씨앗, 손칼과 작은 톱 등으로 정교하게 만든 얼레빗이 발견됐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주 월성은 제5대 파사왕 22년(101) 축성을 시작했으며, 신라가 망한 935년까지 궁성으로 쓰였다.
문화재청은 월성에서 2014년 12월 개토제를 시작으로 3개월간 시굴을 한 뒤 2015년 3월 본격적인 발굴에 돌입했다.
경주=이승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