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란 육지전 첫 勝 ‘영천성 수복’ 재조명돼야”
“임진란 육지전 첫 勝 ‘영천성 수복’ 재조명돼야”
  • 서영진
  • 승인 2017.09.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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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업추진위 발기인회
“명량해전 버금 공로” 주장
영천성 복성전투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기인회(임시대표 정규정)는 2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임진란 당시 영천성 수복은 명량해전에 버금가는 귀중한 역사”라며 “영천성 전투승리가 재조명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향후 영천성 복성 승리 기념탑 및 기념관건립, 국정교과서 영천성 전투 수록, 영천성 복성 승리행사의 국제행사 전환 등을 추진 할 것이라고 밝혔다.

1592년 4월 23일 왜장 가등청정은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영천성에 도착했다. 당시 영천군수는 겁을 먹고 달아났고 백성들은 흩어졌다. 이때 진사 정세아(58)는 영천자양에서 제자 등 9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의병활동을 전개했고 , 정대임(40)은 대전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대동전투와 당산지구 전투에서 승리했다. 권응수(49)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 신녕에서 의병을 일으켜 한천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들 의병장들은 ‘영천성’ 탈환계획을 세우고 7월 24일 영천성 탈환을 시작했다.

7월 27일 화공전으로 총공격을 시도해 임진왜란 최초로 육지전 승리를 이끌었다. 영천성 복성 직후 의병과 관군은 경주성 탈환으로 이어졌다. 이후 영양, 경산, 대구, 의성, 울산 등 전투에서 연전연승했다.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임진란 최초 영천지역의 의병항쟁은 영천성 수복으로 적의 후방에서 보급로를 차단했고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 곡창 전라도를 지킬 수 있었으며 전국에서 의병 등 군사의 사기를 높인 역사적인 승리”라고 주장했다.

영천=서영진기자 syj1111@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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